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이름, 다시 찾아온 숨결
할머니의 낡은 일기장은 나의 손끝에서 다시 한 번 역사의 무게를 토해냈다. 얇지만 거친 종이 한 장 한 장에는 할머니의 눈물과 침묵, 그리고 끝내 지워지지 않은 사랑이 얼룩처럼 배어 있었다. 오늘은 그 얼룩 중에서도 유독 짙은 얼룩 하나를 마주한 날이었다.
일기장은 1960년대 초반, 희망과 절망이 뒤섞여 부유하던 시대의 페이지를 펼쳐 보였다. 서툰 글씨체는 여느 때처럼 할머니의 고뇌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1961년 늦은 가을, 서리 내린 새벽녘
가슴에 품은 아이를 떠나보낸다. 내 자식은 아니지만, 내 살점보다 더 아리게 아픈 아이. 정호야, 부디 모진 세상에서 곱게 살아다오. 네가 웃는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이 어미는 그것으로 족하리라. 이름조차 제대로 불러보지 못하고, 이 차가운 품을 떠나보내야 하는 죄인이지만, 언젠가… 언젠가 너를 다시 찾을 날이 오겠지. 이 어미의 마지막 소원이다.
…오늘은 춘천 장터에서 멀리서나마 너를 보았다. 훌쩍 자라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더구나. 낡은 작업복을 입고도 그리 해맑게 웃는 너를 보며, 이 어미는 숨죽여 울었다.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 천추의 한이지만, 네가 행복해 보여 참 다행이다. 살아 숨 쉬는 너를 보았으니, 이젠 죽어도 한이 없다…
펜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정호. 그 이름은 내 가족사에서 한 번도 언급된 적 없는 이름이었다. 우리 엄마의 오빠? 아니면, 할머니의 오래된 지인의 아들? ‘내 자식은 아니지만, 내 살점보다 더 아리게 아픈 아이’라는 구절이 뇌리를 때렸다. 할머니는 도대체 누구를, 어떤 사연으로 떠나보냈던 걸까. 그리고 왜 이토록 긴 세월 동안 이 비밀을 가슴에 묻고 사셨을까.
숨죽인 채 페이지를 넘기자, 오래된 갈색 봉투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얇고 바스락거리는 촉감. 봉투 안에는 손때 묻은 흑백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낡고 빛바랬지만, 사진 속 청년의 얼굴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그 푸른 눈동자와 살짝 치켜 올라간 입꼬리… 낯설지 않았다. 아니, 익숙하다 못해 불길한 데자뷔를 선사했다.
사진 뒷면에는 할머니의 흘려 쓴 글씨가 있었다. 손떨림이 느껴지는 희미한 글씨.
정호. 김해시 동상동 27-3. 1980년 봄.
김해시 동상동. 그 이름은 나의 가슴에 차가운 돌덩이를 얹었다. 우리 할머니가 생의 마지막 몇 년을 보냈던 그 요양원 근처였다. 그리고 그곳은… 내가 가끔 마주치곤 했던, 낡은 사진관을 운영하던 백발의 할아버지와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심지어 그 할아버지의 사진관 이름이 ‘정호 사진관’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야 퍼즐처럼 맞춰졌다.
나는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두려움과 기대,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한데 뒤섞여 내 안을 휘감았다. 할머니는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어쩌면 자신의 ‘정호’를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살아왔던 것일까. 그리고 내가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다 드릴 때마다, 할머니는 그 사진관 앞을 지나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키셨을까. 내가 알아채지 못했던 그 수많은 순간들이 마치 회오리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정호… 할아버지?” 나는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사진 속 청년과 ‘정호 사진관’의 할아버지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할머니의 일기장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재와 과거를 잇는 끈이었고, 잊혀진 줄 알았던 인연을 다시 불러내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할머니는 평생을 가슴에 묻고 살았던 비밀을, 마지막 순간에 나에게 내어주신 것이었다. 이제 나는 그 비밀의 무게를 짊어지고 한 걸음 내딛어야 할 차례였다. 사진관 할아버지를 찾아가야만 했다.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어떤 상처가 다시 터져 나올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낡은 일기장이 내게 준 소명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휴대폰을 들었다. 저장된 번호 하나를 찾아 손가락을 가져갔다.
수십 년을 돌아 다시 만나는 이름. 정호. 그 이름 세 글자에 우리의 잊혀진 역사가 새로이 시작될 것만 같았다.
전화기 너머로 익숙한 벨소리가 울렸다. 나의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