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골목길의 우산 수리공 – 제355화

골목은 빗물로 흐느꼈다. 하늘은 몇 날 며칠을 참았던 응어리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듯했고, 좁은 길바닥은 발목까지 차오른 흙탕물로 거친 숨을 내쉬었다. 우산 수리점 ‘빗물 아래’의 김 장인(匠人)은 오늘도 창가에 앉아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다. 낡은 작업등 아래, 그의 손은 수십 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으나, 망가진 우산살을 펴고 천을 꿰매는 움직임은 여전히 능숙하고 정교했다.

가게 문이 삐걱이며 열리는 소리에도 김 장인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런 날씨에는 손님이 드물기 마련이지만, 가끔은 폭우를 뚫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개 단순히 우산을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삶의 한 부분이 부서져 버린 채 위로를 갈구하는 이들이었다. 습한 공기 속에 희미한 흙냄새와 눅눅한 쇠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장인어른…”

낮게 깔린 목소리에 김 장인의 손이 비로소 멈췄다. 느리게 고개를 들자, 문간에 선 젊은 사내의 모습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온몸이 빗물에 젖어 축 늘어진 재킷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듯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지만, 김 장인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앳된 소년의 얼굴이 겹쳐졌다. 한솔이었다. 십 년도 더 전에 이 골목을 떠났던 그 아이가, 거짓말처럼 다시 눈앞에 서 있었다.

“한솔아…”

김 장인의 목소리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갈라졌다. 오랜만의 재회였음에도 그들은 서로에게 달려가 안거나 격한 감정을 쏟아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세월의 간극과 그 간극을 채웠을 무수한 이야기들이 그들의 침묵 속에 녹아들었다.

한솔은 자신의 한 손에 들린 것을 들어 보였다. 그것은 우산이었다. 검게 변색된 천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고, 살대는 보기 흉하게 휘어지고 부러져 있었다. 형태조차 알아보기 힘든 폐품에 가까웠다. 하지만 김 장인은 그 우산을 알아보았다. 한솔이 어린 시절, 처음으로 자신의 손으로 번 돈으로 사서 김 장인에게 가져와 자랑했던 바로 그 우산이었다. 비록 낡고 망가졌지만, 두 사람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우산이었다.

“고칠 수 있을까요…”

한솔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렸다. 그 우산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안에 담긴 아픔이 무엇인지 김 장인은 굳이 묻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두고 가거라.”

한솔은 아무 말 없이 우산을 김 장인의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낡은 천과 부러진 살대들이 김 장인의 곁에서 위태롭게 놓였다. 그는 우산을 내려다보는 김 장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돌려 가게를 나섰다. 빗줄기는 여전히 거셌고, 골목은 한솔의 발소리를 삼켰다.

김 장인은 한솔이 남기고 간 우산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부서진 살대 하나하나에 한솔의 지나온 세월이 박혀 있는 듯했다. 그의 손끝이 찢어진 천 위를 스쳤다. 이 우산은 단순히 비를 막는 도구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묻어두었던 한솔의 눈물이었고, 어딘가에서 헤매었을 그의 발걸음이었으며, 끝내 놓지 못했던 희망의 조각이었다. 그리고 자신과의 매듭을 짓지 못한 이야기였다.

김 장인은 낡은 연장통을 열었다. 그의 눈빛은 눅진한 빗물 속에서도 맑게 빛나고 있었다. 부러진 것을 고치고, 찢어진 것을 꿰매는 일. 그것은 김 장인의 평생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는 망가진 우산 너머에 있는 한솔의 부서진 마음을 어루만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빗줄기가 더욱 거세지고 있었지만, ‘빗물 아래’의 작업등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어둠 속을 헤매는 이들에게 언제나 작은 등불이 되어주었다. 한솔의 우산은, 이제 다시 태어날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