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419화

책방, 그리고 희미한 기억의 흔적

김현우는 낡은 책방 문을 열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세월의 냄새, 종이와 먼지가 뒤섞인 익숙한 공기가 그를 맞았다. 며칠 전 만난, 서연의 대학 시절 자주 들르던 찻집 할머니의 기억 조각 하나가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서연 아가씨는 늘 희귀한 고서나 전설 같은 이야기가 담긴 책들을 찾으러 다녔어. 그 중에서도 유독 이 동네의 ‘기억의 서점’을 좋아했지.”

책방 주인은 백발의 노인이었다. 김현우는 조심스럽게 서연의 이름을 꺼냈다. 노인은 흐릿한 눈빛으로 벽면 가득한 책들을 훑었다. “서연이라…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젊은 아가씨가 유독 신화나 설화, 향토지 같은 책을 탐독하던 건 기억에 남네요. 특히 저 안쪽 구석, 한국 토속 신앙이나 사라져가는 민간 전승을 모아둔 곳을 자주 찾았지.”

현우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노인이 가리킨 곳은 책방 가장 안쪽, 햇빛조차 잘 닿지 않는 어두운 구석이었다. 그는 묵묵히 그곳으로 향했다. 켜켜이 쌓인 먼지 속에서 책들을 하나씩 꺼내 들었다. 수십, 수백 권의 책들. 서연의 손길이 닿았을 법한 책들을 찾는다는 것은 마치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일과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의 손에 낡은 표지의 책 한 권이 잡혔다. 지역 설화집이었다. 무심코 펼친 책의 한 페이지에서, 그의 눈이 멈췄다. <지리산 화엄사 설화> 옆에 작고 섬세한 연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어린 시절 서연이 자주 그리던, 산속 작은 암자의 모습. 그리고 그 아래, 아주 희미하게, 그녀의 필적으로 보이는 작은 글귀가 쓰여 있었다. ‘할머니의 이야기처럼, 언젠가 나도 그곳에…’

현우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종이를 쓸어보니 마치 서연의 온기가 남아있는 듯했다. 400여 회의 여정 동안 수없이 많은 허상과 마주쳤지만, 이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선명한 그녀의 흔적이었다. 책을 가슴에 품은 채 그는 다시 노인에게 다가갔다.

“어르신, 혹시 이 책 기억하십니까? 이 그림과 글귀를 남긴 분이 혹시…”

노인은 돋보기를 고쳐 쓰고 책 속의 그림과 글귀를 들여다보았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노인의 얼굴에 희미한 기억의 조각이 떠올랐다. “아… 이 책. 이 책을 찾으러 다시 왔던 아가씨가 있었지. 할머니가 들려주던 어떤 산속 절 이야기와 이 책의 내용이 똑같다고 했었어.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그래, 아주 조용하고 작은 절이었어. 지리산 근처라 했던가… 하지만 이름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군. 워낙 오래된 일이라…”

현우의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지리산 근처의 작은 절. 할머니의 이야기… 그가 찾아 헤매던 서연의 발자취가 이제 막연한 그리움이 아닌, 구체적인 장소로 수렴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더듬었지만, 이름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현우는 알고 있었다. 419번째 이어진 여정의 끝에서, 마침내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