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265화

어둠 속의 작은 음악상자

밤은 깊고 고요했다. 창밖으로는 수많은 별들이 차가운 보석처럼 흩어져 있었고, 실내에는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목소리만이 유일한 온기처럼 공간을 채웠다. 서연은 낡은 나무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천천히 돌렸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차에서 쌉쌀한 향이 피어올랐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메마른 흙 같았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별지기입니다. 오늘밤은 유독 많은 분들이 잊었던 약속에 대해 사연을 보내주셨네요. 잃어버린 시간 속에 갇혀버린 마음들이 어둠 속에서 다시 길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청취자님의 편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별지기의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 청취자가 어릴 적 친구와 주고받았던 작은 음악상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음악상자 안에는 서로의 꿈을 담아둔 종이 조각이 있었고, 언젠가 어른이 되어 그 꿈을 이루면 다시 만나 상자를 열어보자고 약속했다는 내용이었다. 덧붙여, 오랜 세월이 흘러 그 친구가 어디에 있을지, 그 약속을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끔씩 그 음악상자를 꺼내 볼 때마다 마음 한 켠이 따스해진다는 글이었다.

서연의 손이 찻잔 위에서 멈췄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잊고 지냈던 기억의 조각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주 오래전, 아직 별들이 오늘처럼 차갑지 않던 시절. 그녀에게도 비슷한 음악상자가 있었다. 낡은 플라스틱 상자, 투명한 뚜껑 너머로 보이는 작은 발레리나 인형. 그리고 그 안에는 미래의 꿈을 담은 쪽지 두 장이 들어 있었다. 하나는 그녀의 것, 다른 하나는… 지훈이의 것.

“저 발레리나 인형처럼, 언젠가 우리도 저 별들 사이에서 춤추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을 보며 지훈이가 수줍게 물었었다. 그때 서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꼭 그렇게 될 거야. 그때까지 이 음악상자, 절대로 잊지 마. 그리고 10년 뒤, 오늘처럼 별이 가득한 밤에 다시 만나서 같이 열어보자.”

그 약속은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맹세였다. 그러나 10년이 되기도 전에, 지훈이네 가족은 갑작스럽게 이사를 갔고, 연락처도 주소도 알지 못한 채 그들의 세계는 갈라져 버렸다. 서연은 그 음악상자를 애써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다. 너무 아파서, 너무 그리워서, 다시 꺼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라디오에서는 어느새 잔잔한 선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래된 팝송, 제목조차 잊었던 멜로디였지만, 서연의 귀에는 너무나 익숙했다. 지훈이가 즐겨 부르던 노래. 그 애가 기타를 서투르게 연주하며 흥얼거렸던 바로 그 곡. 가슴이 먹먹해졌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는 여러분의 잃어버린 약속을 찾아드립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잃지 않는 별처럼, 여러분의 희망도 언제나 그 자리에 빛나고 있을 겁니다.”

별지기의 마지막 멘트가 울렸다. 서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였던 작은 서랍장으로 향했다. 손끝이 떨렸지만,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다. 삐걱거리는 서랍을 열자, 먼지가 희미하게 내려앉은 작은 나무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플라스틱 상자였다. 너무나 익숙한 발레리나 인형이 투명한 뚜껑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상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차갑게 식었던 마음에 작은 온기가 스며들었다. 어쩌면… 어쩌면 지훈이도 어딘가에서 이 라디오를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이 그녀의 심장을 조용히 두드렸다. 그녀는 창밖의 별들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들 중, 단 하나의 빛이 그녀의 길을 비춰주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