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의 발걸음은 삐걱이는 낡은 마루 위에서 무거운 메아리를 만들어냈다. 버려진 지 오래된 듯한 이 저택은 해안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창밖으로는 회색빛 파도가 맹렬하게 바위에 부딪히며 흰 포말을 부수었고, 비릿한 바닷바람이 찢어진 유리창 틈새로 음산한 비명을 토해냈다. 950번째의 발자국. 강우는 그 숫자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채, 폐허가 된 공간 속을 헤치고 있었다.
마지막 단서가 가리킨 곳은 이곳이었다. 한때는 누군가의 온기가 머물렀을 보금자리였으나, 이제는 시간과 망각이 빚어낸 거대한 무덤처럼 느껴졌다. 지혜를 찾아 헤맨 긴 세월 동안, 강우는 수많은 낡은 집과 잊혀진 장소를 지나왔다. 각 장소마다 희미한 지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때로는 차가운 실망만이 그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심장이 거친 북소리처럼 울렸다. 직감이었다. 이곳 어딘가에, 그녀의 숨결이 닿았던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먼지와 거미줄로 뒤덮인 복도를 지나, 강우는 낡은 문을 열었다. 서재로 보이는 방이었다. 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벽을 가득 채운 책장과 삐걱이는 책상, 그리고 창가에 놓인 낡은 피아노는 이곳이 한때 생기로 가득했던 곳임을 짐작게 했다. 강우의 시선은 책상 위, 먼지에 덮인 채 놓여 있는 낡은 노트 한 권에 멈췄다.
그는 조심스럽게 노트를 집어 들었다. 표지는 바래고 모서리는 너덜너덜했지만, 익숙한 글씨체로 쓰인 이름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혜의 기록’.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메마른 심장에 오랜만에 뜨거운 피가 돌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으로 노트를 펼치자, 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자들이 나타났다. 그녀의 감성, 그녀의 시선, 그녀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의 삶은 언제나 미완성으로 남아있을 것만 같아. 이곳은 나에게 도피처인 동시에, 세상의 끝이기도 해.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이 끝나면…”
글귀 하나하나에 지혜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강우는 그녀가 이곳에 머물렀음을 확신했다. 그녀는 그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녀 또한 자신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슴을 찢어지게 아프게 하면서도, 동시에 희망의 불꽃을 지폈다. 노트의 마지막 장에는 찢어진 사진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어린 시절의 강우와 지혜가 웃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 뒤에는, 다른 필체로 쓰인 짧은 문장이 있었다.
‘그녀는 이곳을 떠났지만, 그림자는 여전히 머물고 있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바다 건너 섬으로 오시오. 붉은 등대 아래에서 기다리겠소.’
낯선 필체에 강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혜의 노트에 이런 메시지를 남긴 사람은 누구인가? 그녀의 행방을 알고 있는 자? 혹은 또 다른 함정인가? 950화에 이르러, 그는 또 다른 미궁의 입구에 서 있었다. 그의 등 뒤로, 문이 스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바람이 방 안으로 불어닥쳤다.
강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문가에는 검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어두운 실루엣이었지만, 그 형상은 고고하고도 위협적인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한 여인이었다.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카락,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강우를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은 눈빛.
“오셨군요.” 여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낮았지만, 낡은 저택의 정적을 깨뜨리기에 충분히 날카로웠다. “오랜 세월, 당신을 지켜봐 왔습니다, 강우 탐정님.”
강우는 노트를 든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는 누구이며, 어떻게 자신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지혜와 어떤 관계란 말인가?
“당신은… 누구십니까?” 강우는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진실의 조각이, 또다시 거대한 어둠 속으로 그를 끌어들이는 듯했다.
여인은 천천히 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시선은 강우의 손에 들린 노트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저는 지혜의 친구이자, 그녀의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찾는 모든 질문의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죠.” 그녀는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답은 공짜가 아닙니다. 진실에는 항상 대가가 따르죠.”
창밖의 파도 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붉은 등대, 그리고 지혜의 그림자라고 자처하는 이 여인. 강우는 또 다른 퍼즐의 조각을 받아들었지만, 그 조각은 더욱 깊은 미궁으로 그를 인도하고 있었다. 지혜를 찾기 위한 그의 여정은, 950화에 이르러 더욱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