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진관에서 생긴 일 – 제177화

오래된 사진관의 유리문이 달그락, 소리 없이 흔들렸다. 현우는 익숙한 셔터 소리에 잠시 작업실 문을 열었다가 이내 도로 닫았다. 인화액 냄새가 희미하게 코끝을 스쳤다. 그는 낡은 현상 접시에 조심스레 사진을 담그고 있었다. 스무 해를 훌쩍 넘긴 사진은 이미 빛바래고 군데군데 훼손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을 되살리는 일은 언제나 현우의 심장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유난히 손이 떨렸다. 얼마 전, 이름 모를 여인이 놓고 간 사진이었다. 보라색 스카프를 두른 여인과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한 남자의 뒷모습. 사진 속 공간은 낯설었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묘하게 현우의 어린 시절 한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그는 돋보기로 사진 구석구석을 살폈다. 흙먼지처럼 뿌옇게 내려앉은 세월의 흔적 속에서, 그는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현상액에 담긴 사진이 점차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흐릿했던 여인의 스카프 색깔이 좀 더 또렷해지고, 남자의 굽은 어깨선도 윤곽을 드러냈다. 현우는 숨을 죽였다. 사진 가장자리에 희미하게 새겨진 글자들을 발견한 것이다. 현상액이 마르면서 글자들이 더욱 선명해졌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것은 누군가의 필체였고, 현우는 그 필체를 평생 잊은 적이 없었다. 손글씨로 쓰인 작은 날짜와 짧은 한마디. ‘그곳에서 다시 만나다.’

현우는 사진을 꺼내 작업대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사진 속 남자의 뒷모습을 다시 응시했다. 자세히 보니 남자의 외투 왼쪽 어깨 부근에 작은 자수 흔적이 보였다. 아주 오래전, 자신이 직접 수놓아 준 작은 배 모양의 자수였다. 그 자수는 현우의 형, 현규의 외투에만 있었다. 열 살에 불과했던 현우의 서투른 바느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양은 결코 잊을 수 없었다.

“형…” 현우의 입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이름은 십오 년간 그의 가슴속에 묻혀 있던 뜨거운 숯덩이와 같았다. 십오 년 전, 그는 형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믿어왔다. 그의 가족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매년 형의 기일에 찾아가 추모했지만, 이 사진은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사진 속 날짜는 형의 기일보다 몇 년 후의 날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필체는 틀림없이 형의 것이었다. ‘그곳에서 다시 만나다.’ 그렇다면 형은 죽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이 사진은 또 다른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일까?

현우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오랜 세월 침묵했던 사진관은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과거의 비밀을 속삭이는 듯했다. 그의 눈은 사진 속 남자의 뒷모습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진실이 한 줄기 빛을 찾아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는 사진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 사진은 단순한 추억의 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닫혔던 문을 다시 열어젖히는 열쇠였다. 그는 이제 십오 년 전의 그날로, 형의 흔적을 좇아 되돌아가야만 했다. 감춰진 이야기의 서막이 다시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