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기적 – 제454화

오래된 사진 속 케이크

산모퉁이 작은 빵집에는 언제나 따뜻한 온기가 가득했다. 노릇하게 구워진 빵 냄새는 골목 어귀까지 스며들어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곤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젊은 제빵사 준호는 오븐 앞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준호의 시선은 빵이 아닌 한 사람에게 머물러 있었다. 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매일 오후 같은 시간에 빵집을 찾았다. 팥빵 하나를 겨우 고르더니, 구석 창가 자리에 앉아 먹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의 눈길은 늘 한곳에 머물렀다. 낡고 빛바랜 유리 진열장 한구석에 놓인, 오래된 흑백 사진 속 케이크였다. 장미꽃 한 송이가 조악하게 그려진, 투박하지만 정겨운 옛날 케이크 사진.

어느 날 준호는 용기를 내어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 저 사진 속 케이크가 마음에 드세요?”

할머니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깊은 주름이 패인 얼굴에 쓸쓸함이 감돌았다. “아니…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할머니의 목소리는 파스스 부서지는 낙엽 같았다.

그날 밤, 준호는 빵집 문을 닫고도 한참을 남았다. 할머니의 쓸쓸한 뒷모습과 사진 속 케이크가 자꾸만 아른거렸다. 그는 할머니가 말없이 흘리던 눈물 자국을 보았던 것을 기억했다. 분명 그 케이크에는 할머니만의 아련한 사연이 있을 터였다. 준호는 낡은 요리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사진 속 케이크와 가장 흡사한 레시피를 찾아 헤맸다. 밤늦도록 밀가루 반죽을 치대고, 크림을 휘저었다. 오븐 속에서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반죽을 보며, 준호는 간절히 빌었다. 이 케이크가 할머니의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다음 날 오후, 김 할머니는 어김없이 빵집을 찾았다. 평소처럼 팥빵을 고르려는 할머니의 시선은 순간 멈췄다. 진열장 중앙에 놓인, 어제 그 사진 속 케이크와 똑 닮은 케이크 때문이었다. 옅은 핑크색 크림 위에는 서툰 솜씨로 짠 장미꽃 한 송이가 올라가 있었다.

“할머니, 이거… 어제 할머니가 한참 보시던 케이크예요. 제가 한번 만들어봤어요.” 준호는 조심스럽게 케이크를 들고 할머니 앞에 내려놓았다.

할머니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케이크 상자를 받아 든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오래된 사진 속 케이크와 눈앞의 케이크를 번갈아 보며 한참을 망설였다. 그리고 이내 투박한 손으로 케이크 상자를 살포시 열었다. 달콤한 바닐라 향이 빵집 안에 은은하게 퍼졌다.

“고맙네… 아주… 고맙네.” 할머니는 겨우 말을 잇더니, 이내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이 케이크… 우리 영감탱이가 나한테 처음으로 만들어줬던 생일 케이크였네… 서투른 솜씨로 저 장미까지 똑같이 그렸지… 그이가 떠나고 나선 이 케이크를 다시 볼 수 없을 줄 알았어…”

준호는 할머니의 어깨를 조용히 토닥였다. 빵집 안에는 갓 구운 빵 냄새와 할머니의 오래된 슬픔, 그리고 준호의 따뜻한 마음이 뒤섞여 묘한 온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산모퉁이 작은 빵집은 그날도, 빵으로 배를 채우는 곳이 아닌, 마음의 허기를 채우고 아픈 기억을 어루만져 주는 기적 같은 공간이 되어주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날 처음으로, 팥빵 대신 따뜻한 차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천천히 맛보았다. 그리고 준호의 따뜻한 눈길을 마주하며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었다. 바깥 세상은 여전히 쌀쌀했지만, 빵집 안은 봄처럼 포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