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기적 – 제395화

새벽 공기를 가르고 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문이 열렸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 오븐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빵 굽는 냄새가 차가운 새벽 공기와 섞여 포근한 장막을 쳤다. 김사장님은 땀방울을 닦으며 갓 나온 식빵들을 조심스레 진열대에 올렸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갓 구운 빵들의 윤기를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벅차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빵집 안을 가득 채웠다. 바로 어제부터 준비한 특별한 호박 크림치즈 빵 때문이었다. 평소 단 것을 즐기지 않던 박순자 할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옛날에 먹던 호박떡 맛이 그립다’ 하셨던 것을 김사장님이 흘려듣지 않고 기억해두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이 빵집의 가장 오래된 단골 중 한 분이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딸랑, 하고 문이 열렸다. 예상대로 박순자 할머니였다. 늘 단정한 한복 차림에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으셨지만, 요새 들어 부쩍 야위고 기운이 없어 보이셨다. 눈가에 드리운 그림자는 깊었고, 세상 모든 근심을 짊어진 듯 쓸쓸한 기운이 할머니를 감싸고 있었다. 할머니는 말없이 늘 앉던 창가 자리로 향하셨다. 창밖으로 보이는 흐린 산등성이가 할머니의 뒷모습처럼 쓸쓸해 보였다.

“할머니, 오셨어요? 오늘은 일찍 나오셨네요.” 김사장님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네. 잠이 안 와서….” 할머니의 목소리는 파도에 깎인 조약돌처럼 마르고 작았다. “여기, 할머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예요. 호박 크림치즈 빵인데, 옛날 호박떡 맛이 좀 나실까 해서요.” 김사장님은 따뜻하게 데운 빵과 함께 구수한 차 한 잔을 내밀었다. 할머니는 빵을 물끄러미 바라보셨지만, 좀처럼 손대지 않으셨다.

창밖을 응시하던 할머니의 눈빛은 먼 과거를 헤매는 듯했다. 김사장님은 조용히 할머니를 지켜봤다. 어쩌면 빵 한 조각보다 더 필요한 것은, 그저 잠시 기댈 수 있는 따뜻한 공간과 아무 말 없이 건네는 위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할머니, 이 빵 맛있는 냄새 나요!” 맑고 티 없는 아이의 목소리가 빵집의 정적을 깨뜨렸다.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들어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할머니의 테이블을 쳐다보고 있었다. 빵집에 처음 온 아이인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기한 듯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아이는 할머니가 드시지 않은 호박 크림치즈 빵에 시선을 고정했다.

엄마가 민망한 듯 아이를 제지하려 했지만, 아이는 이미 한 걸음 더 다가가 할머니 앞에 섰다. “할머니, 이거 호박 빵이에요? 제가 호박 엄청 좋아하는데!” 아이는 작은 손가락으로 빵을 가리키며 해맑게 웃었다. 그 순간, 할머니의 메말랐던 눈빛에 아주 미세한 떨림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샘물처럼, 어렴풋한 온기가 할머니의 표정에 감돌았다.

할머니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손을 들어 호박 크림치즈 빵 한 조각을 떼어냈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내밀었다. “아가, 이거 먹어 볼래? 따뜻하단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았지만, 그 안에 담긴 온기는 빵의 따뜻함보다 더 깊었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빵을 받아들었고, 한입 베어 물고는 “우와! 진짜 맛있다! 할머니도 드셔보세요!” 하며 순수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는 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도 빵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호박 크림치즈의 맛이 할머니의 입안 가득 퍼졌다. 그리고 그 맛과 함께, 잊고 지냈던 따뜻한 추억 하나가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듯했다. 아이와 할머니,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작은 빵집을 채웠다. 김사장님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빵 하나가, 아니, 그 빵을 매개로 한 작은 인연이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빵집 창밖으로, 비로소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어둡던 산모퉁이가 환한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