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가족 여행기 – 제266화

아침 햇살이 창문을 넘어 고요한 방안으로 길게 드리웠다. 시계는 이제 겨우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이 집의 아침은 이미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빨리 안 일어나! 이 바쁜데 다들 뭐 하는 거야!” 어머니 혜진 씨의 우렁찬 목소리가 온 집안을 뒤흔들었다. 아버지 경수 씨는 이미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고, 그 고요한 움직임마저 혜진 씨의 쩌렁쩌렁한 기합 소리에 묻히는 듯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설악산이었다. 몇 년 전부터 계획만 하고 미뤄왔던 가족 여행의 최종 목적지. 딸 미래(28)는 겨우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제밤 늦게까지 뒤척이다 잠든 탓에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아들 지훈(25)은 이미 씻고 나와 거실 소파에 늘어져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야, 최지훈! 누나 좀 깨우지 않고 뭐 해!” 미래가 방문을 열자마자 잔소리를 퍼부었지만, 지훈은 한쪽 이어폰을 끼고는 못 들은 척 어깨만 으쓱거렸다. “아, 누나. 알아서 일어나야지. 내가 누나 비서야?”

“정말 저것들을 어쩌면 좋니!” 혜진 씨가 한숨을 쉬며 아침 식탁을 차렸다. 식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찌개와 정갈한 반찬들이 놓여 있었지만, 가족들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피곤함이 역력했다. 경수 씨는 “자, 다들 먹고 힘내서 떠나자!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여정 아니겠어?”라며 억지로 분위기를 띄웠지만, 그마저도 영 힘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차에 올랐다. 차 안은 처음에는 신나는 음악과 함께 기대감으로 가득 찬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빠, 에어컨 너무 센 거 아니야? 추워 죽겠어.” “엄마, 배고픈데 휴게소 언제 도착해?” 지훈의 불평에 미래가 끼어들었다. “너 아까 밥 두 그릇 먹었잖아! 좀 참아.” 지훈은 “누나야말로 아까 밥 남겼으면서!”라며 받아쳤고, 결국 잔소리는 혜진 씨의 “그만들 못해!” 한마디로 종결되었다.

설악산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경수 씨는 힘찬 발걸음으로 앞장섰다. “자, 다들 기운 내서 정상까지 가는 거야! 이번 기회에 우리 가족들 체력 좀 길러야지!” 경수 씨의 말에 혜진 씨는 “여보, 살살 가세요. 애들도 힘들어하잖아요.”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미래와 지훈을 번갈아 보았다. 미래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요즘 미래는 여러모로 지쳐 있었다. 연이은 취업 실패와 연인과의 이별로 마음의 짐이 무거운 상태였다. 하지만 가족 여행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아 애써 밝은 척했다.

초입의 완만한 길을 지날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새소리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지훈은 연신 사진을 찍으며 장난을 쳤고, 경수 씨는 혜진 씨의 손을 잡고 젊은 시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길이 점점 가파라지고 돌멩이가 많아지면서, 가족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미래는 다른 가족들보다 뒤처지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무겁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누나, 힘내! 벌써 지쳤어? 어렸을 땐 날아다니더니.” 지훈이 장난스레 앞서가며 말했다. 미래는 그 한마디에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너나 잘해! 내가 뭘 하든 네가 무슨 상관인데!” 그녀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겼을 지훈의 농담이 오늘은 유난히 아프게 박혔다.

혜진 씨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미래야, 왜 그래? 지훈이도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이잖아.” 하지만 미래는 이미 감정의 파도를 타고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맨날 나만 보채고, 지훈이랑 비교하고… 내가 뭘 잘해야 하는 건데? 뭘 더 노력해야 하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결국 흐느낌으로 변했다. 꾹꾹 눌러 담았던 서러움과 분노가 터져 나온 것이었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가족들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경수 씨는 미처 예상치 못한 미래의 반응에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미래에게 다가섰다. “미래야, 무슨 일 있어? 아빠한테 말해봐.” 미래는 고개를 숙인 채 계속 흐느꼈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깊은 상실감과 절망감이 가파른 산길 위에서 모두에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걷기 힘들다며 주저앉았다.

지훈은 놀란 표정으로 미래를 바라보았다. 늘 강하고 야무진 줄만 알았던 누나가 저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는 미안함과 당혹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혜진 씨는 미래 옆에 앉아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레 감쌌다. “우리 딸, 힘들었구나. 엄마가 몰라줘서 미안해. 괜찮아, 괜찮아.”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 안기자 미래는 더욱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가슴속 깊이 박혀 있던 응어리들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경수 씨는 말없이 배낭에서 물병과 간식을 꺼내 미래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혜진 씨 옆에 앉아 미래의 등을 토닥였다. 거칠고 투박한 아버지의 손길에서 그녀는 묵묵한 위로를 느꼈다. 지훈은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의 배낭에서 초콜릿을 꺼내 미래에게 내밀었다. “누나, 이거 먹고 힘내. 내가… 내가 괜한 소리 해서 미안해.”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가파른 산길 한가운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시끌벅적했던 가족 여행은 잠시 멈췄지만, 그 순간의 고요함 속에서 서로의 마음이 더 깊이 연결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래는 눈물을 닦고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나… 너무 힘들었어. 모든 게 다 잘 안 되는 것 같고… 나 혼자만 뒤처지는 것 같고…” 그녀의 솔직한 고백에 혜진 씨는 미래의 손을 잡고 “무슨 소리야. 우리 딸은 최고야. 조금 지쳤을 뿐이야. 엄마 아빠는 항상 네 편이야.”라고 말했다. 경수 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굳은 표정으로 미래를 바라보았다. “그래, 아빠도 지훈이도 다 네 편이야. 힘들면 쉬어가도 돼. 괜찮아.”

지훈은 미래의 옆에 앉아 어색하게 웃었다. “누나, 우리 다시 시작하자. 내가 옆에서 같이 걸어줄게. 나도 오늘 좀 느리게 걸을 거야.” 그의 말에 미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서로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후, 가족들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까와는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경수 씨는 더 이상 서두르지 않았고, 혜진 씨는 미래의 손을 굳게 잡았다. 지훈은 미래의 옆에서 일부러 발을 맞춰 걸으며 농담을 건넸다. 그들의 대화는 여전히 시끌벅적했지만, 이전과는 다른,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정상에 다다랐을 때, 저 멀리 펼쳐진 설악산의 웅장한 풍경이 그들을 반겼다. 땀과 눈물로 얼룩졌던 얼굴에는 이제 환한 미소가 피어 있었다. 정상의 시원한 바람이 모든 걱정을 씻어주는 듯했다. 경수 씨는 가족들을 한 팔로 안고 활짝 웃었다. “봐라, 우리 가족! 결국 해냈잖아! 이 아름다운 풍경처럼, 우리 앞날도 언제나 이렇게 찬란할 거야!”

그들은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한참 동안 정상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시끌벅적한 가족 여행은 어쩌면 삶이라는 긴 여정의 축소판일지도 모른다. 서로 부딪히고, 화내고, 슬퍼하고, 다시 위로하며 함께 나아가는 것. 미래는 가족들의 따뜻한 품 안에서 비로소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깨달았다. 다시 일어설 용기, 다시 걸을 힘을 얻은 듯했다. 오늘의 설악산은 그들에게 단순한 산이 아닌,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하고 더 굳건한 사랑으로 묶어준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하산하는 길은 오를 때보다 훨씬 가볍고 경쾌했다. 웃음소리가 다시 숲을 채웠고, 그 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깊은 행복감을 담고 있었다. 그들의 시끌벅적한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었다.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지치겠지만, 결국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함께 걸어갈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