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유난히 길어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창밖을 내다보는 습관은 겨울의 초입에 접어들수록 더욱 짙어졌다. 가로등 불빛 아래 어둠이 진하게 깔린 마당은 그림자 하나 없이 고요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따금 불안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계절의 변화는 언제나 나의 감정선을 건드렸고, 올해는 그 여파가 유독 깊었다. 덧없이 흐르는 시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랄까.
등 뒤에서 나른한 하품 소리가 들렸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시선이 등에 닿는 듯했다. 은별이였다. 녀석은 언제나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내 의자 옆에 웅크리고 앉아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길고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윤기 나는 털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났다. 녀석의 크고 맑은 눈동자는 어쩐지 오늘따라 더 깊고, 알 수 없는 질문을 품고 있는 듯했다.
“또 무슨 생각 하니, 은별아?” 나는 조용히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내 목소리에는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쓸쓸함이 배어 있었을 것이다. 은별이는 대답 대신, 아주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는 마치 내 안의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듯, 나의 눈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 눈빛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라고 묻는 듯하기도 했고, ‘괜찮아?’라고 위로하는 듯도 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우리는 이런 무언의 대화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
나는 의자에서 몸을 돌려 바닥에 앉았다. 은별이는 망설임 없이 내 무릎 위로 뛰어올랐다. 녀석의 따뜻한 체온이 차가웠던 내 다리에 스며들었다. 나는 은별이의 부드러운 털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녀석은 만족스러운 듯 골골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 작은 진동이 내 가슴까지 울리는 것 같았다. “요즘 말이야, 부쩍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아. 예전엔 몰랐던 건데, 밤하늘을 보면 자꾸만… 지나간 것들이 생각나서 말이야.”
은별이는 내 말을 알아듣는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리고는 콧등으로 내 뺨을 부드럽게 비볐다. 그 움직임은 어떤 강요도, 어떤 대답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위로였다. 나는 눈을 감고 녀석의 온기를 느꼈다. 은별이의 몸에서 나는 따뜻하고 평온한 냄새. 녀석이 내게 처음 찾아왔던 그 날의 날카로웠던 경계심과 배고픔에 찌들었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이곳은 은별이에게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보금자리가 되었고, 은별이는 내 삶의 가장 견고한 버팀목 중 하나가 되었다.
“그래, 너와 함께한 시간도 벌써 이렇게 길어졌지. 이 모든 시간이 다 한순간에 사라질까 봐 가끔은 두려워. 변하지 않는 건 없다고 하잖아.” 내 말에 은별이는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녀석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더 깊은 확신과 인내를 담고 있는 듯했다. 마치 ‘사라지는 것들만 있는 게 아니야’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변하지 않는 것도 분명히 존재해’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녀석은 이내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 작은 몸이 내게 주는 안도감은 어떤 복잡한 위로의 말보다도 강력했다. 어쩌면 은별이와의 대화는 항상 이랬다. 말이 아닌, 감정과 온기와 눈빛으로 이루어지는 교감. 나의 불안은 녀석의 따뜻함 속에서 조금씩 녹아내렸다.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내 품 안의 은별이와 나의 이 특별한 유대감만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깊은 믿음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밤은 깊어졌지만,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은별이의 심장 박동 소리가 고요한 밤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