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가족 여행기 – 제277화

다섯 시간을 꼬박 달린 산악 버스가 털털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좁은 비포장도로에 멈춰 섰을 때, 우리는 이미 먼지와 피로에 절어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이름 모를 산봉우리들의 군무와 그 아래 그림처럼 박힌 작은 마을뿐이었다. ‘산그림자 쉼터’라고 쓰인 낡은 간판이 겨우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도착이다.

“으악, 아빠! 여긴 와이파이도 안 터져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휴대전화를 확인하던 미나(16)가 비명을 질렀다. 그 옆에서 준호(9)는 잔뜩 들떠 새까만 바닥을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들을 발로 툭툭 차고 있었다. 할머니(옥자, 70대)는 긴 여행에 지치셨는지, 차에서 내리자마자 허리를 짚고 깊은 숨을 내쉬셨다.

“미나야, 와이파이 좀 없으면 어때? 자연을 좀 느껴봐야지.” 아빠(재호, 40대 후반)가 애써 긍정적인 목소리를 냈지만, 그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은 피로를 숨기지 못했다. 엄마(수미, 40대 중반)는 할머니의 어깨를 토닥이며 숙소 주인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소란스러움과 함께였다.

산그림자 쉼터는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사진에서 본 정겹고 아늑한 느낌은 있었지만, 에어컨은커녕 낡은 선풍기 한 대가 전부였다. 방은 단출했고, 창밖으로는 곧장 숲이 보였다. 미나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입술을 삐죽거렸다. “이 더위에 선풍기라니… 진짜 엄마 아빠는….”

“미나 누나, 여기 도마뱀 붙어있어!” 준호가 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미나는 질색하며 소리를 질렀고, 준호는 재밌다고 깔깔거렸다. 엄마는 할머니의 짐을 풀어드리며, “이런 게 다 추억이지. 공기 좋고, 조용하고. 며칠 쉬다 가면 아주 개운할 거야.”라고 말했다.

아빠는 지도를 펼쳐 들었다. “숙소 아주머니가 그러시는데, 여기서 한 삼십 분만 걸어가면 ‘숨소리 폭포’라고 멋진 곳이 있대. 경치도 좋고, 물소리도 시원하고.”

“폭포요? 제가요? 이 더위에?” 미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봤다. “응, 우리 가족 여행 왔잖아!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가보겠어?” 아빠는 막무가내였다. 할머니는 “나는 여기서 좀 쉬어야겠다. 너희들끼리 다녀와라.” 하시며 결국 숙소에 남으셨다.

폭포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험했다. 길이 좁고 울퉁불퉁했으며,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준호는 처음에는 신이 나서 앞장서 달리더니, 이내 땀을 뻘뻘 흘리며 “아빠, 언제 도착해요? 다리 아파요!” 하고 징징대기 시작했다. 미나는 스마트폰을 든 손을 들어 올리며 애써 신호를 찾아 헤맸다. “진짜 짜증 나. 이런 데를 왜 와서 고생이야?”

엄마는 준호의 손을 잡고 “조금만 더 가면 돼. 다 왔어.” 하고 달랬고, 아빠는 미나에게 “그만 좀 투덜대라. 나중에 다 좋은 추억이 될 거야.”라고 말했다. 순간 준호가 발을 헛디뎠다. “으악!” 엄마가 비명을 지르며 준호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엄마보다 한발 빨랐던 건 미나였다. 미나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는 준호의 팔을 잡고 몸을 지탱해주었다. “조심 좀 해, 바보야!” 퉁명스러운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 걱정이 묻어 있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한참 더 오르자, 저 멀리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시원한 물소리는 마치 우리를 유혹하는 노래 같았다. 드디어 눈앞에 펼쳐진 숨소리 폭포는 그 이름처럼 웅장하면서도 평화로웠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마치 은색 실타래 같았고, 아래로 떨어지는 물방울들은 무지개 빛으로 부서졌다. 폭포 주변은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순간, 모두의 불평이 사라졌다. 준호는 입을 헤 벌리고 폭포를 올려다봤고, 미나는 말없이 휴대전화를 꺼내 폭포 사진을 찍었다. 셀카가 아닌, 순수한 풍경 사진이었다. 아빠는 흐뭇한 표정으로 엄마와 미나, 준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엄마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그래, 이 맛에 여행 오지.” 하고 중얼거렸다. 고생 끝에 맛보는 절경은 피로마저 잊게 할 만큼 값진 것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피곤했지만, 아까보다는 한결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숙소에 도착하자 맛있는 냄새가 우리를 반겼다. 할머니는 주인아주머니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 준비를 돕고 계셨다. 갓 잡은 생선으로 만든 매운탕과 갓 지은 밥, 그리고 투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산나물 반찬들이 작은 상에 가득 차려졌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따뜻한 저녁 식사를 했다. 준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맛있게 밥을 먹었고, 미나도 불평 한마디 없이 숟가락을 놀렸다. 할머니는 밥을 드시다 말고 옛이야기를 꺼내셨다. “내가 젊었을 적에 이 근처 산골에서 잠시 살았었어. 그때는 전기도 제대로 안 들어왔지. 지금처럼 투덜거릴 새도 없이 그저 오늘 하루 배부르게 먹는 게 행복이었는데. 이 매운탕 맛이 그때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맛이랑 비슷하네.” 할머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엄마는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그러게요, 어머님. 투덜대다가도 결국 이런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생도 함께하면 추억이 되는 거지. 이래서 가족끼리 여행을 오는 게 아니겠어?”

모두가 잠시 침묵했을 때, 미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폭포는 예뻤어요.” 놀라운 한마디였다. 아빠와 엄마는 서로를 마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준호는 “내일은 도마뱀 더 큰 거 찾아봐야지!” 하고 외치며 분위기를 한층 더 밝게 만들었다.

밤이 되자 산그림자 쉼터에는 풀벌레 소리만이 가득했다. 시원한 밤공기가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준호는 낮에 뛰어놀다 지쳤는지 일찌감치 잠이 들었다. 미나는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낮에 찍었던 폭포 사진을 확대해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작은 등불 아래서 옛날이야기책을 보시다가 이내 나지막이 흥얼거리는 자장가 소리에 젖어 드셨다. 아빠와 엄마는 숙소 앞 작은 평상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수도 없이 많은 별들이 쏟아질 듯 빛나고 있었다. 길고 피곤했지만, 아름다운 하루였다. 엄마가 아빠의 손을 잡았다. “내일은 또 어떤 시끌벅적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까?”

아빠는 엄마의 손을 꼭 잡으며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응시했다. “모르지. 하지만 분명 우린 또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거야.” 그렇게 산골 마을의 밤은 깊어갔고, 가족의 여행은 다음 에피소드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