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기적 – 제186화

산모퉁이 작은 빵집, ‘희망제과’의 아침은 언제나 갓 구운 빵의 온기로 가득했다. 노릇한 식빵이 오븐에서 뿜어내는 고소한 냄새, 달콤한 팥앙금 빵의 유혹적인 향기, 그리고 커피 머신이 뽑아내는 향긋한 내음이 어우러져 마을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그러나 오늘, 빵집 주인 지혜의 마음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한기가 돌았다. 평소 같으면 이 시간쯤 이미 창가 제일 안쪽 자리에 앉아 따뜻한 우유 한 잔과 담백한 쌀 빵을 드시곤 했을 김 할머니가 며칠째 보이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지혜는 빵 반죽을 치대는 손을 잠시 멈췄다. 할머니의 맑은 눈빛, 나이에 비해 곱게 드리워진 얼굴의 미소, 그리고 매번 똑같은 빵을 드시면서도 늘 “오늘 빵은 어쩜 이렇게 더 맛있어?”라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시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할머니는 빵집이 문을 연 이래,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주시던 소중한 손님이었다. 지혜는 할머니의 빈자리를 볼 때마다 빵집의 한쪽이 뻥 뚫린 듯한 허전함을 느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걸까. 마을 회관에도 나오지 않으신다는 소식이 어제 들려왔던 터라 지혜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사장님, 이 식빵은 이제 식힘망으로 옮길까요?”

어느새 뒤에서 다가온 아르바이트생 수아의 목소리에 지혜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 그래. 수아 씨가 마무리 좀 부탁해. 나 잠시 나갔다 올 곳이 있어서.”
지혜는 앞치마를 벗으며 말했다. 수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지혜는 “김 할머니 댁에 좀 다녀오려고. 며칠째 안 보이셔서 걱정돼서 말이야”라고 짧게 답했다.

오후 햇살이 따스하게 쏟아지는 산모퉁이 길을 지혜는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할머니의 댁은 빵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오솔길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속삭이는 소리가 마치 지혜의 불안한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아무 일 없으셔야 할 텐데.’

이윽고 할머니의 작은 집이 눈에 들어왔다.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마당에는 키 작은 풀들이 제멋대로 자라나 있었다. 평소 같으면 부지런히 가꿔졌을 할머니의 작은 텃밭에도 생기가 없었다. 지혜는 마른침을 삼키며 대문을 두드렸다. “할머니! 김 할머니!”

몇 번을 불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지혜의 심장이 불안하게 요동쳤다. 혹시… 지혜는 조심스럽게 닫힌 대문을 밀어보았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훅 끼쳐오는 서늘하고 눅진한 공기. 지혜는 조심스럽게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두드렸다. “할머니! 저 지혜예요! 빵집 지혜!”

잠시 후, 안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들렸다. 이내 문이 아주 살짝 열리고, 김 할머니의 얼굴이 빼꼼히 내밀어졌다. 할머니는 평소와 달리 핼쑥하고 기운 없는 모습이었다. 눈가에는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고, 창백한 입술은 겨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휴, 지혜 씨였어? 아이고, 이 꼴을 보일 순 없는데…”

할머니는 감기몸살로 며칠째 앓아누워 계셨다고 했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는 몸이 아파도 딱히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물 한 모금 넘기는 것도 힘들어 제대로 식사도 못 하신 채 그저 누워만 계셨던 것이다. 지혜는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할머니의 손에서 며칠간 홀로 겪으셨을 고통과 외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왜 진작 연락을 안 하셨어요, 할머니….”

지혜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할머니는 희미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지혜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지혜는 곧바로 부엌으로 가서 할머니를 위한 따뜻한 죽을 끓였다. 빵집에서 가져온 보들보들한 쌀 빵도 함께 접시에 담았다. 할머니는 지혜가 내민 죽 한 그릇과 빵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뜨거운 눈물을 떨구셨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지혜 씨….”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사와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 지혜는 할머니 곁에 앉아 등을 토닥였다. 빵집의 온기는 단순히 빵이 구워지는 온기만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고, 외로운 이에게 위안을 주며, 홀로 아픈 이의 손을 잡아주는 마음의 온기였다. 산모퉁이 작은 빵집에서 피어나는 기적은, 어쩌면 이렇듯 소박하지만 깊은 연결의 순간들 속에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날 오후, 지혜는 할머니가 편안하게 쉬실 수 있도록 뒷정리를 돕고 마을 보건소에 연락을 취해 할머니의 건강을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빵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혜의 발걸음은 더 이상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 한편이 따뜻한 빛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빵집의 불빛은 어둠이 내린 산모퉁이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지혜는 내일 아침, 할머니가 다시 빵집 창가에 앉아 환하게 웃으실 날을 고대하며 오븐에 또다시 새로운 빵 반죽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