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기적 – 제778화

산모퉁이 작은 빵집에는 언제나 고소한 빵 굽는 냄새와 함께, 삶의 소소한 기적들이 깃들어 있었다. 쌀쌀한 초겨울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저녁, 빵집 안은 따뜻한 오븐의 열기와 윤서 씨의 손길에서 피어나는 온기로 가득했다.

“어서 오세요, 할머니. 오늘따라 바람이 매섭네요.”

윤서 씨는 진열된 갓 구운 호두 통밀빵을 정리하며 문을 열고 들어서는 김순자 할머니를 반겼다. 70년 세월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할머니의 어깨는 유난히 축 처져 보였다. 언제나 환한 미소로 빵집 문을 열던 할머니의 얼굴에는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응… 윤서 씨. 날이 추워지니 괜스레 마음도 시리네.”

할머니는 평소 앉던 창가 자리에 힘없이 앉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윤서 씨는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늘 듣던 활기찬 기운이 사라진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매일같이 빵집에 들러 손자 민준이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따뜻한 라테 한 잔과 보리 앙금빵을 드시던 할머니였다. 민준이가 서울로 유학을 떠난 지 이제 겨우 두 달이 지났을 뿐인데, 할머니의 기력은 눈에 띄게 약해진 듯했다.

“오늘도 보리 앙금빵이랑 따뜻한 라테 드릴까요?” 윤서 씨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그렇게 해줘. 근데 오늘은 라테 대신, 따뜻한 우유나 한 잔 줬으면 좋겠어.”

할머니의 말에 윤서 씨는 더욱 걱정스러워졌다. 할머니는 늘 “라테 거품처럼 부드러운 민준이 웃음소리가 듣고 싶다”며 라테를 고집하셨던 분이었다. 윤서 씨는 아무 말 없이 따뜻한 우유를 데우고, 오븐에서 막 나온 보리 앙금빵을 정성스레 접시에 담아 할머니 앞에 놓았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빵의 온기

할머니는 빵 조각을 조금씩 떼어내며 창밖을 응시했다. 멀리 보이는 산모퉁이에는 이미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빵집 안에는 오븐의 은은한 열기와 구수한 빵 내음, 그리고 조용한 음악만이 흐르고 있었다. 윤서 씨는 틈틈이 할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빵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잠시나마 일상의 시름을 잊고 미소 지었지만, 할머니의 얼굴은 좀처럼 펴질 줄 몰랐다.

다른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후, 빵집 안에는 윤서 씨와 할머니 단둘만 남았다. 할머니는 빈 우유잔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민준이한테서 어제 전화가 왔어. 공부가 너무 힘들대. 외롭다고… 친구들도 다 자기들끼리 지내는 것 같고,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는다고….”

할머니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지더니, 끝내 눈물을 글썽였다. “내가 가지 말라고 붙잡을 걸 그랬어. 여기 있으면 그래도 밥이라도 내가 해 먹일 텐데….”

윤서 씨는 조용히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할머니의 마음에 켜켜이 쌓인 슬픔과 죄책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타지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손자에 대한 염려가 할머니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 민준이가 힘들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에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민준이도 분명 이겨낼 거예요. 할머니가 민준이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민준이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윤서 씨는 할머니의 손을 조용히 잡아주었다. 할머니의 손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따뜻한 온기가 할머니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며 윤서 씨는 할머니의 손을 꼭 쥐었다.

잃어버린 식욕을 되찾아 줄 작은 희망

그날 밤, 빵집의 불은 여느 때보다 늦게까지 꺼지지 않았다. 윤서 씨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민준이가 가장 좋아했던 빵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렸다. 호기심 많던 민준이는 빵집의 모든 빵을 맛보고는, 달콤한 밤맛이 가득한 ‘밤 조림 깜빠뉴’를 최고로 꼽곤 했다. 하지만 윤서 씨는 할머니의 아픈 마음에 위로를 건네려면 단순한 맛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윤서 씨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반죽을 시작했다. 할머니의 마음이 담긴 빵, 민준이에게 따뜻한 위로와 힘을 전해 줄 빵. 그것은 평범한 밤 조림 깜빠뉴가 아니었다. 빵에 대한 윤서 씨의 사랑과 할머니를 향한 진심, 그리고 민준이에 대한 응원의 마음이 함께 반죽되어야 했다.

새벽녘, 오븐에서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진동했다. 윤서 씨는 갓 구워낸 빵을 바라보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며, 빵 사이사이에는 달콤한 밤 조림이 가득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윤서 씨가 직접 만든, 할머니 댁 텃밭에서 따온 고구마로 만든 고구마 조림도 함께 들어있었다. 익숙한 맛과 함께 고향의 포근한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빵의 따뜻한 온기가 마치 민준이를 꼭 안아주는 할머니의 품처럼 느껴지기를 바라면서.

다음 날 아침, 빵집 문이 열리자마자 김순자 할머니가 어김없이 빵집을 찾았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여전히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제의 무기력함과는 다른, 희미한 기대감이 엿보였다. 윤서 씨는 환하게 웃으며 할머니를 맞았다.

“할머니, 어서 오세요! 오늘은 특별히 할머니를 위해, 그리고 민준이를 위해 만든 빵이 있어요.”

윤서 씨는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빵을 예쁜 상자에 담아 할머니에게 건넸다. ‘밤고구마 깜빠뉴’라고 이름 붙여진 빵이었다.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받아 들었다. 상자 속에서 피어나는 달콤하고 구수한 냄새가 할머니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이게… 민준이 주려고 만든 거니?”

“네, 할머니. 밤 조림뿐만 아니라, 할머니 댁 텃밭 고구마로 만든 조림도 넣었어요. 민준이가 이 빵을 먹으면 할머니 손맛과 이곳 빵집의 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공부 힘내라고, 외로워하지 말라고, 할머니와 윤서 씨가 항상 응원하고 있다고, 그렇게 전해주세요.”

할머니는 윤서 씨의 따뜻한 마음에 그만 눈시울을 붉혔다. 빵 상자를 품에 안은 할머니의 어깨는 어제보다 훨씬 가벼워 보였다. 이 빵이 민준이에게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고향의 품이자 할머니의 사랑, 그리고 이곳 산모퉁이 빵집의 따뜻한 기운을 전해줄 것임을 할머니는 직감했다. 작은 빵 하나가 이어진 온기 어린 마음이, 멀리 떨어진 이들을 다시 이어줄 희망의 불씨가 되기를 바라며, 윤서 씨는 할머니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따뜻한 미소로 배웅했다.

산모퉁이 작은 빵집에는 그렇게, 오늘도 작은 기적이 움트고 있었다. 빵이 전하는 위로와 사랑으로, 세상의 모든 외로움과 고통이 조금은 더 따뜻해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