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질수록 세상은 더욱 고요해졌다. 차가운 공기가 창문 틈새로 스며들어 살결을 스쳤지만, 세나의 방 안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 덕분에 묘한 온기로 채워져 있었다. 오래된 탁상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마저도 별밤 라디오의 일부가 되는 시간. 스크래치 난 LP판처럼 아련한 피아노 선율이 끝나갈 무렵, 익숙하고도 따뜻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별밤지기입니다. 또 한 번의 밤이 찾아왔습니다. 365일, 찰나 같으면서도 영원 같은 시간들을 건너, 우리는 또다시 366번째 별빛 아래 서 있습니다. 매일 밤 같은 자리에 떠 있는 별들처럼, 변치 않는 목소리로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세나는 작게 미소 지었다. 그의 말처럼, 별밤 라디오는 지난 1년 내내 그녀의 곁을 지켜주었다. 특히 지난 365일, 태호가 떠난 후의 모든 밤을. 그녀는 무심코 손을 뻗어 침대맡 서랍 안에 고이 넣어둔 작은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낡은 천체 관측 수첩과 함께, 태호와 함께 찍은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들어있었다. 사진 속 태호는 열정적으로 밤하늘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 옆의 세나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오늘은 한 청취자분께서 이런 사연을 보내주셨네요. ‘별밤지기님, 저는 지난 일 년간 매일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무수히 많은 점에 불과하겠지만, 저에게는 가장 소중한 이가 보내는 안부 인사 같았습니다. 저의 소중한 별은 지금도 저를 비추고 있을까요?’”
별밤지기의 목소리가 사연을 읽어 내려갈수록 세나의 가슴은 저릿했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태호는 어릴 적부터 별을 좋아했다.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밤하늘을 탐험하는 것에 지칠 줄 몰랐고, 언젠가는 자신만의 별을 찾아 이름 붙이겠다며 눈을 반짝였다. 세나는 그런 태호를 위해 천문학 책을 함께 읽어주고, 밤마다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별자리를 찾아주곤 했다.
“이 밤, 각자의 별을 올려다보는 모든 분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를 떠난 별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가장 멀고 높은 곳에서 우리를 비추고 있다고 믿어요.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그 빛은 우리 안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입니다.”
별밤지기는 곧이어 한 곡의 노래를 틀었다. 멜로디는 잔잔했지만, 가사는 희망을 속삭였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어도, 저 높은 곳에서 빛나는 너의 별이 길을 안내하리라…’
세나는 상자 속에서 태호가 마지막까지 아끼던 연필 한 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수첩의 한 페이지를 펼쳤다. 그곳에는 태호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나의 별 탐사 일지 – 시작’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스무 살 생일에 이 수첩을 가득 채우고 싶어 했지만, 열아홉의 별이 되어버렸다.
세나의 손이 천천히 수첩 위로 움직였다. 연필을 든 손끝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지난 365일 동안, 이 수첩을 채울 용기를 내지 못했다. 태호가 떠난 후, 모든 것이 멈춘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별밤지기의 말과 흘러나오는 노래가 얼어붙었던 심장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이 아니라, 당신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별입니다. 그 별을 따라 걷는 오늘 밤, 당신의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세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태호의 글씨 아래,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또렷하게 적었다. 그리고 그 옆에 이렇게 썼다. ‘별 탐사 일지 – 다시 시작.’
창밖을 보니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 별들이 쏟아질 듯 빛나고 있었다. 그 별들 중 하나가 태호일 것이라고, 세나는 믿었다. 이제는 그가 시작하려 했던 길을, 자신이 대신 걸어갈 차례였다. 아직은 서툴고 두렵겠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빛나는 태호의 별이 그녀를 이끌어 줄 것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세나는 수첩을 덮었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태호야, 누나가 네 별을 찾아줄게. 가장 빛나는 별을.”
그녀의 눈가에 맺힌 작은 물방울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그리고 366번째 밤은, 그렇게 새로운 시작의 새벽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