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리는 시계 – 제244화

차가운 새벽 공기가 낡은 시계탑의 창문을 비집고 들어와, 지우의 뺨을 스쳤다. 수많은 시간을 되돌리며 마모된 그녀의 얼굴은 이제 스무 살의 앳된 모습이라기보다는, 백 년을 살아온 고목처럼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탁, 탁, 탁. 귓가를 맴도는 시계추 소리가 심장 박동과 겹쳐 울렸다. 시간의 감옥에 갇힌 간수의 심장이 저리할까.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은 추위 때문이 아니라, 지쳐버린 영혼의 마지막 발악과도 같았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낡은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 이 작고 보잘것없는 물건이 그녀의 삶을, 아니, 그녀의 수많은 삶을 지배해왔다. 민준이를 잃었던 그날 이후, 그녀의 모든 시간은 오직 그를 살리기 위한 헛된 반복이었다. 처음엔 희망이었다. 단 한 번만 되돌릴 수 있다면, 그날 민준이와 함께 갔던 놀이공원 대신 도서관에 갔더라면, 그를 잡고 있었던 손을 놓지 않았더라면… 수천 번의 ‘만약’이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수백 번 시간을 되돌려 봤지만, 결과는 언제나 비극이었다. 민준이가 사고를 피하면 다른 이가 다치고, 그 아이가 무사하면 민준이는 다른 방식으로 사라졌다. 마치 우주의 섭리가 그녀의 오만을 비웃는 듯했다. 한 번은 민준이가 살아났지만, 엄마 아빠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또 한 번은 그녀 자신이 태어나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이제 그녀는 거대한 실타래처럼 엉켜버린 시간 속에서 길을 잃은 미아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그녀는 마지막 기회를 얻었다. 아니, 마지막 선택을 강요받았다. 늙은 시계탑 관리인, 현명하고도 슬픔에 잠긴 눈을 가진 노인이 그녀에게 방법을 알려주었다. 단 한 번. 단 한 번만 더 시계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 그것은 그녀의 존재 자체를 대가로 하는 것이었다. 민준이가 죽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그녀가 민준이를 대신해 사고를 당하는 것. 그렇게 되면 민준이는 살지만, 그녀에 대한 모든 기억은 시간 속에서 사라진다. 누구도 그녀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민준이조차도. 그녀는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찬란하게 빛나던 첫눈 같은 지우의 기억 속 민준이는,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어주던 여섯 살의 개구쟁이였다. 그녀는 그 미소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릴 수 있을까. 사랑하는 이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공포였다. 존재의 소멸. 그녀는 수없이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정말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밤은 깊어지고, 시계탑의 큰 종소리가 멀리서 울려 퍼졌다. 뎅—. 뎅—. 열두 번의 종소리. 자정이다. 선택의 시간.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를 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시계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그녀의 손안에서 미약하게 고동치는 듯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마주했다. 낯선 얼굴. 수십 년의 회귀 속에서 변형되어버린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 그녀 자신이 아니었다. 지쳐버린 눈빛, 희미해진 윤곽. 그녀는 누구인가? 민준이를 살리려 애썼던 누나인가? 아니면 시간의 저주에 갇힌 죄수인가? 그녀의 정체성은 이미 민준이의 생존과 얽혀 있었다. 그가 없다면 그녀는 처음부터 이 모든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이 없었다면, 그녀는 이토록 강한 사랑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갑자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민준이가 아팠을 때, 밤새 열에 시달리던 그를 간호했던 기억. 민준이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누나가 있어서 좋아’라고 속삭이던 그 따뜻한 순간들. 그 기억들이 그녀의 심장을 찢어 놓았다. 그 기억들이 사라진다면, 이 모든 순간들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민준이는 슬픔 없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녀가 없는 행복이 과연 행복일까?

하지만… 민준이에게는 행복할 권리가 있었다. 그녀의 오만과 집착 때문에 그의 삶이 위태로워지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했다. 그녀는 이제야 깨달았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답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그를 사랑한다면, 놓아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뜨거웠다. 고통스럽게 뜨거웠다. 그것은 지난 수백 번의 회귀 동안 흘렸던 차가운 절망의 눈물과는 달랐다. 이것은 사랑과 체념, 그리고 이해로 범벅된, 따뜻하고 슬픈 눈물이었다.

그녀는 시계를 높이 들었다. 마치 신에게 마지막 기도를 올리듯. 시계의 낡은 다이얼이 그녀의 손가락 끝에 닿았다. 망설임은 사라지고, 오직 결연한 의지만이 남았다. 그녀의 기억이 사라질지라도, 그녀의 존재가 소멸될지라도, 민준이가 살아 숨 쉬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웃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녀는 그를 너무나 사랑했으므로.

그녀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시계의 태엽을 돌리기 시작했다. 째깍, 째깍, 째깍. 익숙한 시계 소리가 과거로의 문을 열었다. 푸른빛이 시계에서 뿜어져 나오며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빛은 점점 강렬해져 지우의 온몸을 휘감았다. 마치 부서지는 파도처럼 그녀의 존재를 휩쓸어 가는 듯했다. 그녀의 몸이, 그녀의 기억이, 그녀의 이름이, 시간의 강물 속으로 서서히 녹아들기 시작했다. 고통은 없었다. 오직 평화만이 감돌았다. 마치 오랜 여행 끝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순간, 그녀는 문득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이것이 진정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과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얽매였던 자신을 놓아주는 것. 그녀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푸른빛이 그녀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린 후, 시계탑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텅 빈 공간, 그리고 다시 규칙적으로 울리는 시계추 소리만이 남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단, 낡은 탁자 위에 놓인 시계만이, 그 푸른빛의 잔흔을 품은 채,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시계 바늘은, 이제 그녀가 없던 그 과거의 어느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멀리, 어느 도시의 한 가정집에서, 여섯 살의 민준이가 해맑게 웃으며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행복했다. 그리고 누군가, 그에게 아주 소중했던 존재가, 있었어야 할 그 자리는, 영원히 비어 있었다. 그 빈자리의 의미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누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