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사무실을 깊게 잠식했다. 탁상 스탠드의 외로운 불빛만이 먼지 쌓인 공기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태준은 낡은 가죽 의자에 깊숙이 파묻혀 있었다. 그의 눈은 피로에 절어 있었지만, 그 속에는 꺼지지 않는 불씨가 희미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지난 몇 주간, 그가 쫓던 실마리는 연속적인 허상으로 드러났다. 은채의 흔적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그를 희망고문했다. 950화가 넘도록 이어진 이 지루한 추적에 태준은 이제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도 가끔은 의심스러웠다.
책상 위에는 수많은 서류와 사진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17년 전의 낡은 신문 기사, 희미해진 은채의 고등학교 졸업 앨범 사진, 그리고 그녀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날의 수첩 메모. 모든 것이 그의 손때로 닳아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차가워진 커피잔을 들었다. 목이 타는 갈증처럼, 그의 마음은 은채를 향한 해갈되지 않는 갈망으로 메말라 있었다.
“정말… 이제는 끝인가?”
태준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포기와 체념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사무실 문틈으로 우편물 투입구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는 낡고 두툼한 우편물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발신인도, 주소도 없는 투박한 포장. 호기심보다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그는 칼로 조심스럽게 봉투를 뜯었다.
예상치 못한 조각
안에는 꽤 오래되어 보이는 서류 뭉치가 들어 있었다. 언뜻 보니, 오래전 그가 잠시 자문했던 다른 실종 사건의 자료들 같았다. 5년 전, 한 미술학도 실종 사건. 당시 태준은 그 사건을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었다. 은채의 사건에 비하면 너무나도 사소하고,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왜 지금, 이 자료들이 익명으로 배달된 걸까?
태준은 의아함에 휩싸인 채 서류들을 뒤적거렸다. 당시의 수사 보고서, 목격자 진술, 그리고 실종된 학생의 개인 소지품 목록. 그의 눈은 대충 훑고 지나갔다. 분명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넘기던 그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낡은 스케치북 페이지 한 장이 툭 떨어져 나왔다.
그것은 한때 실종된 미술학도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스케치였다. 섬세하지만 기묘한 형태의 그림. 태준은 그림을 응시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뇌리를 스쳤다. 마치 오래전 잊고 있던 꿈의 조각처럼, 흐릿하지만 강렬하게 그의 기억을 자극했다.
기억의 전율
그림 속에는 특이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단순한 도형의 조합 같기도 하고, 어떤 상징 같기도 했다. 가운데에는 깃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날카로운 칼날 같은 형상이 위로 솟아 있었고, 그 주위를 부드럽게 감싸는 곡선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순간, 태준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건…!”
그는 급히 책상 서랍을 열어 17년 전 은채가 남긴 낡은 수첩을 꺼냈다. 수첩의 맨 마지막 페이지, 아무도 모르게 숨겨놓았던 작은 그림. 그 그림과 지금 그의 손에 들린 스케치는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아니, 거의 똑같았다. 은채가 고등학생 시절, 자신만의 비밀 서명이라며 자신에게만 보여주었던 그 문양. 어떤 전시회에 몰래 출품할 그림에 새겨 넣을 자신만의 ‘상징’이라고 했었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건 우연일 수 없었다. 5년 전 실종된 미술학도의 그림에서, 17년 전 사라진 은채의 흔적을 발견하다니. 태준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가설들이 얽히고설켰다.
‘이 학생은 은채를 알았던 걸까? 아니면 은채의 그림을 봤던 걸까? 설마… 은채가 아직 살아있고, 이 학생과 접촉했던 것인가?’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950번의 좌절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희망의 끈이, 이제는 너무나도 선명한 형태로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것은 단순한 단서가 아니었다. 잃어버린 시간의 거대한 퍼즐 조각 중 하나가 드디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둠 속의 속삭임
태준은 흥분과 불안이 뒤섞인 채 서류 뭉치를 다시 뒤졌다. 스케치 뒤에는 얇은 종이 한 장이 테이프로 고정되어 있었다. 역시나 익명의 쪽지였다.
‘상징은 길을 안내한다. 진실은 숨겨진 벽 뒤에 있다.’
간결하고 모호한 문구. 그러나 태준은 심장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스케치와 이 쪽지. 이 둘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누군가 은채의 상징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 자신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숨겨진 벽’은 분명 어떤 장소를 의미할 터였다.
그는 다시 5년 전 실종된 미술학도의 자료를 꼼꼼히 살폈다. 그의 주 활동 무대, 친구들, 그가 참가했던 전시회 목록… 그리고 마침내, 그의 시선이 한 장의 낡은 팸플릿에 고정되었다. 이름 없는 작은 갤러리에서 열렸던 비정기적인 ‘지하 예술전’.
팸플릿 구석에 작게 인쇄된 날짜. 그리고 그 옆에는, 태준이 방금 발견한 은채의 상징과 거의 흡사한, 하지만 조금 변형된 형태의 문양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다. 마치 갤러리의 비밀스러운 로고처럼.
“새로운 실마리인가… 아니면 새로운 함정인가.”
태준은 텅 빈 사무실의 어둠 속에서 혼잣말했다. 그의 눈빛은 다시 한번 불타올랐다. 피로는 온데간데없었다. 17년의 세월이, 950번의 좌절이, 이 작은 스케치 한 장과 익명의 쪽지 하나로 인해 다시 생기를 얻는 순간이었다. 은채는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적어도 그녀의 흔적은 아직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태준은 그 흔적이 이끄는, 더 깊고 어두운 미궁 속으로 발을 들여놓아야 했다. 잠자는 갤러리, 숨겨진 벽, 그리고 잊혀진 상징의 진실을 찾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