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시간의 조각
오래된 사진관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서연은 숨을 멈추곤 했다. 삐걱이는 나무문 소리, 낡은 카메라에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렌즈의 향기, 그리고 김 사장님의 옅은 미소. 이 모든 것이 서연의 시간을 붙잡아 과거의 어느 지점에 내려놓는 듯했다. 그녀의 발걸음은 늘 창가, 햇살이 가장 따스하게 쏟아지는 액자 앞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언제나 같은 사진이 놓여 있었다. 오래된 흑백 사진 속에는 앳된 미소를 머금은 어린 소년이 서 있었다.
“오늘은 좀 괜찮으신가요, 서연 씨.”
김 사장님의 목소리는 늘 잔잔한 물결 같았다.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는 말은 그녀에게 너무 먼 이야기였지만, 적어도 괜찮아 보이려는 노력은 할 수 있었다. 소년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의 손끝이 액자 유리를 조심스럽게 쓸었다. 이 소년은 서연의 전부였고, 동시에 그녀의 가장 큰 아픔이었다. 일곱 살, 꽃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들, 민준.
“며칠 전, 정리하다가 이걸 발견했어요.”
김 사장님이 낮게 읊조리며 서연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낡은 종이 봉투가 들려 있었다. 봉투 안에서 그가 꺼낸 것은 예상치 못한 사진 한 장이었다. 서연은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심장이 불안하게 울렁였다.
그것은 민준의 사진이었다. 분명 민준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달랐다.
사진 속 민준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앳된 얼굴은 여전했지만, 일곱 살의 모습이 아니었다. 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소년의 얼굴에는 장난기 어린 미소와 함께 어딘지 모르게 깊어진 눈빛이 깃들어 있었다. 낡은 교복 위로 비스듬히 드리운 햇살은 소년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고, 배경은 낯설지 않았다. 서연이 민준과 함께 매일 아침 지나던 동네 어귀의 작은 빵집 앞이었다. 소년의 손에는 갓 구운 빵 봉투가 들려 있었다.
“이게… 이게 무슨…?”
서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김 사장님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늘 그렇듯 평온했지만, 서연은 그 평온함 속에 스며든 미묘한 당혹감을 읽어낼 수 있었다.
“제게 이 사진을 맡긴 사람은 없었습니다. 서연 씨의 아드님이라는 건, 저도 사진을 보고 나서야 알았죠. 보시다시피 필름도, 다른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사진입니다.”
김 사장님의 설명은 오히려 서연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 사진은 존재할 수 없는 사진이었다. 민준은 일곱 살 이후로 단 한 순간도 자라지 않았다. 그녀의 기억 속 민준은 영원히 앳된 모습으로 박제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소년은 마치 그녀의 아픔이 가시지 않은 시간 속에서 홀로 자라난 듯 보였다.
서연은 사진을 움켜쥐었다. 손끝으로 소년의 뺨을 어루만졌다. 낯선 질감의 인화지에서 느껴지는 것은 차가운 현실이 아닌, 너무나도 생생한 따뜻함이었다. 소년의 눈빛은 마치 서연을 바라보는 듯했다.
“엄마, 나 잘 지내고 있어요.”
환청처럼 소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서연의 눈가에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그녀는 주저앉을 것 같은 다리를 애써 버티며, 사진 속 소년에게 애원하듯 속삭였다.
“민준아… 너, 정말…?”
그녀의 질문은 공허한 사진관 안에 메아리치며 흩어졌다. 김 사장님은 말없이 그녀를 지켜볼 뿐이었다. 오래된 사진관의 어딘가에서, 렌즈 셔터가 닫히는 듯한 옅은 소리가 울렸다. 서연은 사진 속 소년의 눈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그녀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시간의 조각이 숨 쉬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조각은 이제 그녀의 모든 세계를 흔들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