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가족 여행기 – 제316화

깊어가는 가을, 설악산 자락의 한적한 숲속 펜션에 대가족의 활기찬 기운이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붉고 노란 단풍잎이 하늘을 가득 메운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지만, 그 고요함을 깨는 데는 우리 가족의 도착만으로 충분했다. 승합차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쏟아져 나온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펜션 마당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예나는 아빠가 겨우 내려놓은 짐짝 위를 밟고 올라서며 “우와, 진짜 산이다!” 하고 소리쳤고, 중학생 민서는 벌써부터 휴대폰을 꺼내 들고 가을 산 풍경을 ‘갬성’ 넘치게 담아내겠다며 한껏 폼을 잡고 있었다.

엄마는 늘 그렇듯이 도착과 동시에 지휘관이 되었다. “애들아, 짐부터 풀고 움직여야지! 민서야, 그 휴대폰 좀 넣어두고 할머니 짐 좀 날라 드려!” 아빠는 엄마의 잔소리 폭격을 피하려는 듯 후다닥 차 트렁크에서 아이스박스를 꺼내 주방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평화로운 미소로 이 모든 소란을 지켜보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연신 “허허, 이놈들 기운 좀 보게나. 젊음이 좋구먼.” 하시며 고개를 젓고 계셨고, 할머니는 “어휴, 시끄러워 죽겠어. 그래도 안 오면 섭섭한데 뭘.” 하시면서도 입가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셨다.

하지만 그 소란 속에서 유독 조용한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바로 고등학교 3학년, 큰아들 지훈이었다. 여행 내내 창밖만 바라보던 지훈은 펜션에 도착해서도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했다. 수능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이 가족 여행은 그에게 즐거움보다는 ‘또 하나의 시련’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은 독서실에서 밤을 새우며 마지막 박차를 가하는데, 자신은 시끌벅적한 가족들과 단풍놀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꾸만 마음을 짓눌렀다. ‘이 시간에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 죄책감과 불안감이 뒤섞여 가슴 한구석을 무겁게 짓눌렀다.

가을 단풍 속의 소란, 그리고 고요

엄마는 짐 정리 도중 지훈의 방에 들러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지훈아, 너무 걱정하지 마. 아빠도 엄마도 네가 잠시 쉬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너무 억지로 웃으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편하게 있어.” 엄마의 따뜻한 말에도 지훈은 겨우 “네…” 하고 짧게 답할 뿐이었다. 그의 눈은 방 창문 너머로 보이는 붉고 노란 단풍에 머물러 있었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풍경이었지만, 그 평화가 오히려 자신의 불안을 더욱 부각시키는 것 같았다.

점심 식사 후, 가족들은 펜션 뒤편의 짧은 산책로를 걷기로 했다. 작은 전망대가 있어 탁 트인 산세를 볼 수 있다는 할아버지의 제안이었다. 예나는 “내가 선두!”를 외치며 깡총깡총 뛰어 앞서 나갔고, 민서는 휴대폰 삼각대까지 챙겨 들고 뒤를 따랐다. 아빠는 엄마의 손을 잡고 느긋하게 걸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서로 부축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셨다. 지훈은 늘 그랬듯이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뒤를 따랐다. 일부러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는 건 아니었지만, 그의 발걸음은 왠지 모르게 무거웠다.

산책로 중간쯤, 길이 살짝 가팔라지자 민서가 예나를 향해 장난스럽게 소리쳤다. “야, 예나! 너 그렇게 뛰어가다가 넘어져서 단풍잎이랑 깔맞춤 하겠다!” 예나는 뒤돌아 “메롱!” 하고 혀를 내밀다가 정말로 나뭇가지에 발이 걸려 휘청거렸다.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들고 있던 작은 나뭇가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지훈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위태롭게 흔들리는 마지막 단풍잎이었다. 곧 떨어질 듯한 그 잎은 마치 자신의 미래처럼 불안해 보였다.

전망대에 도착하자,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울긋불긋한 산봉우리들이 끝없이 이어졌고, 멀리 계곡 물이 반짝였다. 가족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예나는 “와, 그림책 같아요!”라며 환호했고, 할머니는 “살면서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니 좋구나. 고생한 보람이 있어.” 하고 미소 지으셨다. 지훈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가족의 모습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자신은 왜 이리 한숨만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할머니가 조용히 지훈의 곁으로 다가오셨다. “지훈아, 무슨 생각 하니?” 지훈은 살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할머니. 그냥… 좀 답답해서요.” 할머니는 지훈의 어깨를 가만히 어루만지셨다. “할머니도 젊었을 때 그랬단다. 앞날이 막막하고,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세상의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진 것 같고 말이야.” 지훈은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늘 너그러운 미소를 짓는 할머니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근데 말이야.” 할머니는 다시 산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이 산도 처음부터 이렇게 멋진 단풍으로 가득 찬 건 아니었을 거다. 푸릇푸릇한 여름을 지나고, 뜨거운 햇볕도 견뎌내고, 차가운 바람도 맞으면서 비로소 이렇게 아름다운 색을 낸 거야. 네 인생도 마찬가지일 거다. 지금 네가 겪는 불안과 어려움들이 다 나중에 너만의 빛깔을 내는 시간이 될 게야.” 할머니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그 울림은 지훈의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다. 눈앞의 단풍들이 그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인내하고 변화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새삼 와 닿았다.

그때, 아빠가 “자, 우리 가족 단체 사진! 다들 붙어봐!” 하고 크게 외쳤다. 민서는 재빨리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를 맞췄다. 지훈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할머니의 따뜻한 시선과,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는 예나의 눈빛에 이끌려 조심스럽게 가족들 틈으로 다가갔다. 어색하게 서 있는 지훈의 허리를 엄마가 쓱 감싸 안았다. “자, 웃어야지! 치즈!”

찰칵. 플래시가 터졌다.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지만, 그래도 함께 서 있는 여덟 명의 가족이 사진 속에 담겼다. 그 순간, 지훈은 알 수 없는 뭉클함을 느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 불안감을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시끌벅적하고 때로는 잔소리 많고, 때로는 유치하지만, 언제나 든든하게 자신을 감싸 안아주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다가왔다.

하산하는 길, 지훈은 아까 그 위태로운 단풍잎이 있던 나뭇가지를 다시 보았다. 잎은 여전히 매달려 있었지만, 이제는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곧 찾아올 겨울을 준비하며 제 색깔을 마지막으로 뽐내고 있는 듯 당당해 보였다. 지훈은 덩달아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예나가 “오빠, 빨리 와! 누가 먼저 펜션에 도착하는지 시합하자!” 하고 소리치자, 지훈은 저도 모르게 작게 웃으며 걸음마를 재촉했다. 완벽한 해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그는 가족의 따뜻한 품 안에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용기를 얻고 있었다.

펜션에 돌아오자, 저녁 준비로 다시금 소란이 피어났다. 아빠는 숯불을 피우며 연신 헛기침을 했고, 엄마는 재료들을 씻으며 민서와 예나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따뜻한 차를 나누며 옛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지훈은 말없이 엄마를 도와 상을 차렸다. 그의 얼굴에는 아침과는 다른, 미미하지만 분명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이 시끌벅적한 소란이, 이제는 그에게 가장 따뜻하고 든든한 위로가 되고 있었다. 가을밤, 펜션 마당에는 가족들의 웃음소리와 고기 굽는 냄새가 한데 어우러져 행복한 소음으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