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파는 상점 – 제892화

새벽녘, 도시의 심장이 채 깨어나기도 전, 어둠이 옅은 보랏빛으로 물들어갈 무렵이었다. 낡고 오래된 시장 골목 깊숙한 곳, 낡은 한약방 간판 옆으로 간신히 그 존재를 드러내는 작은 문 하나. ‘꿈을 파는 상점’이라는 이름은 그저 희미한 글씨로 적혀 있었고, 지나가는 이들은 대부분 그 문이 지닌 특별한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다.

이 문 안으로 들어선 이는 미순이었다. 칠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온갖 풍파를 겪었지만, 단 한 번도 이처럼 절박한 마음으로 어떤 문을 열어본 적은 없었다. 그녀의 등은 세월의 무게로 조금 굽어 있었고, 검버섯이 피어난 손은 조그마한 은빛 주머니를 꼭 쥐고 있었다. 이 주머니 안에는 그녀의 남은 생애를 지탱해 줄 귀한 돈이 들어 있었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이보다 더 귀한 것을 살 목적이 있었다. 바로, 잊힌 꿈이었다.

상점 내부는 외부의 허름함과는 달리 묘한 안락함과 고요함으로 가득했다. 은은한 향이 코끝을 간질였고, 벽을 따라 늘어선 투명한 유리병들 속에는 각기 다른 빛깔의 액체들이 담겨 있었다. 어떤 것은 새파란 새벽 바다처럼 반짝였고, 어떤 것은 황홀한 노을처럼 붉게 타올랐으며, 또 어떤 것은 한겨울 설산의 고요처럼 새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모두가 누군가의 꿈이었다. 혹은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는 꿈의 파편들이었다.

카운터에는 백발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의 눈은 깊은 우물처럼 고요했고, 얼굴에는 무수한 세월의 흔적이 깊게 패여 있었다. 그는 미순을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녀가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오셨군요, 미순님.”

노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미순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수십 년간 묵혀두었던 간절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제가… 여기를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서요.”

그녀의 손에 든 은빛 주머니가 가늘게 떨렸다. 노인은 미순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위로나 연민이 아닌, 깊은 이해심으로 가득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잃어버린 사랑과의 재회? 이루지 못한 젊은 날의 꿈? 아니면… 잊고 싶었던 과거의 조각?”

미순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니면서, 동시에 그 모든 것이었다. 그녀의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패었지만, 그 속에는 소녀 같은 순수한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저는… 저는 남편과의 마지막 하루를 다시 꾸고 싶습니다.”

노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카운터 아래에서 낡은 서류철을 꺼냈다. 두꺼운 서류철에는 먼지가 가득했지만, 그 안의 종이들은 마치 어제 인쇄된 것처럼 선명했다. 노인은 서류철을 뒤적여 한 페이지를 찾아냈다.

“최진우. 1982년 10월 27일, 새벽 4시 17분. 심근경색으로 사망. 향년 58세. 마지막으로 남긴 말… ‘보고 싶어, 미순아.’”

미순의 눈에서 기어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날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날이었다. 미처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떠나보낸 남편. 그녀는 단 한 번도 그 마지막 순간을 꿈에서조차 편히 만나보지 못했다. 죄책감과 그리움이 뒤섞여, 그날의 기억은 그녀에게 너무나 가혹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악몽처럼 부서지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거나.

“그날은… 그저 평범한 가을날이었습니다. 저는 아침 식탁을 차리고 있었고, 남편은 신문을 읽고 있었죠. 그리고… 그리고 갑자기…”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노인은 조용히 미순의 앞에 작은 유리병 하나를 놓았다. 병 속에는 옅은 흙빛을 띠는 액체가 담겨 있었다. 그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마치 물속에 잠긴 것처럼 일렁이는 작은 나뭇잎 하나가 보였다. 단풍잎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꿈이 아닙니다, 미순님. 이것은 당신의 남편, 최진우 씨의 마지막 기억의 파편이자, 당신의 간절한 염원이 빚어낸 시간의 재구성입니다.”

노인은 병을 건네며 말했다.

“이것을 마시면, 당신은 그날 아침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단,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그저 관찰자일 뿐입니다.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저… 그 시간을 온전히 느끼고, 그 안에 머물다 오십시오.”

미순은 떨리는 손으로 병을 받아 들었다. 차가운 유리병에서 남편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은빛 주머니를 노인에게 내밀었다.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돈을 세는 대신, 그는 주머니를 카운터 아래 서랍에 조용히 넣었다.

“편안한 꿈이 되시길.”

미순은 병뚜껑을 열고 망설임 없이 흙빛 액체를 마셨다.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이내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그녀는 스르륵 의자에서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주변의 고요함이 깊은 잠 속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

따스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거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코끝을 스치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와 노릇하게 구워지는 생선 냄새. 귓가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트로트 가락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미순은 눈을 떴다. 낯설면서도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녀는 부엌에 서 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능숙하게 식탁을 차리고 있었다. 젊은 날의 자신이었다. 곱게 빗어 넘긴 머리칼, 주름 하나 없는 매끈한 손. 그녀의 눈에 비친 자신은 서른 중반의 활기 넘치는 여인이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꿈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생생해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거실을 바라보았다. 창가에 앉아 신문을 펼치고 있는 남자. 넉넉한 체구에,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정겹게 느껴지는 남자. 그녀의 남편, 최진우였다. 그는 한 손으로는 신문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식탁 위에 놓인 누룽지를 집어 먹고 있었다.

“오늘 아침도 아주 기깔나겠구먼, 미순이 솜씨는 언제나 최고여.”

남편의 목소리였다. 장난기 어리면서도 깊은 애정이 담긴 그 목소리. 미순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지만, 꾹 참았다. 노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은 그저 관찰자일 뿐입니다.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녀는 투명한 유령처럼, 그러나 모든 것을 느끼며 그 공간에 머물렀다. 식탁 위에 따뜻한 밥을 놓고, 그 옆에 된장찌개를 내려놓았다. 남편은 신문을 접고 수저를 들었다. 그는 찌개 냄새를 한껏 들이마시더니 행복한 표정으로 웃었다.

“어이구, 시골집에서 어머니가 끓여주신 것보다 더 맛있겠네.”

“호들갑은. 어서 먹어요, 식겠네.”

젊은 미순은 타박하는 듯 말했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사랑이 담겨 있었다. 남편은 밥을 한 술 크게 떠서 찌개와 함께 먹었다. 그녀는 그가 밥을 먹는 모습 하나하나를 눈에 담았다. 숟가락을 드는 손짓, 입술을 오물거리는 모습, 만족스러운 표정… 너무나 사소해서 평소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장면들이었다.

남편은 식사를 마친 후, 커피 한 잔을 타서 마시며 다시 신문을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며칠 밤샘 근무를 한 뒤였고, 그는 늘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오늘 밤에 좀 일찍 와요. 애들하고 같이 영화 보러 가기로 했잖아.”

젊은 미순이 설거지를 하며 말했다. 남편은 신문 뒤에서 ‘응’ 하고 짧게 대답했다. 그때였다. 남편의 손에 들려 있던 신문이 스르륵 떨어졌다. 그의 고개가 창밖으로 기울어졌다. 처음에는 그저 잠시 졸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젊은 미순은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뒤돌아섰다.

“여보?”

그녀의 목소리에 불안감이 묻어 있었다.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젊은 미순은 다급하게 달려갔다. 푹신한 소파에 기대어 늘 편안히 잠들던 남편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고,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여보! 정신 차려봐요! 여보!”

젊은 미순의 비명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그녀는 남편의 몸을 흔들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미순은 노인의 경고를 기억했다.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녀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젊은 자신이 절규하며 남편을 흔들고, 119에 전화를 거는 모습을. 그녀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 힘없이 떨어진 남편의 손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의 입술이 아주 희미하게 벌어졌다. 젊은 미순은 남편의 얼굴에 귀를 바싹 갖다 댔다. 그녀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지금의 미순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 쉰 목소리가 온몸을 꿰뚫는 듯했다.

“보고 싶어, 미순아.”

그것이 남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를 향한, 마지막 사랑의 고백. 미처 받아줄 새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 말.

꿈속의 미순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울부짖는 젊은 자신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젊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싶었다. 괜찮다고,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남편의 마지막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평화로운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정말 고통스러웠을까? 마지막 순간, 그는 미순을 그리워하며 떠나갔을까? 그녀는 이제 알 수 있었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그녀를 기억했고, 그녀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마지막 순간까지 변치 않았다.

꿈은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구급대원들의 사이렌 소리가 멀어져 갔고, 집안의 풍경이 물감처럼 번져나갔다. 미순은 남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다. 이제는 그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말이 죄책감이 아니라, 사무치게 그리운 사랑의 고백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니.

***

미순은 눈을 떴다. 낡은 상점의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몸은 여전히 의자에 기대어 있었지만, 마음은 훨씬 가벼워져 있었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얼굴은 축축했지만, 마음속은 더 이상 메마르지 않았다.

카운터 너머에서 노인이 조용히 미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깊은 눈으로 미순의 변화를 읽을 뿐이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저를 사랑했습니다.”

미순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그 속에는 이제 후회가 아닌, 깊은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꿈을 파는 상점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였다.

“이제 아셨으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미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지만, 그녀는 곧 균형을 잡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과 함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평온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십 년간 그녀를 짓눌렀던 죄책감과 의문이 한순간에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노인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이었다. 노인은 미소 지었다. 그의 눈 속에는 삶의 무수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듯했다. 미순은 상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동이 트고 있었다. 옅은 보랏빛 하늘은 이제 주황색과 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도시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상점에 들어설 때보다 훨씬 가벼웠다. 굽었던 등도 조금은 펴진 듯했다. 이제 그녀는 남편을 온전히 기억하고, 온전히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마지막 사랑 고백을 가슴에 품고서.

꿈을 파는 상점은 오늘도 누군가의 간절한 염원을 기다리며, 그 자리에 고요히 서 있었다. 도시의 번잡함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