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기적 – 제268화

오래된 의자의 온기

산모퉁이 작은 빵집에는 언제나 고소한 빵 굽는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이른 아침, 은서는 갓 구워낸 식빵을 선반에 진열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단풍이 짙게 물든 가을 산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고 아름다웠지만, 은서의 마음 한켠에는 묘한 쓸쓸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난 몇 주간, 매일 아침 문을 열기 무섭게 찾아와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커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박 여사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여사님은 늘 남편인 박 서방님과 함께 오셨다. 웃음꽃을 피우며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 은서가 구워낸 빵을 가장 맛있게 드셔주던 고마운 손님들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박 서방님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신 후, 박 여사님의 발길은 뚝 끊겼다. 은서는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가 싶어 몇 번이고 문병을 가려 했지만, 그저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박 여사님께 더 큰 위로가 될 거라 생각해 참고 있었다.

그날 오후, 빵집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딸랑, 하는 종소리와 함께 들어선 이는 바로 박 여사님이었다. 허리가 한층 더 굽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온화했다. 다만, 그 온화함 속에 깊은 슬픔이 잠겨 있었다. 박 여사님은 익숙한 듯 카운터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만 주시겠어요.” 평소 박 서방님이 즐겨 드시던 커피였다. 빵은 주문하지 않으셨다.

은서는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내렸다. 박 여사님은 빵집 가장 구석진, 박 서방님이 늘 앉으시던 의자에 앉으셨다. 그리고는 멍하니 창밖의 산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박 서방님과의 추억을 더듬는 듯했다. 은서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기억의 조각 하나를 떠올렸다. 박 서방님이 이따금씩 “은서 씨, 그 향긋한 유자 타르트 언젠가 다시 만들어줘요.” 라고 말씀하시던 모습이었다. 그 타르트는 만들기가 까다로워 은서도 1년에 한두 번 겨우 내놓을까 말까 한 특별한 메뉴였다.

순간, 은서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주저 없이 냉장고에서 유자를 꺼내 들었다. 숙성된 유자청의 향긋함이 빵집 안에 가득 퍼지자, 왠지 모를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반죽을 하고, 타르트 틀에 채우고, 오븐에 조심스럽게 넣는 은서의 손길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박 여사님은 여전히 창밖만 보고 계셨지만, 은서는 그녀의 시선이 오븐 쪽으로 잠시 머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노릇하게 구워진 유자 타르트를 오븐에서 꺼내자,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유자 특유의 향이 빵집 안을 채웠다. 은서는 갓 구워 따뜻한 타르트 한 조각을 예쁜 접시에 담아 박 여사님 앞으로 조심스럽게 가져다 놓았다.

“박 여사님, 이거 박 서방님께서 참 좋아하시던 유자 타르트예요. 오늘따라 갑자기 만들고 싶어져서요. 따뜻할 때 드셔보세요.”

박 여사님은 접시에 놓인 타르트를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포크를 들어 아주 작은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상큼한 유자의 맛과 부드러운 타르트지가 입안에서 어우러지자, 박 여사님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주름진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박 여사님은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은 슬픔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움, 그리고 은서의 따뜻한 배려에 대한 감사가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의 울음이었다.

은서는 아무 말 없이 박 여사님의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지그시 잡았다. 갓 구운 유자 타르트의 따뜻한 온기가 박 여사님의 얼어붙었던 마음을 서서히 녹이는 듯했다. 박 여사님은 한참을 울고 나서야 겨우 진정하고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은서 씨… 서방님이 살아 돌아온 것만 같아요…”

그 한 마디는 빵집 안의 모든 슬픔을 녹이고 새로운 온기를 불어넣는 기적과도 같았다. 작은 빵집의 구석진 자리에서, 따뜻한 유자 타르트 한 조각이 오래된 의자 위에 남아있던 박 서방님의 온기를 다시금 박 여사님의 마음에 피어 올리게 했다. 그날, 산모퉁이 작은 빵집에는 고소한 빵 냄새와 함께 따뜻한 위로와 작은 희망의 향기가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