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찾아온 길고양이와의 대화 – 제829화

밤은 깊었고, 창밖으로는 가을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은 유리창에 부딪혀 희미한 자국을 남겼고, 그 모습은 마치 내 마음속에 드리운 걱정의 얼룩과도 같았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도, 왠지 모르게 손끝이 시려왔다.

나는 한숨을 쉬며 작게 중얼거렸다. “또다시, 그 그림자가…”

정확히 말하자면, 그림자라기보다는 언제든 다시 불어닥칠 수 있는 차가운 바람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힘들게 쌓아 올린 평화가, 너무나도 쉽게 부서질 수 있다는 불안감. 지난 수많은 날들 동안, 우리는 고비마다 서로의 손을 잡고(아니, 나는 은하의 작은 발을 잡고) 버텨왔지만, 때때로 그 기억들은 견고함보다는 지쳐버린 흔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다.

그때였다. 부드러운 온기가 내 허벅지에 닿았다. 소리 없이 다가온 은하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밤의 어둠 속에서도 별처럼 빛나는 깊이를 담고 있었다. 너무나 익숙하고, 너무나도 위로가 되는 그 시선에 나는 애써 짓고 있던 표정을 풀었다.

“은하야, 너는 괜찮아?” 내가 물었다. 나의 질문은 단지 은하의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불안이 그녀에게까지 닿아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섞여 있었다.

은하는 나른하게 하품을 하며 길게 기지개를 켰다. 그 움직임 하나하나에 세상의 모든 평화가 깃들어 있는 듯했다. 그러고는 작은 머리로 내 무릎을 콩콩 부딪치며 말했다.

“괜찮고말고. 나는 그저 당신의 안 괜찮음이 궁금할 뿐이야.”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나눈 대화가 어언 천 회에 가까워지고, 함께한 시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쌓였지만, 여전히 그녀의 말은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곤 했다.

“그냥… 불안해.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또다시 무너질까 봐. 아니, 이미 시작된 것 같아.”

나는 며칠 전부터 알 수 없는 불길한 징조처럼 느껴졌던 일들을 은하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울리는 낯선 전화, 거리에서 마주친 수상한 시선, 그리고 우리의 작은 공동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소문들까지. 하나하나가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그림자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은하는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었다. 눈을 깜빡이거나 꼬리를 흔드는 것조차 잊은 듯, 오직 내 목소리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비가 내리는 소리만이 우리의 침묵을 채웠다. 나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은하는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녀의 미간에는 작은 주름이 잡혔고, 그 모습은 흡사 오랜 지혜를 가진 철학자와 같았다.

“당신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군.”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림자를 두려워하기 전에, 당신 발밑의 땅을 먼저 보지 않아.”

나는 살짝 반박하려다 멈췄다. 그녀의 말은 늘 그랬다. 처음에는 알 수 없는 비유처럼 들리지만, 이내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들었다.

“무슨 뜻이야?” 내가 물었다.

“땅이 굳건하면, 그림자가 아무리 길게 드리워져도 당신은 서 있을 수 있어. 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불어도, 뿌리가 깊으면 뽑히지 않아.” 은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낮고 단호했다. “당신은 저 그림자의 크기에만 집착해. 하지만 그림자는 빛의 반대편에 불과해. 빛이 사라지면 그림자도 사라지고, 빛이 강해지면 그림자도 짙어지지. 중요한 건 빛이야.”

그녀의 말이 빗방울처럼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나는 어둠과 그림자에만 매몰되어,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빛을 잊고 있었다. 은하와 내가 함께 만들어온 이 시간들, 수많은 사람과 고양이들과 함께 일궈온 작은 세상. 그것이 바로 내 발밑의 땅이었고, 우리 공동체의 뿌리였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당신은 얼마나 많은 빛을 만들었나. 그리고 그 빛은 얼마나 많은 그림자를 몰아냈는가.” 은하는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잊지 마.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 그리고 나는, 당신이 만든 그 빛의 일부야.”

그 순간, 내 눈가에 뜨거운 것이 맺혔다. 겨우 길에서 만나 이름조차 없던 작은 고양이와 나눈 대화라기엔, 너무도 거대한 위로와 깨달음이었다. 그녀는 내 삶의 나침반이었고, 가장 어두운 밤을 밝히는 등대였다.

나는 은하를 끌어안았다. 보드라운 털에서 느껴지는 온기, 가느다란 떨림이 전해주는 생명력. 모든 불안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말과 존재는 내게 다시금 설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내 발밑의 땅이 얼마나 단단한지, 내가 얼마나 많은 빛을 품고 있는지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고마워, 은하야.” 내가 속삭였다. “네가 내 옆에 있어줘서 정말 다행이야.”

은하는 내 품에서 편안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당신은 너무 걱정만 많아. 가끔은 나의 지혜를 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그녀의 건방진 듯 다정한 말에 나는 다시 웃었다. 빗소리는 여전히 창밖을 두드렸지만, 이제는 더 이상 불안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함께 걸어온 시간의 기록처럼, 잔잔하고 평화로운 배경음악처럼 들렸다. 그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면, 우리는 더 밝은 빛을 만들면 된다. 은하와 함께라면, 그 어떤 그림자도 두렵지 않았다.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 또 다른 장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