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219화

파도 소리가 모든 생각을 집어삼킬 듯 밀려왔다. 김민준은 거친 숨을 고르며 방파제 끝에 섰다. 낡고 바랜 사진 한 장이 그의 손안에서 축축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사진 속에는 서연이 앳된 얼굴로 등대 아래서 웃고 있었다. 이 사진을 건네준 이는 서연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수십 년 전, 서연이 즐겨 찾던 곳이라 했다. 그리고 그 등대는 지금, 민준의 눈앞에 우뚝 솟아 있었다.

그는 이곳을 찾아내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던가. 지도 속 희미한 선들을 더듬고, 잊힌 이정표를 찾아 헤매며 여기까지 왔다. 희망은 한 올의 실처럼 가늘고 끊어질 듯 위태로웠지만, 결코 놓을 수 없는 유일한 끈이었다.

등대 아래 작은 언덕에는 캔버스 앞에 앉아 바다를 그리는 한 여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바람에 나부끼는 그녀의 머리카락, 캔버스를 향해 기울어진 어깨선, 붓을 잡은 손의 섬세한 움직임까지… 민준의 심장이 발작하듯 뛰어댔다.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마치 오랜 꿈속에서 헤매다 현실로 튀어나온 환영 같았다.

“서연…”

그의 목소리는 파도 소리에 묻혀 희미하게 흩어졌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수십 년을 기다려온 순간이 눈앞에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다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에게 가까워질수록, 그의 눈은 캔버스 위 그림에 닿았다. 익숙한 등대의 모습, 그 주변의 풍경… 서연의 그림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녀의 숨결이, 그녀의 예술혼이 여기에 깃들어 있는 듯했다.

바로 그때, 여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햇살에 살짝 가려져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민준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의 심장을 찢는 듯한 싸늘한 실망감이 전신을 덮쳤다.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을 착각했습니다.”

여인은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가끔 저를 착각하는 분들이 계시죠. 여기 풍경이 워낙 그림 같아서요.”

아니었다. 풍경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그림 때문이었다. 그녀의 캔버스, 그녀의 붓놀림… 그 모든 것이 서연을 닮아 있었다. 실망감 속에서도 민준은 끈질기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 이젤… 오래된 것 같은데, 원래 가지고 계셨던 건가요?”

여인은 자신의 낡은 이젤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뇨. 몇 년 전에 우연히 물려받은 거예요. 그림 동호회 선배님이 이제 그림을 못 그리게 되셨다고 이걸 저한테 주셨죠. 왜요?”

민준은 이젤의 한 귀퉁이에 새겨진 희미한 상처를 발견했다. 날카로운 도구에 긁힌 듯한 작은 자국. 서연이 미대에서 쓰던 이젤에도 똑같은 자국이 있었다. 그녀가 실수로 조각칼을 떨어뜨렸을 때 생긴 상처였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혹시 그 선배님 성함이… 서연이라는 분이셨나요?” 민준의 목소리는 희망과 두려움으로 미세하게 떨렸다.

여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맞아요. 서연 선배님. 지금은 연락이 잘 안 되지만요… 아, 그러고 보니 서연 선배님도 저처럼 이 등대 근처에서 그림 그리시는 걸 좋아하셨어요.”

서연 선배님. 그 이름이 민준의 가슴을 후벼 팠다. 그녀가 이곳에 있었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서연이 이곳에 왔었고, 그림을 그렸으며, 이 이젤을 사용했다. 심지어 그 이젤은 그녀가 아끼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왜… 왜 그녀는 다시 사라졌을까.

민준은 이젤 아래쪽에 무심하게 끼워져 있는 작은 스케치 한 장을 발견했다. 반쯤 그려진 그림. 해풍에 살짝 바랜 종이 위에는 익숙한 풍경이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등대와 바다, 그리고 그 옆에 홀로 피어난 작은 꽃들… 마치 서연의 영혼이 종이 위에 춤추는 것 같았다. 그 꽃은, 오직 서연만이 그리는 방식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그는 천천히 스케치를 집어 들었다. 아직 물감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듯했다. 심장이 다시 격렬하게 울렸다. 그녀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아주 가까이,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 다시 한 발자국 늦었다.

파도 소리는 여전히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했지만, 민준의 귀에는 오직 서연의 이름만이 메아리치는 듯했다. 그녀의 흔적은 그를 다음 행선지로 이끌고 있었다. 놓쳐버린 시간만큼, 그의 발걸음은 더욱 다급해졌다. 그는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녀를 찾기 위한 또 다른 실마리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