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산모퉁이 작은 빵집에는 이미 온기가 가득했다. 윤서의 손놀림은 반죽을 다루는 장인의 그것처럼 능숙하고 부드러웠다. 오븐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소한 빵 냄새는 아직 잠들어 있을 마을 전체를 깨우는 듯했다. 오늘은 유난히도 촉촉하고 부드러운 우유 식빵을 굽는 날이었다.
“오늘따라 반죽이 더 잘 부푸는 것 같아요, 사장님.”
새내기 제빵사 지현이 갓 구워져 나온 식빵을 보며 감탄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식빵의 황금빛 껍질은 보기만 해도 마음을 풍요롭게 했다.
윤서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날이 좋아서 그런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빵이라서 그럴지도 모르지.”
윤서의 말에 지현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수긍했다. 이 빵집의 빵들은 단순히 맛있는 것을 넘어선, 어떤 특별한 기운을 품고 있다고 모두들 믿었으니까. 사람들은 이곳의 빵을 ‘마음의 위안’이라고 불렀다.
오전이 되자, 빵집 문은 분주히 열고 닫혔다. 늘 그렇듯 단골들의 반가운 인사와 빵 냄새에 이끌려 들어오는 새로운 손님들의 설렘이 뒤섞였다. 그런데 그 북적임 속에서도 윤서의 마음 한구석에는 작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바로 김 여사 때문이었다. 작년 겨울 남편을 떠나보낸 후, 김 여사는 빵집 발걸음을 끊었다. 언제나 밝게 웃으며 갓 구운 호밀빵과 남편이 좋아하는 바게트를 사가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녀가 오지 않은 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윤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일 아침 김 여사가 좋아했던 호밀빵을 조금 더 구워 놓곤 했지만, 그 빵은 결국 다른 손님들의 품으로 향하곤 했다.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무렵, 빵집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산모퉁이 빵집인가요? 김옥순 여사님 아들이에요.”
윤서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 김 여사님께 무슨 일이신가요?”
아들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머니가 요즘 통 기운이 없으세요. 식사도 제대로 안 하시고, 밖에 나가는 것도 싫어하시고… 병원에 모시고 가도 별 소용이 없네요. 며칠 전에는 빵집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산모퉁이 그 빵집 빵은 참 따뜻했는데…’ 하고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빵을 좀 갖다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대신 계산할게요.”
윤서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녀는 김 여사의 마음속에 묻어둔 외로움과 슬픔의 무게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이죠. 어떤 빵을 가져다 드릴까요?”
“아… 호밀빵하고… 남편 분이 좋아하시던 바게트요. 혹시… 그것만으로도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기운을 내실까 해서요.”
“걱정 마세요. 제가 직접 갖다 드릴게요. 곧 갈 테니, 아드님께서는 어머니 옆에 계셔 주세요.”
전화를 끊은 윤서는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호밀빵은 물론, 김 여사가 특별히 좋아했던 부드러운 우유 식빵도 다시 반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븐에서 갓 나온 따끈한 바게트도 신선하게 포장했다. 빵을 구우면서 윤서는 김 여사와 남편이 빵집에 들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의 웃음소리, 서로를 배려하던 따뜻한 눈빛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이 빵들이… 부디 김 여사님의 얼어붙은 마음에 작은 온기라도 전해줄 수 있기를…’ 윤서는 간절히 바랐다.
오후 햇살이 길게 드리워질 무렵, 윤서는 갓 구운 빵들을 조심스럽게 상자에 담아 김 여사의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찾은 김 여사의 집은 예전의 활기 넘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마당에 정성껏 가꾸던 화초들은 시들어가고 있었고,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낡은 현관문 앞에서 윤서는 잠시 망설였다. 과연 자신의 방문이 김 여사에게 위로가 될까, 아니면 불쑥 찾아든 이방인으로 비칠까. 하지만 이내 결심한 듯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천천히 열리고 김 여사의 아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윤서를 맞았다. “어머니는 방에 계세요. 통 나오려고 하지 않으시네요.”
윤서는 상자를 들고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섰다. 거실은 정돈되어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공허함이 감돌았다. 안방 문이 빼꼼히 열려 있었고, 침대에 기대어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김 여사의 뒷모습이 보였다. 흰 머리칼은 더욱 희끗해졌고, 어깨는 한없이 웅크려 있었다.
“김 여사님… 저, 윤서예요. 산모퉁이 빵집 윤서요.”
윤서의 목소리에 김 여사의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였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퀭한 눈빛에는 생기가 없었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들이 슬픔을 새겨놓은 듯했다. “빵집…?”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마치 세상과의 단절 속에서 오랫동안 말을 잊고 지낸 사람 같았다.
윤서는 조심스럽게 김 여사의 곁으로 다가갔다. 테이블 위에 빵 상자를 내려놓자, 갓 구운 빵 특유의 구수하고 따뜻한 향기가 방 안에 퍼져나갔다. 그 향기는 마치 기억 속에서 잊혔던 아련한 풍경을 소환하는 마법 같았다. 김 여사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에 아주 희미한 표정의 변화가 감돌았다.
“이건… 여사님이 좋아하시던 호밀빵이고요. 이건 남편 분께서 즐겨 드시던 바게트예요. 그리고 이건… 제가 특별히 구운 우유 식빵이에요. 따뜻할 때 드시면 더 맛있을 거예요.”
윤서는 김 여사의 손에 따뜻한 우유 식빵 한 조각을 건넸다. 김 여사의 손은 차갑고 가늘었다. 그녀는 빵을 받아들었지만, 먹으려 하지 않고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윤서는 조용히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고, 김 여사의 눈동자에 차츰 물기가 고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빵 조각을 코에 가져다 대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 아주 오래된 기억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남편과 함께 빵집에서 웃음꽃을 피우던 추억들, 갓 구운 빵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던 발걸음, 함께 식탁에 앉아 따뜻한 빵을 나눠 먹던 소박한 행복… 그 모든 순간들이 빵 냄새와 함께 되살아나는 듯했다.
김 여사의 손이 떨렸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조심스럽게 빵 한 조각을 입으로 가져갔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빵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 빵의 따뜻함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잃었던 미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녀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소리 없는 흐느낌이 방 안을 채웠다. 아들은 놀란 듯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가 어머니의 눈물을 본 것은 남편의 장례식 이후 처음이었다.
윤서는 아무 말 없이 김 여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차갑게 식었던 김 여사의 몸이 윤서의 온기에 조금씩 녹아내리는 듯했다. “다 괜찮아요, 여사님. 다 괜찮아질 거예요.”
그제야 김 여사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쌓이고 쌓였던 슬픔과 외로움이 뜨거운 눈물과 함께 쏟아져 내렸다. 한참을 울고 난 후, 김 여사는 윤서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비로소 희미한 빛이 돌아 있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윤서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빵 한 조각이 모든 슬픔을 없앨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김 여사의 마음속에 굳게 닫혔던 문을 조금이나마 열어준 것 같았다. 빵집의 빵들은 언제나 그랬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잊었던 온기를 되살리는 작은 기적의 매개체였다.
집을 나서는 윤서의 등 뒤로 김 여사의 아들이 다가와 진심으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우시는 모습을 본 것도… 오랜만이고, 또 빵을 드시는 것도요. 빵 냄새를 맡으시고는… 아버지를 떠올리시는 것 같았어요.”
윤서는 조용히 웃었다. “따뜻한 빵은 언제나 좋은 기억을 불러오니까요. 김 여사님, 이제 종종 빵집에 들러주세요. 제가 매일 아침 여사님 좋아하시는 빵을 구워 놓을게요.”
어스름이 내린 저녁, 빵집으로 돌아오는 윤서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산모퉁이 작은 빵집에서 오늘도 작지만 소중한 기적이 일어났음을 직감하며, 그녀는 내일 아침에도 변함없이 따뜻한 빵을 구울 준비를 했다. 누군가의 외로움을 달래고, 누군가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빵, 그것이 바로 산모퉁이 작은 빵집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