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223화

지훈은 책상 위에 놓인 낡은 사진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빛바랜 사진 속에는 앳된 얼굴의 서연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벌써 223번째 밤이었다. 아니, 밤이 몇 번이나 지나갔는지 이제는 헤아릴 수도 없었다. 탐정이라는 직업이 무색하게, 그는 자신의 가장 오래된 미스터리 앞에서 언제나 무력했다. 수많은 단서를 쫓았고, 수많은 허위 정보에 좌절했으며, 수많은 이별 앞에서 다시 길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멈출 수 없었다. 그녀를 찾는 것은 그의 존재 이유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때, 잠잠했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는 오랜 시간 동안 희미한 그림자처럼 그에게 정보를 제공해왔던 익명의 제보자였다. 지훈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희망과 절망의 끝없는 반복 속에서, 그는 여전히 작은 단서 하나에도 모든 것을 걸었다.

메시지는 짧았다. “오래된 숲길 서점. 오후 두 시. 붉은 벽돌 건물.”

숲길 서점. 지훈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들이 어릴 적, 학교가 끝나면 함께 들르곤 했던 작은 헌책방. 서연은 늘 그곳에서 보들레르의 시집이나 낡은 그림책을 한참 들여다보곤 했다. 잊고 있던 이름이 다시 떠오르자, 지훈의 눈앞에 흐릿한 옛 풍경이 그려졌다. 훅 끼쳐오는 종이 냄새, 먼지 앉은 책들 사이로 비추던 오후의 햇살, 그리고 그 햇살 아래에서 책을 읽던 서연의 옆모습.

그는 서둘러 코트를 걸치고 사무실을 나섰다. 오후 두 시까지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다. 차를 몰고 익숙하면서도 낯선 길을 달렸다. 도시는 변했지만, 숲길 서점으로 가는 골목길은 놀랍도록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낡은 상점 간판들, 낮은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넝쿨. 붉은 벽돌 건물 앞에 차를 세우자, 왠지 모를 긴장감이 그를 짓눌렀다. 이곳에 서연이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실망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쿰쿰한 종이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시간마저 멈춘 듯한 공간이었다. 낡은 나무 바닥은 발걸음마다 삐걱거렸고, 빽빽하게 꽂힌 책들은 빼곡한 기억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낯선 주인이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지훈이 어릴 적 기억하는 주인 할아버지의 얼굴은 아니었다. 세월의 흐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찾으시는 책이라도 있으신가요?” 새 주인이 나긋하게 물었다.

“아… 오래된 책들을 좀 보고 있었습니다.” 지훈은 서연이 좋아했던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집들, 그리고 삽화가 아름다운 소설들. 그의 손이 무심코 꽂혀 있던 한 권의 낡은 시집에 닿았다. 보들레르의 시집.
책을 펼치자, 얇은 종이 한 장이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워보니, 그것은 말린 꽃잎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은 글씨로 짧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서연의 글씨였다.

“다시 오지 않을 아름다움. 이 모든 순간을 기억하며.”

손끝이 떨렸다. 심장이 발작하듯 요동쳤다. 이 책, 이 글씨, 그리고 이 말린 꽃잎. 모든 것이 서연을 가리키고 있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그는 카운터로 향했다.
“실례합니다. 이 시집… 혹시 누가 두고 간 것입니까?”

주인은 안경을 고쳐 쓰고 시집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아, 이 책 말이군요. 얼마 전에 어떤 여성분이 오셔서, 이 책을 보다가 잠시 다른 곳에 다녀오겠다고 하셨습니다. 급한 일이 생겼다면서… 꼭 다시 찾으러 오겠다고 부탁하셨죠. 그런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네요. 혹시 그분과 아시는 사이신가요? 책갈피로 쓰라고 이 꽃잎을 주셨는데…”

지훈은 주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서연이 이곳에 왔다. ‘얼마 전’이라니. 도대체 언제? 얼마나 가까이 그가 그녀의 곁을 스쳐갔던 것일까. 그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의 불꽃을 놓지 않았다.
“그분이… 어디로 가셨는지, 혹시 아십니까?”

주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동네 지도를 펼쳐놓고 한참을 보시더군요. 저희 서점에서 서쪽으로 난 작은 골목길을 따라 가면 나오는… ‘시간의 쉼터’라는 오래된 카페를 유심히 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곳에서 잠시 머물고 싶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어요. 마치…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는 사람처럼요.”

시간의 쉼터. 서쪽 골목길.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말에, 가슴이 저릿했다. 어쩌면 그녀도 자신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 길의 끝에서, 그들의 잃어버린 시간이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약한 희망이 그의 온몸을 감쌌다. 그는 주인을 향해 급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서둘러 서점을 나섰다. 붉은 벽돌 건물 밖으로 나오자, 저녁 햇살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지훈의 그림자가 서쪽 골목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가 거기 있을까. 정말로 이번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