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897화

새벽의 미지근한 공기

유진은 침대에 몸을 뉘인 채 천장 모서리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어둠을 응시했다. 밤은 깊었고, 창문 밖 세상은 고요했지만, 그녀의 작은 방에는 언제나처럼 라디오의 목소리가 잔잔히 흘렀다. 오래된 탁상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DJ의 나긋한 목소리는 새벽 공기처럼 미지근했다. 지친 하루 끝에 만나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오늘 밤도 많은 분들이 잠 못 이루고 별을 헤고 계시겠죠. 어떤 별은 빛을 잃었고, 어떤 별은 너무 멀리 있어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그 별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음을 압니다. 기억처럼요.”

유진은 살짝 미소 지었다. 그의 말은 늘 그랬다.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것들,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한 사람의 얼굴.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보았던 수많은 별들.

잃어버린 별자리

그녀에게 별은 추억 그 자체였다. 어릴 적, 가장 친한 친구인 수아와 유진은 밤하늘을 보며 자신들만의 별자리를 만들곤 했다. 찌그러진 북두칠성 옆에 엉성하게 이어진 별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수아는 말했다. “이건 우리만의 별자리야, 유진아. 아무도 몰라야 해.”

“이 별자리는 무슨 뜻인데?” 유진이 물으면, 수아는 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음… 서로를 지켜주는 별자리! 우리가 어디에 있든 이 별자리를 보면 서로 생각나는 거야.”

그때는 영원할 것 같았다. 작은 시골 마을의 너른 들판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수많은 별들의 반짝임을 셀 수 없이 바라보던 시간들. 서로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이루고 싶은 꿈을 속삭이던 순수한 밤들. 수아의 꿈은 천문학자가 되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을 찾아내는 것이었고, 유진은 그런 수아의 옆에서 언제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무정했고, 세상은 그들을 다른 길로 이끌었다. 수아가 서울로 전학을 간 후, 둘의 연락은 점차 뜸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며 각자의 삶에 몰두했고, 별을 세던 소녀들은 더 이상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다 몇 년 전, 갑작스러운 소식을 들었다. 수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

그날 이후, 유진은 밤하늘을 제대로 올려다본 적이 없었다. 밤은 그녀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상기시키는 시간일 뿐이었다. 별자리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그녀는 삶의 한 조각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라디오가 켜놓은 작은 불꽃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다음 곡은 오래된 팝송이었다. 멜로디는 부드럽고 잔잔했지만, 그 속에 담긴 가사는 희미한 그리움과 아련한 희망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유진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흐릿해진 눈시울에 뜨거운 물기가 차올랐다.

“가끔은 우리가 놓친 인연들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어쩌면 그 인연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죠. 혹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작은 별똥별처럼 방향을 제시해줄지도 모릅니다.” DJ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의 말은 유진의 마음속에 작은 불꽃을 지폈다.

수아와 함께 꿈꾸던 별. 그녀가 찾고 싶어 했던 미지의 별. 유진은 그 꿈을 언제부터 외면하고 있었을까. 수아가 사라진 후, 그녀는 수아의 꿈도 함께 묻어버렸다. 어쩌면 그것이 수아를 영원히 간직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신을 잃어버리는 길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두려웠다. 수아가 없는 밤하늘을 혼자 올려다보는 것이. 혼자서 그 꿈을 좇는 것이. 하지만 오늘 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그녀에게 다른 시선을 건넸다. 잃어버린 인연은 고통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빛나는 별이 되어 길을 비춰줄 수 있다는 것.

다시 별을 향해

유진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활짝 열었다. 검푸른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서울의 밤하늘은 시골만큼 선명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저 멀리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점들이 보였다. 수아와 함께 만들었던 자신들만의 별자리는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 별자리는 더 이상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가슴속에 새겨져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수아의 유품 상자를 떠올렸다. 엄마가 고이 간직하고 계시다가 몇 달 전 유진에게 건네주신 상자였다. 아직 한 번도 열어보지 못했던 상자. 그 안에는 수아의 일기장이나 어릴 적 함께 찍었던 사진들이 들어있을 것이다. 어쩌면 수아가 마지막까지 품었던 꿈의 흔적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손을 뻗어 라디오 볼륨을 살짝 높였다. DJ는 이제 사연을 소개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오랜 친구에게 용기를 전하고 싶어 했고, 어떤 이는 잊혀진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그들의 목소리가 유진의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책상 서랍을 열어 오래된 수첩 하나를 꺼냈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낡은 수첩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첫 페이지를 펼쳤다. ‘수아에게. 그리고 우리의 별에게.’

펜을 쥐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는 계속해서 그녀의 밤을 밝히고 있었다. 오래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별이, 사실은 언제나 그녀의 마음속에서 반짝이고 있었음을 깨닫는 밤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별을 따라 다시 걷기 시작할 용기를 얻은 밤이었다.

라디오에서 다음 곡이 흘러나왔다. 제목은 ‘별의 노래’.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는 잠시 후 2부로 돌아오겠습니다.” DJ의 멘트와 함께 잔잔한 엔딩 음악이 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