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기적 – 제743화

새벽 공기를 가르며 굽이굽이 산모퉁이를 돌아선 이들은, 언제나처럼 따스한 빛을 발하는 작은 빵집을 발견한다. 창 너머로 흘러나오는 구수한 빵 내음은 차가운 아침 바람 속에서도 길 잃은 영혼을 불러들이는 등대 같았다. 은지 씨는 오늘도 새벽부터 오븐을 달구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갓 구워낸 호두빵이 김을 뿜고, 식반에 놓인 소보로빵은 뽀얀 속살을 드러내며 빵집 안을 달콤한 향으로 채웠다.

“은지 씨, 오늘도 부지런하구먼.”

익숙한 목소리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김 할아버지였다. 허리가 예전보다 더 굽은 듯했지만, 눈빛만은 또렷했다. 은지 씨는 환한 미소로 할아버지를 맞았다. 할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창가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메밀차를 주문하곤 했지만, 오늘은 어딘가 모르게 표정이 어두웠다.

“할아버지, 평소 드시던 찰깨빵도 갓 나왔어요. 하나 드릴까요?” 은지 씨가 쟁반에 빵을 담으며 물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늘은 빵은 됐네. 은지 씨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 말이야.”

은지 씨는 할아버지의 심상찮은 표정에 쟁반을 내려놓고 의자 하나를 끌어와 마주 앉았다. “무슨 일이세요, 할아버지? 말씀해보세요.”

할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주가 내 할멈 기일일세. 매년 이맘때면 할멈이 직접 해주시던 산쑥개떡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향을 맡을 길도 없으니.”

산쑥개떡은 흔한 쑥개떡과는 달랐다. 할머니가 직접 산에서 캐오던, 특정 시기에만 나는 아주 귀한 산쑥으로 만들던 것이었다. 향이 깊고 맛이 쌉쌀하면서도 달콤하여, 김 할아버지 부부에게는 단순한 떡이 아니라 추억의 징표였다. 할아버지는 매년 기일이면 그 쑥개떡을 상에 올리고 부인을 기렸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게도 산쑥을 구할 수가 없어서 말이야. 이 근방 산쑥밭은 물론이고, 옆 마을 장터에서도 씨가 말랐다고 하더군. 지난달 갑자기 들이닥친 이상 한파 때문에 쑥 작황이 엉망이라지 뭔가. 다른 쑥으로는 그 맛이 안 나는데….”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 속에는 잃어버린 추억에 대한 깊은 아쉬움이 배어 있었다.

은지 씨는 할아버지의 표정에서 단순히 쑥개떡을 원하는 것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 떡은 할아버지에게는 할머니와의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빵집을 열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들었고, 음식에 담긴 의미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다. 은지 씨의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졌다.

“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제가 꼭 그 산쑥을 찾아낼게요. 할머니의 쑥개떡, 제가 꼭 만들어드릴게요.”

할아버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은지 씨를 바라보았다. “찾겠다고? 어디서 말이여? 그 귀한 쑥을….”

“방법이 있을 거예요. 할아버지 댁 산쑥밭이 아니더라도, 분명 어딘가에는 남아있을 거예요.” 은지 씨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작은 빵집은 단순히 빵을 파는 곳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의 소망이 모이고, 때로는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이 빵집의 이름에 걸맞게, 이번에도 기적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날부터 은지 씨는 산쑥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새벽에는 빵을 굽고, 낮에는 빵집 문을 걸어 잠근 채 산으로 향했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수소문하고, 멀리 떨어진 장터까지 발품을 팔았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말처럼, 그 귀한 산쑥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온몸은 땀으로 젖고, 얼굴은 먼지로 얼룩졌지만, 은지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지친 몸으로 빵집으로 돌아오던 길. 소라가 저만치서 뛰어왔다. 소라는 빵집의 꼬마 단골이자, 가끔 빵 굽는 것을 돕기도 하는 명랑한 아이였다. “은지 언니! 할아버지 쑥개떡 때문에 그러는 거죠?”

은지 씨는 소라에게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해주었다. 소라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눈을 반짝였다. “우리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옛날에는 저기, 더 깊은 산골짜기에 약초꾼들만 아는 아주 특별한 쑥밭이 있었다고요! 지금은 다들 잊고 안 간다고 하지만, 혹시 거기에 있을지도 몰라요!”

은지 씨의 가슴에 희망이 솟아올랐다. 다음 날 아침, 은지 씨는 소라의 할머니가 알려준 옛 약초꾼 길을 따라 산을 올랐다. 길은 험하고 발길이 닿지 않아 수풀이 무성했다. 오래전 길이 사라진 듯했지만, 은지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김 할아버지의 간절한 얼굴이 계속 아른거렸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고, 덩굴을 헤치며 나아가기를 몇 시간. 마침내 작고 평평한 터를 발견했다. 햇볕이 잘 들고, 습기가 적당히 감도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마치 기적처럼, 푸릇한 산쑥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다. 다른 곳의 쑥들과는 확연히 다른, 짙은 녹색의 생명력을 품은 채였다.

“찾았다…!”

은지 씨는 무릎을 꿇고 앉아 조심스럽게 산쑥을 캐기 시작했다. 양은 많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쑥개떡을 만들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흙 묻은 쑥을 품에 안고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웠다. 빵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은지 씨는 정성스럽게 쑥을 다듬고 씻었다.

갓 찧은 찹쌀가루에 쑥을 넣고 반죽을 시작했다. 할머니의 레시피를 되살리기 위해, 은지 씨는 마치 할머니가 옆에 계신 듯 하나하나 정성을 다했다. 쑥의 향이 찹쌀가루와 어우러져 빵집 안 가득 퍼져나갔다. 오븐에서 빵이 구워지는 냄새와는 또 다른, 싱그러우면서도 고소한 향이었다.

찜기에 떡을 찌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나하나 빚어낸 쑥개떡은 할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담아낸 듯했다. 짙은 녹색과 쫄깃한 식감, 그리고 입안 가득 퍼지는 깊은 산쑥의 향은 그 어떤 명품 빵보다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은지 씨는 따뜻한 쑥개떡을 곱게 포장하여 김 할아버지 댁으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은지 씨가 건넨 쑥개떡을 받아 든 할아버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포장을 열자마자 익숙한 산쑥 향이 코끝을 스쳤다.

할아버지는 쑥개떡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쌉쌀하면서도 달큰한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그리고 이내 할아버지의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 “이 맛이야… 할멈이 해주던 그 맛 그대로네… 아니, 어쩌면 더 깊고 따뜻한 것 같구먼.”

할아버지의 눈물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잊고 살았던 추억과 그리움, 그리고 그 추억을 다시 찾아준 은지 씨에 대한 고마움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정말 고맙네, 은지 씨. 자네는 정말 이 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야.”

은지 씨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말에 울컥했다. 기적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작은 소망을 귀 기울여 듣고, 그것을 이루어 주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하는 것.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고, 사랑이 피어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작은 빵집이 만들어내는 진정한 기적이었다. 빵집은 오늘도 따뜻한 빵과 함께,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