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기적 – 제757화

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새벽은 언제나 고요하면서도 분주했다. 아직 해가 완전히 솟아오르기 전, 하늘은 희끄무레한 보랏빛과 새벽별 몇 개를 매달고 있었지만, 빵집 안은 이미 노란 불빛 아래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오븐에서 막 구워져 나온 빵들의 향긋한 내음이 공기 중에 가득했고, 그 향기는 마치 포근한 이불처럼 모든 것을 감싸 안았다.

오늘따라 견습생 미나의 얼굴에는 깊은 고민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며칠째 애를 먹이고 있는 ‘희망의 브리오슈’ 반죽이 놓여 있었다. 빵집을 오래도록 지켜온 할머니가 특별히 주문받은 레시피였다. 마을의 오래된 목재소 주인 부부가 결혼 50주년을 기념해 자식들을 위해 주문한 빵이었다. 버터와 달걀이 듬뿍 들어가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을 내야 하는 브리오슈는 섬세한 손길과 완벽한 온도, 습도 조절을 요구했다.

미나는 벌써 세 번째 실패였다. 첫 번째는 발효가 너무 과했고, 두 번째는 오븐 온도를 잘못 맞춰 겉만 타고 속은 설익었다. 오늘은 반죽 자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치대고 또 치대도 원하는 탄력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지지 않았다. 미나는 지친 한숨을 쉬며 반죽 위에 얇은 면포를 덮었다. 촉촉하게 습기를 머금어야 할 면포도 오늘따라 유난히 푸석해 보이는 건 그녀의 기분 탓일까.

“미나야, 오늘은 기운이 없네.”

오랜 세월 빵집의 시간을 함께해 온 할머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막 구워진 호밀빵을 식힘망 위에 정성스레 옮겨 놓으며 미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언제나처럼 따뜻했지만, 그 속에는 깊은 이해와 연륜이 담겨 있었다.

“할머니… 이 브리오슈가 영 제 마음 같지 않아요. 아무리 애를 써도 잘 안 돼요.”
미나는 결국 참았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이번에는 꼭 성공해야 하는데….”

할머니는 말없이 미나의 옆으로 다가와, 덮여 있던 면포를 살짝 걷어 반죽을 눈으로 훑었다. 그리고는 미나의 손에 남아있는 밀가루를 부드럽게 털어주며 말했다. “반죽도 사람 마음과 같단다. 초조하고 불안하면 제 모습을 온전히 내보이지 않지. 네가 편안해야 반죽도 편안해지는 법이야.”

할머니의 말에 미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조급하게 이 반죽을 대했는지 깨달았다는 듯 후회와 반성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목재소 부부에게 최고의 빵을 선물하고 싶다는 강박이 오히려 그녀의 손길을 경직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때, 빵집 문이 ‘딸랑’ 소리를 내며 열렸다. 새벽 일찍부터 빵집을 찾는 단골손님, 김영감님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뜨끈한 호밀빵 하나를 사서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 아내와 함께 마시던 커피를 홀로 마시곤 했다. 몇 년 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로, 그의 일상에서 빵집은 유일하게 따뜻한 위안을 주는 장소였다.

김영감님은 희끗한 머리카락과 깊은 주름이 패인 얼굴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미나가 고심하던 브리오슈 반죽을 흘깃 보고는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할머니, 오늘 브리오슈는 또 안되던가 봐요? 미나 아가씨 얼굴이 잔뜩 시무룩한 걸 보니.”

“허허, 영감님은 귀신이시네요. 젊은 아가씨가 뭘 모르는지 눈치챘으니.” 할머니는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김영감님은 호밀빵을 받아 들고는 미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말이오, 젊은 아가씨. 우리 마누라가 제일 좋아했던 빵이 브리오슈였는데. 그거 참 신기하게도, 우리 마누라가 기분이 좋으면 빵도 잘 부풀고, 잔뜩 화가 나 있으면 꼭 빵도 푸석하게 죽어버리는 거였어.”

미나는 김영감님의 말에 흠칫 놀랐다. 그의 말은 할머니가 했던 말과 같은 맥락이었다. 무심코 던진 듯한 그 이야기에 미나는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어르신은 어떻게….” 미나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김영감님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다 알게 되는 법이지. 빵도 그렇지 않을까? 만드는 사람의 마음을 다 알면서 제 모양을 내는 거지.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싶어.”

그의 말은 미나의 마음속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있던 그녀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김영감님은 호밀빵을 품에 안고 빵집 문을 나섰다. 그가 사라진 뒤에도 그의 따뜻한 조언은 빵집 안에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미나는 다시 반죽 앞에 섰다. 이번에는 초조함 대신, 조심스러운 다정함으로 반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았다. 목재소 부부의 50년 결혼 생활을 축하하는 마음, 그리고 이 빵을 먹을 그들의 자녀들이 느낄 기쁨을 상상했다. 따뜻한 마음을 담아, 손끝에서 느껴지는 반죽의 미묘한 변화에 온전히 집중했다.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부드럽게 치대고, 접고, 다시 치대기를 반복했다. 신기하게도 아까까지 고집스럽게 뭉쳐있던 반죽이 그녀의 손길에 부드럽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마치 화해를 청하는 듯 보드랍고 촉촉하게 변해갔다. 마침내 반죽은 거미줄처럼 얇게 늘어지는 탄성을 갖게 되었고, 미나의 입가에는 비로소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발효실에 반죽을 넣고 기다리는 동안, 빵집은 더욱 바빠졌다. 햇살이 창문을 넘어 들어와 따스한 그림자를 드리웠고, 갓 구운 빵들이 차례차례 진열대를 채웠다. 미나의 마음속에는 김영감님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완벽함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따뜻한 마음.’

오후가 되어 브리오슈가 오븐에서 나왔을 때, 그 모습은 그야말로 황홀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겉면은 바삭해 보였고, 그 안에서 풍겨 나오는 달콤하고 고소한 버터 향은 빵집 전체를 감쌌다. 빵을 조심스럽게 갈라보니, 속살은 촉촉하고 부드러웠으며, 공기층이 적절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미나는 성공한 브리오슈를 보며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다. 단순한 빵 하나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인내와 성장의 결실처럼 느껴졌다.

할머니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미나를 바라보았다. “네 마음이 편안해지니, 빵도 저리 예쁜 모습을 내어주는구나.”

미나는 할머니의 품에 안겨 가만히 눈을 감았다. 오늘 새벽, 그녀를 절망에 빠뜨렸던 브리오슈는 이제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산모퉁이 작은 빵집에서는 오늘도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그것은 완벽한 기술에서 오는 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이해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어나는 진심 어린 마음이 빚어낸 기적이었다. 이 기적은 내일 또 다른 모습으로 빵집을 찾아올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와 용기가 되어줄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