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912화

별의 등대, 은별에게서 온 편지

밤하늘은 언제나 그랬듯, 말없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며, 때로는 희미하게, 때로는 찬란하게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네죠. 여기,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저는 여러분의 밤을 밝혀주는 작은 목소리, DJ 지훈입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찾아와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따라 스튜디오 창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이 유난히 깊고 검푸르네요. 도심의 불빛마저 삼켜버릴 듯한 어둠 속에서, 저 멀리 반짝이는 별들의 작은 몸짓이 더 아련하게 다가옵니다. 어쩌면 오늘 밤, 어떤 인연의 실타래가 이 별들 아래에서 조용히 엮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번째 사연은 익명의 청취자, 닉네임 ‘은별’님께서 보내주신 편지입니다. 편지를 읽기 전에, 은별님이 신청하신 곡 먼저 듣고 오겠습니다.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감성에 젖어들 준비가 되셨다면, 잠시 후 돌아오겠습니다.

(잠시 음악이 흐르고…)

김광석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애틋한 이야기에, 스튜디오 공기마저 숙연해지는 것 같습니다. 다시 돌아온 DJ 지훈입니다. 이제 은별님의 편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그곳에 가면, 다시 빛날까요?

<DJ 지훈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매주 수요일 밤, 지훈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위로를 받는 한 사람입니다. 매번 사연을 보낼까 말까 망설이다가, 오늘 밤에는 용기를 내어 펜을 들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너무 길거나 어두울까 봐 걱정이 앞서네요.>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밤하늘을 사랑했습니다. 특히나 별들이 쏟아질 듯 빽빽하게 박혀 있던 시골집 마당의 밤하늘을요. 그곳은 제게 작은 우주였고, 저의 전부였습니다. 그곳에 살던 할머니는 제가 밤마다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별을 세는 것을 좋아하셨죠.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어요. “하늘의 별들이 모두 너의 친구란다. 외로울 때면 별들에게 이야기를 걸어보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저는 그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저를 감싸던 별들도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도시의 불빛은 너무 강했고, 제 마음속의 별들은 더 이상 반짝이지 않았죠. 바쁜 일상 속에서, 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살았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옛 앨범을 뒤적이다 할머니와 제가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는 어린 저와 할머니의 모습. 그 사진 속에는 제가 잊고 지냈던 그 장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별의 등대’라고 불렀어요.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작은 정자인데, 마치 등대처럼 마을을 내려다보며 밤에는 별빛을 모으는 듯했죠.>

<기억 속에서 흐릿해져 가던 그곳을 다시 찾아가고 싶어졌습니다. 어쩌면 그곳에 가면, 제 마음속의 별들이 다시 빛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서요. 이번 주말, 저는 용기를 내어 그 ‘별의 등대’로 향할 생각입니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마주할 그 밤하늘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제가 잊고 지냈던 어떤 기억들을 다시 불러일으킬까요.>

<혹시 지훈님도 잊지 못하는 어떤 장소나 순간이 있으신가요? 별이 쏟아지던 밤, 누군가와 함께 나누었던 소중한 약속 같은 것이요. 저의 이 작은 모험이, 지훈님과 다른 청취자분들께도 잠시나마 잊고 지냈던 소중한 기억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그곳에서 어떤 별을 만나게 될지, 다음 주에 다시 편지 보내드릴게요. 부디 제 마음속 별이 다시 빛나기를.>

<별을 잃어버린 ‘은별’ 드림.>

은별님의 편지, 정말 잘 받았습니다. 편지를 읽는 내내, 제 마음속에서도 오래된 서랍장 하나가 열리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별의 등대’라…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요. 마치 등대가 배를 이끌 듯, 그곳이 은별님의 마음을 다시 빛으로 이끌어 주기를 저도 간절히 바랍니다.

잊지 못하는 장소나 순간이 있느냐고요? 네, 저에게도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저 역시 은별님처럼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꿈을 키웠던 시절이 있었죠. 그때의 밤하늘은 지금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다정했습니다. 함께 별을 보던 친구와 약속했던 작은 맹세들, 그리고 그 별들처럼 영원할 것 같았던 시간들이 떠오르네요. 지금은 그 친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지만, 가끔 이렇게 밤하늘을 보면 그 친구가 저 어딘가에서 저와 같은 별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은별님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잠시 잊고 지냈던 소중한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별들을 놓치고 살아가는 걸까요. 도시의 불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별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겠죠. 그저 우리가 잠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것을 잊었을 뿐입니다.

은별님, 부디 이번 주말, ‘별의 등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별이 은별님의 마음속에 다시 영롱한 빛을 밝혀주기를. 다음 주에 전해 주실 그곳에서의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지네요.

이 밤, 문득 그리워지는 별을 가진 모든 분들을 위해 신청곡 띄워드립니다. 윤종신의 ‘나의 이별’.

(음악이 흐르고…)

음악이 끝나면, 저는 잠시 후 다음 사연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깊어가는 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와 함께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