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158화

밤은 깊었고, 별들은 언제나 그랬듯 침묵하며 빛났다. 소라는 침대 머리맡 작은 라디오의 볼륨을 조금 더 높였다. 지훈 DJ의 목소리는 한밤의 고독 속에서 잔잔한 파문처럼 퍼져나갔다. “깊은 밤, 여러분의 마음속 별 하나를 찾아 드리는 시간,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입니다. 오늘 첫 번째 사연은 익명의 리스너께서 보내주셨습니다.”

소라는 눈을 감았다. 익숙한 도입부였지만, 오늘은 왠지 모르게 심장이 싸늘하게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DJ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연을 읽어 내려갔다.

‘DJ님,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곁에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별의 순간, 저는 너무 어려서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건넬 수 없었어요. 그날 밤하늘도 지금처럼 별이 가득했는데, 저는 그 별들 사이에서 그의 모습을 찾으려 애썼죠.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제 눈에는 오직 슬픔으로 일렁이는 별빛만 보였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것이 변했지만,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그때의 후회가 별똥별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만약 그때, 제가 한마디라도 더 할 수 있었다면, 지금 제 마음은 조금은 더 가벼웠을까요? 그에게 이 노래를 바칩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제 마음속에 언제나 빛나는 별로 남아있기를…’

사연이 끝나고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소라의 낡은 기억 속 서랍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그녀는 눈을 번쩍 떴다. 숨이 막혔다. ‘겨우 이 노래 때문에?’ 그녀는 자신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아니, 억지로 잊으려 했던 그날의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때도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열여덟 살의 소라는 낡은 옥상 평상에 누워 우주를 꿈꿨다. 옆에는 유성처럼 뜨거웠던 첫사랑, 지우가 있었다. 지우는 늘 말했다. “소라야, 우리는 저 별들처럼 영원히 함께할 거야.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서로의 빛을 볼 수 있겠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던 그 순간이, 사실은 마지막 별빛처럼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며칠 후, 지우는 말없이 떠났다. 아무런 설명도, 작별 인사도 없이. 그의 부모님이 급작스럽게 이민을 가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옆집 아주머니에게 듣고서야 소라는 모든 것을 알았다. 그 충격과 배신감은 그녀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녀는 그에게 어떤 말도 전할 수 없었고, 그는 그녀에게 어떤 말도 남기지 않았다. 그 후로 소라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꺼렸다. 별들이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했기 때문이다.

노래가 끝나고, 지훈 DJ의 차분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언제나 아프지만, 특히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건넬 수 없었을 때 그 후회는 더욱 깊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꼭 목소리로 전하는 작별만이 전부일까요? 마음으로 주고받는 무언의 약속, 밤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나는 기억 또한 또 다른 형태의 작별 인사일 수 있습니다.”

소라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회피하며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지우에게 화가 났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더 화가 났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부재를 탓하며, 자신의 감정을 똑바로 마주하길 거부했던 자신에게.

“어쩌면 그 사람은, 밤하늘의 저 별이 되어 여전히 당신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별은 당신이 걸어온 모든 길을 조용히 비춰주고 있겠죠. 당신의 마음에 닿지 못한 말들은, 저 별빛 속에 담겨 먼 곳에서도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줄 겁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DJ의 위로에 소라는 그제야 억눌렀던 감정들을 터트렸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오래전, 작별 인사 없이 사라진 지우에게 전하지 못했던 수많은 말들, 그리고 그를 용서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보내는 미안함이 뒤섞여 그녀의 가슴을 저몄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눈물은 아픔과 함께 해방감을 가져다주었다.

라디오는 다음 곡을 소개했고, 소라는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창밖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예전에는 슬픔의 잔해로만 보였던 그 별들이, 이제는 조용히 자신을 응원하는 듯 느껴졌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어쩌면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우에게, 그리고 자신의 과거에게,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건넬 시간. 혹은, 어쩌면 새로운 인사를 건넬 시간.

소라는 잠시 망설이다, 라디오 옆에 놓인 수첩을 집어 들었다. 펜을 들고, 조심스럽게 첫 문장을 써 내려갔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DJ님께…’ 그녀는 이제야,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그 이야기를 통해, 그녀의 마음속에 꺼지지 않는 별 하나를 다시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