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어버린 시간 여행자 – 제444화

잊혀진 시간의 메아리

이안은 폐허가 된 시간 연구소의 텅 빈 홀을 가로질렀다. 발걸음마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고, 한때 번성했을 이곳의 기억들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아래 깊숙이 잠들어 있는 듯했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전의 잔해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깨진 유리 파편들, 녹슨 강철 구조물, 그리고 정체불명의 시간 장치들이 흉물스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이곳은 그가 추적해온 희미한 에너지 신호의 발원지였다.

그는 손목에 찬 시간 안정화 장치의 스캐너를 켰다. 파란색 빛이 깜빡이며 공중을 훑자, 삑, 삑, 삑 하는 불규칙한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신호는 이 홀의 가장 안쪽, 거대한 방사능 차폐문 너머에서 오고 있었다. 그 문은 두꺼운 철판으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세월의 흔적과 알 수 없는 충격으로 한쪽이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이안은 그 틈새로 몸을 구겨 넣었다.

안은 더욱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중앙에는 지름 수 미터에 달하는 원형의 콘솔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대부분의 패널은 검게 그을려 있었지만, 그 한가운데에 놓인 수정구는 기이하게도 온전했다. 그것은 마치 잠든 심장처럼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안의 손목 장치가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신호는 바로 저 수정구에서 나오고 있었다.

시간의 잔상

이안은 조심스럽게 콘솔에 다가섰다. 손을 뻗자, 수정구에서 작은 전류가 그의 손끝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잊혀진 시간의 흔적이 그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시간 안정화 장치를 수정구와 연결했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장치와 수정구 사이에 희미한 에너지 고리가 형성되었다.

순간, 콘솔의 모든 패널에 불이 들어왔다. 깜빡이는 불빛이 어두운 실험실을 기괴하게 비췄다. 이안은 숨을 죽였다. 그리고 수정구에서 거대한 홀로그램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불안정하고 왜곡된 이미지였다. 찢겨진 필름처럼 지직거리는 화면 속에서, 낯선 공간과 익숙한 얼굴이 번갈아 나타났다 사라졌다.

홀로그램은 한때 아름다웠을 초록빛 들판을 보여주었다. 그곳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자가 있었다. 아니, 과거의 자신이었다. 그는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흐릿했지만, 그 작은 손이 그의 목을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만은 선명했다. 과거의 이안은 필사적인 표정으로 아이를 보호하려 하고 있었다. 뒤편에서는 거대한 폭발의 섬광이 번쩍였다.


“도망쳐… 제발… 잊지 마… 네 이름은…”

과거의 이안의 입술에서 비명에 가까운 속삭임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폭발의 빛이 홀로그램을 집어삼켰다. 과거의 이안은 아이를 밀쳐내며 자신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들려왔다. 온 마음을 찢어발기는 듯한, 고통과 사랑이 뒤섞인 절규.


“미안해…! 내가 널 지킬게… 꼭, 다시 만날 거야…!”

그 목소리가 이안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것은 단순한 음성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이 아니라, 잊혀진 감정의 파고였다.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그 크기와 무게를 온몸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과,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이 그를 덮쳤다.

메아리치는 비극

홀로그램은 완전히 사라지고, 수정구는 다시 희미한 빛만을 내뿜었다. 이안은 주저앉았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울부짖었다.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대신 목구멍에 뜨거운 덩어리가 맺혔다. 그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의 몸은 그 순간의 비극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반응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아이가 있었단 말인가? 그는 왜, 무엇으로부터 아이를 지켜려 했던가? 그리고 왜 자신은 그 모든 것을 잊었는가?

과거의 자신이 내뱉었던 절규가 귓가를 맴돌았다. ‘다시 만날 거야.’ 그 약속은 아직 유효한 것일까? 아니면, 이미 산산조각 난 희망의 잔해일 뿐일까?

그때였다. 이안은 손안에 무언가 차가운 것이 쥐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언제부터 이것을 쥐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손가락을 펴자, 작고 낡은 은색 로켓이 드러났다. 한쪽 면에는 알아보기 힘든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다른 면에는 흐릿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손안의 로켓을 응시했다. 그리고 로켓이, 그의 가슴속에서 다시 떠오른 아련한 슬픔에 공명하듯, 희미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빛은 아주 잠시,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별빛처럼, 그의 어둠 속을 밝히는 듯했다.

이것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시간 속에 던져진 그의 일부, 그의 존재를 증명하는 마지막 조각이었다. 이안은 로켓을 꽉 움켜쥐었다. 그 속에, 어쩌면 모든 답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