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의 달은 유난히 둥글고 푸르렀다. 오랜 전설처럼 검은 밤의 장막을 찢고 쏟아지는 달빛은, 지우의 낡은 정원 구석에 드리운 고목의 그림자를 더욱 기묘하게 늘어뜨렸다. 심장은 먹구름 속 천둥처럼 요동쳤다. 예감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이 그녀를 이 밤의 어둠 속으로 내몰았다.
지우는 낡은 돌계단을 조심스레 밟았다. 발아래 부서지는 마른 나뭇잎 소리가 날카로운 비명처럼 들렸다. 저 멀리, 한때 무성했던 장미 넝쿨이 시든 채 앙상한 가시만 남은 작은 정자. 그곳이 그녀와 류진의 비밀스러운 무대였다. 잊힌 선율을 타고 발끝으로 세상을 그리던 류진의 모습이, 지우의 뇌리에서 한 번도 지워진 적이 없었다.
정자에 다다르자, 달빛이 쏟아지는 마당 한가운데서 홀로 춤추는 그림자가 보였다.
숨이 멎었다.
얇은 비단옷자락이 밤바람에 휘날리며 그림자처럼 일렁였다. 길고 가는 팔은 마치 달빛을 그러모으려는 듯 허공을 갈랐고, 가느다란 손끝은 보이지 않는 실타래를 잣는 듯 섬세하게 움직였다. 모든 동작에는 슬픔과 갈망,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아름다움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류진의 춤이었다. 틀림없었다.
지우의 눈가에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몇 년 전, 홀연히 사라져 모든 이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져 가던 류진. 그의 죽음을 확인하지 못하고, 살아있다는 희망조차 품을 수 없었던 지우는 매일 밤 이 정원을 서성였다. 혹시라도 그의 잔향이 남아있을까, 그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을까 하여. 그리고 오늘 밤, 그 그림자가 현실이 되어 그녀의 눈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림자는 격정적으로 돌고, 때로는 멈춰 서서 절규하듯 허공을 응시했다. 달빛이 그의 몸을 감싸 안았지만, 그의 표정은 그림자 속에서 영원히 숨겨져 있었다. 지우는 감히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었다. 환영일까? 간절함이 만들어낸 착시일까? 혹은, 그의 혼이 아직 이 정원을 맴돌고 있는 것일까?
춤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그림자는 마지막 회전을 마치며, 마치 실오라기처럼 가늘어진 달빛 줄기를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머리에서 작은 장신구 하나가 툭, 하고 떨어져 나왔다. 은은한 빛을 머금은 옥비녀였다. 지우는 저 옥비녀가 류진의 것이 아님을 단번에 알아챘다. 류진은 언제나 단순한 것을 선호했다. 저 비녀는 낯설고, 어딘가 이질적이었다.
옥비녀가 땅에 닿자마자, 하늘에 옅은 구름 한 조각이 스쳐 지나가며 달빛을 가렸다. 순간적으로 정원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춤추던 그림자는 그 어둠 속으로 마치 녹아들 듯 사라졌다. 지우는 황급히 눈을 비볐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 소리만이 그녀의 귓가를 스쳤다. 마치 모든 것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진 뒤였다.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뛰었다. 지우는 휘청이며 그림자가 사라진 자리로 달려갔다. 땅 위에 홀로 반짝이는 것은 아까 떨어졌던 옥비녀였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낯선 문양이 새겨진 옥비녀는 그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비밀의 열쇠처럼, 또는 그녀를 이 밤의 미스터리로 이끄는 안내자처럼 느껴졌다.
류진이었을까? 아니면 그를 모방한 누군가? 아니면 그저 그녀의 그리움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할까? 지우는 옥비녀를 꽉 움켜쥐었다. 차가운 옥의 감촉이 그녀의 손에서 뜨겁게 달아오르는 듯했다. 그녀의 눈은 더 이상 슬픔에 잠겨 있지 않았다.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가 다시금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달빛 아래 춤추던 그림자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것은 시작이었다. 새로운 밤의 서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