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속의 눈동자
미나는 떨리는 손으로 빛바랜 가족사진을 들어 올렸다. 십여 년 전, 바로 이 ‘오래된 사진관’에서 찍었던 사진이었다. 사라지기 직전의 소라, 그리고 환하게 웃고 있는 부모님, 어색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던 어린 미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이 사진을 들여다보며 울었고, 또 웃었던가. 하지만 오늘 밤, 미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기이한 풍경이었다.
사진 속, 여덟 살 소라의 초롱초롱한 눈동자. 그 작은 수정체 속에, 아주 희미하게, 검푸른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골목길의 형상이 스쳐 지나갔다. 분명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어두컴컴하고 습한 기운이 느껴지는, 마치 잊혀진 시간의 저편에서 끌려온 듯한 이질적인 공간. 그리고 그 골목 어귀에, 흐릿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있었다.
“아니… 이게 대체…”
미나의 입술에서 겨우 떨리는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수만 번 들여다본 사진이었다. 한 점의 먼지, 한 올의 머리카락까지도 외울 정도로.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것이 이제야 보인단 말인가? 그녀의 심장이 불안하게 요동쳤다. 이것은 단순한 빛의 반사가 아니었다. 사진관의 김 노인이 언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곳의 사진들은 때로, 잊힌 시간의 흔적을 담아내기도 한다’고.
그녀는 사진을 더욱 가까이 대고 소라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 골목의 모습은 더욱 선명해지는 듯하다가, 이내 다시 희미해지며 사라지려 했다. 마치 존재할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는 듯, 미나는 손가락 끝으로 사진 속 소라의 눈동자를 애타게 더듬었다. 닿을 수 없는 과거, 붙잡을 수 없는 기억. 지난 세월 동안 그녀를 짓눌렀던 죄책감과 절망의 무게가 다시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소라… 네가 본 것이 이거였니…?”
그녀는 사진 속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그를 찾기 위해 온 삶을 바쳤지만, 매번 허망한 메아리만 돌아왔었다. 이제 와서 이토록 늦게 나타난 단서가 과연 희망일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좌절의 시작일 뿐일까?
문득, 등 뒤에서 낮은 기침 소리가 들렸다. 미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어느새 김 노인이 그녀의 옆에 서 있었다. 그의 늙은 눈은 사진 속 미나의 눈동자와, 그리고 사진 속 소라의 눈동자를 번갈아 보며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오랜만에 그 사진을 꺼내 보시는구려.” 김 노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시간을 초월한 듯한 묘한 울림이 있었다. “사진은… 그 안에 담긴 자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과 같으니. 무엇을 보셨는지요?”
미나는 애써 평정을 되찾으려 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노인장… 이 사진이… 변했어요. 소라의 눈에… 낯선 골목이… 그리고 누군가의 그림자가…”
김 노인은 묵묵히 미나의 말을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도, 의심도 없었다.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혹은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천천히 미나의 손에 들린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소라의 눈동자에 멈추었다.
“시간은 강물과 같아서, 흐르는 대로 흘러가지만… 때로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오.” 김 노인이 읊조리듯 말했다. “그 골목… 미나 양의 기억 속에 비슷한 장소가 없었는지, 다시 한번 잘 헤아려 보시오. 사라진 것이 나타나는 곳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이기에.”
그의 말은 수수께끼 같았지만, 미나의 심장에는 강렬한 파문이 일었다. 사라진 것이 나타나는 곳. 그녀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치는 하나의 장소가 있었다. 어린 시절, 소라와 함께 숨바꼭질을 하던 낡은 시장의 좁은 골목. 너무나 평범해서,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오히려 기억 저편으로 밀어냈던 그곳이었다.
사진 속 소라의 눈동자에 비쳤던 어두운 골목. 그리고 그곳에 서 있던 실루엣. 미나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지난 세월의 무게는 잠시 접어두고, 이 기이한 단서가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어쩌면 그 골목 끝에서, 그녀는 잃어버린 시간의 조각을, 아니… 잃어버린 동생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줄기 희망이 그녀의 심장을 격렬하게 채찍질했다.
미나는 김 노인에게 인사를 할 새도 없이 사진을 가슴에 품고 사진관 문을 나섰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하늘 아래, 그녀의 발걸음은 십여 년 전의 그 골목을 향해 재촉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실타래의 한 끝을 잡은 것처럼, 이제 막 풀리기 시작한 운명의 실타래를 따라… 그녀는 미지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