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460화

밤하늘이 유리처럼 맑게 빛나는 스튜디오 안, 익숙한 목소리가 전파를 탔다. DJ 별이었다. 그의 눈빛은 마이크 너머 아득히 펼쳐진 별들, 그리고 그 아래 고요히 귀 기울이고 있을 수많은 영혼들을 향하고 있는 듯했다.

별들 아래, 엇갈린 약속

“안녕하세요,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DJ 별입니다. 창밖을 보세요. 오늘은 별들이 마치 밤하늘에 쏟아지는 눈송이 같아요. 이 고요한 밤, 저 별빛처럼 변치 않는 것과, 또 그 아래에서 끊임없이 변해가는 우리의 이야기가 공존하는 시간입니다. 어느덧 마흔여섯 번째 밤, 제460화에 함께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DJ 별의 목소리는 잔잔한 파도처럼 스튜디오를 채웠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한 통의 사연을 꺼내 들었다. 조금 낡은 듯한 봉투, 하지만 조심스럽게 다뤄진 흔적이 역력했다.

“오늘 첫 번째 사연은 ‘세라’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별밤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세라님의 이야기, 함께 나눠볼까요.”

DJ 별은 사연을 읽기 시작했다. 세라의 글씨는 연필로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그 글자들 속에서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DJ 별님, 안녕하세요. 저는 어릴 때부터 별밤지기님의 목소리와 함께 잠들곤 했던 세라입니다. 텔레비전보다는 라디오가 더 익숙했던 시절, 여름밤 평상에 누워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귀에 이어폰을 꽂고 듣던 별밤은 저의 전부였습니다.

그때는 저 혼자가 아니었어요. 늘 제 옆에는 지우가 있었죠. 저희는 단짝이었어요. 서로에게 가장 비밀스러운 이야기까지 털어놓던 사이였죠. 특히 기억나는 밤이 있습니다. 은하수가 선명하게 보이던 어느 여름날, 저희는 평상에 나란히 누워 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때 DJ 별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이 넓은 우주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인연은 잊히지 않는 별자리가 됩니다.’

지우와 저는 그 말에 감동해 서로에게 영원한 별자리가 되자고 약속했어요. 손가락을 걸고, 언젠가 어른이 되어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이 라디오를 들으며 서로를 기억하자고 맹세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각자의 길이 바빠지고, 다른 친구들이 생겼죠. 결국 지우는 유학을 떠났고,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연락하지 못했습니다. 휴대폰 번호도 바뀌었고, 소셜미디어에도 흔적을 찾을 수 없더군요.

그 약속은, 그 별자리는, 저 혼자만의 기억으로 남아버린 걸까요? 최근 우연히 예전에 저희가 함께 듣던 그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가슴 한켠이 찢어지는 듯 아프면서도, 그 시절의 순수하고 반짝이던 감정들이 되살아나 저를 먹먹하게 만들더군요.

지우는 지금 어디서, 어떤 별 아래서 밤을 보내고 있을까요? 혹시, 혹시라도 지우도 지금 이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를 듣고 있다면, 제 목소리가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었던 그 별자리가 여전히 너의 마음에 빛나고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닿지 않을 것 같은 별빛처럼

사연을 다 읽은 DJ 별은 잠시 침묵했다. 스튜디오 안에는 잔잔한 배경 음악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짙은 그리움으로 물들었다.

“세라님의 사연, 잘 들었습니다. 어릴 적의 순수한 약속,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덧없이 사라져버린 인연의 조각들… 참 많은 분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가끔은, 흘러간 시간 속에 두고 온 소중한 얼굴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세라님, 어쩌면 지우님은 지금도 어디선가 당신이 보낸 마음의 별빛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별빛은 수만 년 전에 출발한 빛이 이제야 지구에 도달하는 것처럼, 마음과 마음이 닿는 데에도 때로는 긴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우주 어딘가에는 남아있죠.”

DJ 별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어릴 적 맹세했던 ‘영원한 별자리’는 어쩌면 서로의 삶의 길을 비춰주는 등대가 되었을 겁니다. 비록 지금은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해도, 그 약속의 별자리가 지우님의 마음속에도 여전히 빛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그 별빛이 다시금 서로를 향해 길을 비춰줄지도 모릅니다. 라디오가 그 길의 작은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네요.”

그는 음악을 소개했다. 세라님이 지우와 함께 들었다던 바로 그 노래였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DJ 별은 마이크를 든 채 고개를 들어 스튜디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별들이 그의 머리 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듯했다. 그 별들 중에는 세라와 지우의 약속이 새겨진 별자리도 있을 터였다.

노래가 끝이 나고, DJ 별은 다시금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전과는 다른 미묘한 울림이 있었다.

“세라님의 사연을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분도, 어릴 적 ‘지우’라는 이름의 친구와 별 아래에서 비슷한 약속을 했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꽤 오래전, 다른 사연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인데… 혹시, 하는 마음에 마음이 저려옵니다.”

DJ 별은 잠시 멈췄다. 그의 말은 공중에서 흩어지는 듯했지만, 어딘가로 깊이 스며들고 있었다.

“어쩌면 이 우주만큼이나 넓은 인연의 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길게 이어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세라님,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지우님에게도… 이 밤하늘의 별들이 여러분의 길을 따뜻하게 비춰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다음 주, 제461화에서 다시 만나요.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DJ 별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스르륵 사라졌다. 스튜디오의 불빛은 여전히 밝았지만, 그 공간 안에는 깊은 밤의 정적과 함께, 보이지 않는 별들의 이야기가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DJ 별의 마지막 말이 전파를 타고 얼마나 멀리까지 닿았을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 말은, 지금 이 순간 누군가의 잊힌 약속을 깨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