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252화

안녕하세요.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입니다. 수요일 밤, 지혜입니다.

창밖은 벌써 짙은 남색으로 물들었네요. 몇 시간 전만 해도 여릿하게 남아있던 노을빛은 이제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작고 빛나는 점들이 하나둘씩 채워가고 있습니다. 서울의 밤은 언제나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하지만, 오늘은 왠지 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지는 밤입니다.

오늘 첫 곡으로 김광석 님의 ‘밤이 깊었네’를 보내드렸습니다. 이 곡은 제게 언제나 깊은 위로를 건네주는 노래인데요, 여러분에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라디오를 켜고, 잔잔한 음악과 제 목소리에 기대어 오늘 하루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생각이 흐르는 대로, 별들이 속삭이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방금 막 도착한 사연 하나 읽어드릴게요. 익명을 요청하신 분께서 보내주셨습니다.

‘지혜 DJ님,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옥상에 올라가 별을 보다가 문득 아주 오래전의 한 밤을 떠올렸습니다. 그때도 오늘처럼 별이 쏟아지는 밤이었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돗자리를 깔고 누워 아무 말 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세상에 우리 둘만 존재하는 것 같았고, 모든 것이 영원할 줄 알았어요. 그때 그 사람이 제게 그랬죠. ‘우리 헤어져도, 언젠가 이렇게 별을 보면 서로를 기억하자’고요. 저는 웃으면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지만, 시간이 흘러 정말 우리가 헤어지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된 지금, 저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그때의 약속을 떠올리며 별을 봅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어떤 별을 보고 있을까요? 저처럼 쓸쓸함과 그리움에 잠겨 있을까요? 아니면 이미 그 밤의 약속을 잊고 행복한 꿈을 꾸고 있을까요? 저만 이토록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 때로는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 별빛 아래서 그 사람의 온기를, 그 사람의 목소리를, 그 사람의 웃음소리를 다시 한번 느끼고 싶을 뿐인데요. 이 밤, 그 사람에게 안녕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잘 지내고 있다고, 나도 잘 지내고 있다고. 그리고 그때의 우리를 기억한다고.’

참 아름답고도 아련한 사연이네요. 별이 쏟아지는 밤, 그리고 그 아래서 나눴던 약속. 익명으로 사연을 보내주신 분의 마음이 제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별을 보면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저에게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만큼이나 반짝이는 꿈을 선물해 주었던 사람이죠.

그때의 저는 이 작은 라디오 스튜디오에 앉아 이렇게 여러분과 소통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마이크 앞에 서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제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 목소리를 들려주는 꿈을 꾸게 된 건 순전히 그 사람 덕분이었으니까요. 그 사람은 제게 ‘지혜야, 네 목소리는 밤하늘의 별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비춰줄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오글거리는 표현이지만, 그때는 그 말이 제 세상의 전부가 되는 것 같았어요.

우리는 함께 밤늦도록 라디오를 듣곤 했습니다. 조용한 방 안을 채우는 DJ의 목소리와 선곡된 음악들은 그 시절 저에게 세상의 전부나 다름없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 따뜻한 우유 한 잔을 앞에 두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던 우리는 미래를 꿈꿨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공기만큼은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코끝을 스치던 차가운 밤공기, 창밖에서 들려오던 미약한 풀벌레 소리, 그리고 나란히 앉아 어깨를 기댄 채 함께 느꼈던 그 막연한 희망들.

시간은 흘러 그 사람과 저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 사람의 말처럼, 제 목소리가 누군가의 밤을 비춰주는 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나 커서, 다른 모든 것을 놓쳐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별은 찢어지는 아픔을 주지만, 어떤 이별은 이렇게 잔잔한 그리움만을 남깁니다. 마치 낡은 책갈피에 끼워둔 마른 꽃잎처럼, 그때의 기억은 향기는 사라지고 형태만 남아 아련하게 마음 한구석을 채웁니다.

오늘 사연을 보내주신 분의 ‘그 사람’처럼, 저 역시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때의 그 약속, 별을 보며 서로를 기억하자는 그 약속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그저 저 혼자만의 추억으로 남아 버린 걸까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어쩌면 꼭 서로를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을 겁니다. 그 밤의 별들이 그랬듯, 그때의 추억이 제 삶의 한 부분을,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소중한 조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함께 별을 보고, 그때의 기억을 나누며, 누군가의 밤에 작은 위로를 건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시간과 감정은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이 밤, 어떤 별을 보고 계신가요? 그리고 그 별빛 아래서 어떤 사람을, 어떤 순간을 떠올리고 계신가요? 어떤 감정이든 좋습니다. 그 감정들을 외면하지 마세요.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밤하늘 아래서 각자의 별을 보고, 각자의 기억을 더듬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라디오는 그 모든 별들과 기억들을 이어주는 작은 은하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익명으로 사연을 보내주신 분에게는 이 곡을 신청해 드립니다.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며 그때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마음껏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여행의 끝에서, 작은 평화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잠시 후 2부에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잠시, 음악과 함께 여러분의 밤을 채워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