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가족 여행기 – 제270화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숨 막히도록 푸른 바다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절경이었다. 파도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거대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해안선을 덮쳤다가 이내 부드러운 속삭임을 남기고 물러났다. 아빠의 운전석에서는 흥얼거리는 트로트 가락이 흘러나왔고, 뒷좌석에서는 엄마의 잔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어딘가 불만 섞인 한숨이 뒤섞여 시끄러운 화음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270번째 맞이하는 가족 여행의 서막이었다.

“아빠, 제발 그 노래 좀 꺼! 귀에서 피 날 것 같아!”
첫째 지혜가 이어폰을 꽂으면서도 아빠를 향해 외쳤다. 지혜는 벌써 스물한 살, 제법 성숙한 아가씨였지만, 가족 여행만 오면 다시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 까칠함과 애교를 오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제 막 시작된 여행에 대한 미지근한 기대와 피곤함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이게 얼마나 명곡인데!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거지, 딸아. 네가 뭘 안다고!”
아빠는 백미러로 씩 웃으며 지혜를 놀렸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운전의 피곤함 대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의 설렘이 가득했다. 그의 콧노래는 더욱 볼륨을 높였다.

“엄마, 준우가 제 과자 다 먹었어요! 제가 아껴둔 새우깡인데!”
막내 다혜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차 안을 갈랐다. 열 살 다혜는 언제나 그랬듯 에너지가 넘쳤고, 그 에너지는 주로 오빠 준우를 향한 고발과 비난의 형태로 표출되었다.

“야, 그거 다 네 거 아니잖아! 나도 좀 먹을 수 있지!”
둘째 준우는 이제 막 사춘기의 정점을 찍으려는 중학생이었다. 열여섯 살 준우는 대개 시큰둥하고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했지만, 먹을 것 앞에서는 본능적인 투쟁심을 드러냈다. 그의 눈은 핸드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입은 쉴 새 없이 다혜에게 반박했다.

“그렇게 먹고 싶으면 네 돈으로 사 먹어! 치사해!”
“엄마! 다혜가 저 자꾸 치사하다고 해요!”

엄마는 뒷좌석을 향해 돌아보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얘들아, 얘들아! 진정해! 우리 이제 막 숙소 도착했어. 제발 평화롭게 좀 가자. 여기까지 오는데 다섯 시간 걸렸어. 엄마 기 빨린다, 정말.”
엄마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역력했지만, 그 속에서도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희미하게 빛났다. 오랜 세월 가족의 중심을 지켜온 엄마의 인내심은 거의 성인(聖人)의 경지에 가까웠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해안 절벽 위에 그림처럼 서 있는 작은 펜션이었다. 통유리창 너머로 드넓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아빠는 짐을 내리며 연신 “크으, 여기 진짜 좋다! 내가 이래서 돈을 벌지!” 하고 너스레를 떨었고, 다혜는 이미 방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와, 바다다! 파도 소리 들려!” 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준우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기 인터넷은 잘 돼요? 로딩이 왜 이렇게 느려?”
“준우야, 바다 보러 왔으면 바다를 봐야지, 핸드폰만 보고 있을 거니?” 엄마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준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바다가 뭐 별거라고. 맨날 똑같잖아요.”
그 말에 엄마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지혜는 그런 준우를 곁눈질하며 “철 좀 들어라, 꼬맹아.” 하고 중얼거렸다.

짐 정리를 마치고, 아빠는 오랜만에 가족들이 다 같이 걷는 시간을 갖자며 근처 해변 산책을 제안했다. “여기서 저기 등대까지 걸어가면 딱 좋을 것 같아! 바닷바람도 쐴 겸, 운동도 하고!”

다혜는 좋다고 방방 뛰었고, 엄마도 아빠의 제안에 동의했다. 지혜는 “뭐, 생각해보니 좀 걷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하며 선크림을 발랐다. 하지만 준우는 여전히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꼭 가야 해요? 피곤한데 그냥 숙소에서 쉴래요.”

아빠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야, 박준우! 여기가 어디 동네 놀이터니? 멀리까지 왔으면 가족들하고 같이 즐겨야지, 너만 빠지면 그게 말이 돼?”
“아, 알겠어요! 알겠다고요!” 준우는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그의 걸음은 내내 느렸고, 표정은 어두웠다.

해변은 오후의 햇살 아래 반짝였다. 고운 모래와 투명한 파도가 발끝을 간지럽혔다. 다혜는 신이 나서 파도와 술래잡기를 했고, 지혜는 카메라를 들고 아름다운 풍경을 담기 바빴다. 엄마와 아빠는 나란히 걸으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270번의 여행을 회상하는 듯, 그들의 눈빛에는 따뜻한 미소가 어렸다.

하지만 준우는 여전히 뒤처져 걸었다. 그의 시선은 멀리 떨어져 있는 등대를 향해 있었다. 왠지 모를 답답함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가족들은 행복해 보이는데, 자신만은 이 평화로운 풍경에 섞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마치 다른 세상에 혼자 서 있는 이방인 같았다.

등대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험했다. 해안선을 따라 나 있는 좁은 절벽 길은 바람이 거세게 불어 더욱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다혜는 어느새 지쳐 아빠에게 안아달라고 졸랐고, 지혜는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붙잡으며 “여기 웬만한 등산보다 힘드네!” 하고 투덜거렸다.

그때였다. 준우가 바위에 걸려 휘청거렸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이 미끄러지며 아슬아슬하게 절벽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준우는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었고, 그대로 바위 모서리에 손목을 긁혔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붉은 피가 송골송골 맺혔다.

“준우야! 괜찮아?”
엄마가 놀라서 달려왔다. 아빠도 다급하게 준우의 손목을 살폈다. 다혜와 지혜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별거 아니에요.” 준우는 퉁명스럽게 답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당황함이 섞여 있었다. 엄마는 가방에서 반창고와 소독약을 꺼내 준우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치료해 주었다.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닿자, 준우는 왠지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졌다.

“조심해야지, 준우야. 여기가 얼마나 위험한데.” 엄마는 잔소리 대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준우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준우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늘 투덜거리고 짜증만 내던 자신에게도, 엄마의 사랑은 언제나 한결같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등대에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수평선 너머로 기울기 시작했다. 주황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노을이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등대지기 아저씨의 안내로 등대 꼭대기에 오르자, 바람은 더욱 거세졌지만, 시야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붉게 물든 하늘, 그리고 그 아래 반짝이는 작은 섬들.

준우는 난간에 기대어 망망대해를 바라보았다. 휴대폰 화면 속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풍경이었다. 파도 소리가 그의 귓가에 끊임없이 속삭이는 듯했다. 그의 답답했던 마음속 한구석이 조금씩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왜 여태껏 이 아름다운 것들을 보지 못했을까. 그는 가족들을 흘긋 바라보았다.

아빠는 다혜를 어깨에 올려놓고 해맑게 웃고 있었고, 엄마는 그런 아빠와 다혜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혜는 등대 불빛이 바다를 비추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모두의 얼굴에 평화로운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늘 같은 곳을 향하는 끈끈한 유대감이 있었다.

준우는 문득 지난 여행들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에는 마냥 신나서 뛰어다녔던 기억. 조금 더 자라서는 친구들과의 약속이 더 중요해 가족 여행에 불평을 늘어놓았던 기억. 그리고 지금, 여전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걷고 있는 이 순간. 270번의 여행 속에서 가족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준우야, 이리 와서 엄마 옆에 서 있어. 바람이 너무 세다.”
엄마가 준우를 불렀다. 준우는 망설임 없이 엄마 옆으로 다가갔다. 엄마는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고, 준우는 어색한 듯하면서도 그 따뜻한 온기를 받아들였다. 그의 시선은 다시 노을 지는 바다를 향했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돌아오는 길, 준우는 처음으로 엄마와 아빠 옆에 나란히 서서 걸었다. 다혜는 아빠에게 들려준 바닷가에서 주운 조개껍데기를 자랑했고, 지혜는 오늘 찍은 사진들을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의 대화 속에 준우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더 이상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 식탁에 앉았다. 아빠가 정성껏 구운 바비큐 냄새가 온 방에 가득했다. 김치찌개는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갖가지 반찬들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늘 그렇듯 시끌벅적한 식사 시간이었다. 다혜는 고기를 빨리 달라며 젓가락을 휘둘렀고, 지혜는 그런 다혜를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자, 건배! 우리 가족의 270번째 여행을 축하하며!”
아빠의 선창에 모두가 잔을 들었다. 사이다와 콜라 잔이 부딪히는 청량한 소리가 울렸다.

“이번 여행도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가족 건강하고 행복하자!”
엄마의 말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웃었다.

준우는 말없이 고기를 굽는 아빠와 다정하게 웃는 엄마, 그리고 투닥거리면서도 서로를 챙기는 누나와 동생을 바라보았다. 이 시끌벅적한 소란이, 이 모든 예측 불가능한 순간들이 바로 그의 가족이었다. 어쩌면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휴대폰 속 가상 세계가 아니라, 바로 이 눈앞의 현실, 가족과의 따뜻한 연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고기 한 점을 집어 들었다.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과 노을, 그리고 가족의 따뜻한 온기가 한데 어우러져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스며들었다. 270번의 여행을 통해 비로소 그는 ‘함께’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달은 듯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시끌벅적한 여행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그 생각에 준우는 처음으로 다음 여행이 기대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