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골목길의 우산 수리공 – 제318화

추적추적, 빗줄기는 멈출 줄 모르고 골목길을 적셨다. 수리공 지훈의 작은 가게 안은 축축한 바깥세상과는 달리 아늑한 온기로 가득했다. 탁자 위에는 방금 수리를 마친 아이의 우산이 놓여 있었다. 낡고 바랬던 천은 깨끗하게 닦였고, 부러졌던 살은 튼튼하게 다시 이어졌다. 알록달록한 그림이 그려진 우산을 바라보며, 지훈은 잠시 상념에 잠겼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색깔을 되찾은 듯한 그 모습이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그때, 낡은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틈으로 스며든 차가운 공기와 함께 김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할머니의 손에는 낡고 빛바랜 검은색 장우산이 들려 있었다. 평소라면 부러진 살이나 찢어진 천을 들고 왔을 할머니였지만, 오늘 그 우산은 멀쩡해 보였다. 그저 세월의 흔적만이 고스란히 배어 있을 뿐이었다.

“할머니, 어서 오세요. 오늘 우산은 고장 난 곳 없어 보이는데….” 지훈이 온화한 미소로 맞이했다.

김 할머니는 우산을 지훈에게 건네며 희미하게 웃었다. “고장 난 곳은 없어. 다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자네 손길을 거쳤으면 해서.”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이 묻어났다.

지훈은 의아했지만, 묵묵히 우산을 받아들었다. 검은색 우산의 손잡이 부분은 할머니의 남편이 평생 사용했던 터라 손때가 반질반질하게 묻어 있었다. 그는 우산살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피고, 녹슨 부분을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어루만지듯 정성을 다하는 지훈의 모습에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집을 팔기로 했어. 이 골목에서 평생을 살았는데… 이제 혼자서는 감당하기가 버겁더구나.” 할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우산은 영감의 마지막 흔적 같아서, 쉬이 정리할 수가 없었지. 이걸 들고 있으면, 영감이 아직 옆에 있는 것만 같았거든.”

지훈은 아무 말 없이 우산의 작은 나사 하나를 조였다. 부러진 것을 고치는 것보다, 온전한 것을 보듬어주는 것이 때로는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물건은 떠나도, 기억은 남습니다, 할머니. 우산에 깃든 할아버지의 마음은 언제나 할머니 곁에 있을 거예요.”

할머니는 지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말이 맞다. 그런데 이 우산, 영감이 처음으로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썼던 거라고 자주 이야기했었지.” 할머니는 우산 손잡이 안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희미하게 새겨진 이니셜과 함께, 오래되어 잘 보이지 않는 날짜가 있었다. “영감이 늘 ‘그 사람’ 덕분에 이 우산의 의미가 더 깊어졌다고 말했어. 언제나 비를 피해주는 존재였다고.”

‘그 사람’이라는 단어가 지훈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이미 여러 번 할머니에게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항상 흐릿한 그림자처럼 윤곽만 잡힐 뿐이었다. 그 존재는 할머니의 과거 깊숙이 박힌 인물이었고, 동시에 이 골목의 숨겨진 역사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지훈 자신이 이 골목에 발을 들이게 된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직감이 그를 스쳤다.

수리를 마친 우산을 할머니께 건네자,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가게를 나섰다. 빗소리가 더욱 거세진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지훈은 홀로 남겨졌다.

그는 김 할머니가 가리켰던 우산 손잡이 안쪽을 떠올렸다. 희미한 이니셜… 그리고 ‘비를 피해주는 존재’. 지훈은 작업복 주머니 깊숙이 넣어두었던 작은 은빛 펜던트를 꺼냈다. 낡고 오래된 펜던트에는 역시나 손때 묻은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김 할머니의 우산에 새겨진 것과 똑같은 날짜가 희미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빗소리는 더욱 요란해지고, 골목은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다. 지훈의 손에 들린 펜던트는 차갑게 빛났다. ‘그 사람’의 그림자가 점차 선명해지는 것 같은 예감에, 그의 심장이 미묘하게 술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