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골목길의 우산 수리공 – 제1023화

추적추적, 낡은 기와지붕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은 오랜 친구처럼 익숙한 선율을 연주했다. 골목길은 여느 때처럼 축축한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한영감의 우산 수리점은 그 안에서 눅진한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기름때 묻은 작업대 위에는 갖가지 형태의 우산들이 부품처럼 흩어져 있었고, 삐걱이는 라디오에서는 흘러간 세월을 닮은 트로트 가락이 잔잔히 새어 나왔다.

한영감은 돋보기안경 너머로 잔뜩 찌푸린 미간을 한 채, 고장 난 우산살 하나를 조심스럽게 펴고 있었다. 그의 손은 주름졌지만, 움직임은 섬세하고 노련했다. 그의 옆에서는 앳된 얼굴의 제자, 이지호가 고철 더미에서 쓸만한 부품을 골라내며 연신 하품을 했다. 지호는 한영감이 고집스럽게 지키는 이 낡은 골목과 수리점이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비 오는 날이면 왠지 모를 편안함과 그리움에 젖어들곤 했다.

“지호야, 이 참에 저 안쪽 창고라도 좀 정리해라. 먼지가 수북할 게다.”

한영감의 무뚝뚝한 목소리에 지호는 꾸벅 졸던 고개를 퍼뜩 들었다. 창고는 오랫동안 손대지 않아 거미줄과 곰팡이 냄새가 뒤섞인 곳이었다. 투덜거리면서도 지호는 걸레와 빗자루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물건들이 켜켜이 쌓인 창고는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낡은 상자들을 옮기던 지호의 발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걸렸다.

“으악!”

놀란 지호가 움찔하며 물러섰다. 먼지를 털어내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른 우산들과는 확연히 다른, 검고 섬세한 문양이 새겨진 낡은 양산이었다. 보통의 우산처럼 비를 막기 위한 용도라기보다는, 마치 옛 사대부 여인이 해를 가리던 용도로 쓰였을 법한 고풍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닳고 닳은 손잡이에는 희미하게 한글이 음각되어 있었다. ‘유진’.

“스승님! 여기 이런 게 있었네요!”

지호는 신기함에 이끌려 양산을 들고 한영감에게 다가갔다. 한영감은 우산살을 고치다 말고 손을 멈췄다. 그의 시선은 양산의 손잡이에 박혔고, 그 순간 작업실 안의 모든 소리가 정지한 듯 고요해졌다. 한영감의 얼굴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깊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의 늙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지호의 눈에 들어왔다.

“……그건 그냥 넣어 둬라.”

한영감의 목소리는 너무나 낮고 건조해서, 비 내리는 소리에 묻혀 사라질 것 같았다. 지호는 그의 반응에 의아했지만, 스승의 얼굴에 어린 슬픔이 너무나 선명해서 더 캐묻지 못했다. 그러나 호기심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 양산은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한쪽 살이 미묘하게 비틀려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낡은 천에는 미세한 구멍 하나가 보였는데, 다른 부분과는 달리 마치 일부러 메우지 않은 듯 방치되어 있었다.

“이건 수리가 안 된 건가요?”

지호의 질문에 한영감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다시 고치던 우산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의 손놀림은 어딘가 불안정해 보였다. 결국, 지호는 양산을 다시 들고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양산의 손잡이에 새겨진 ‘유진’이라는 이름을 다시금 쓰다듬었다. 이 이름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왜 스승님은 저토록 슬픈 얼굴을 하시는 걸까.

시간은 비처럼 하염없이 흘렀다. 어둠이 내리고, 가게 안에는 조명 불빛만이 아련하게 퍼졌다. 지호는 여전히 그 양산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한영감이 길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그 양산은… 아주 오래전, 내가 처음 이 골목에 수리점을 열었을 때 가져왔던 거야.”

한영감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지호는 귀를 기울였다. 스승의 입에서 직접 듣는 이야기는 언제나 진한 삶의 냄새를 풍겼다.

“유진이는… 이 골목 어귀의 작은 책방에서 일하던 아이였지. 햇살 좋은 날이면 늘 그 양산을 쓰고 왔다 갔다 하곤 했어. 비가 오면 책방 문을 닫고, 이 수리점에 와서 나랑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지. 늘 웃던 아이였어….”

한영감의 시선은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수십 년 전의 그 골목으로 되돌아간 듯 아련했다. “어느 여름, 장마가 유독 심했던 해였어. 그 아이가 가져온 우산은 아니었지. 그 양산은… 그 아이가 아끼던 거였어. 자그마한 구멍 하나가 생겼다고, 세상 끝난 듯 속상해하며 내게 맡겼었지.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꼭 자기가 찾으러 오겠다며….”

한영감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지호는 가만히 스승을 바라봤다. 그는 유진이라는 여인이 한영감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단순한 손님 그 이상이었다는 것을.

“내가 그 구멍을 메우려고 몇 날 며칠을 씨름했는지 모른다. 가장 완벽하게, 그녀의 얼굴에 다시 웃음꽃이 피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었거든. 결국 고치고 말았지. 완벽하게, 아주 작은 흠도 없이… 그렇게 생각했어.”

한영감은 그때의 자신을 비웃듯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날 밤, 골목 전체가 물에 잠겼다. 예고 없는 홍수였지. 나는 수리점을 지키려 발버둥 쳤고, 그 아이는… 결국 내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어. 내가 고친 그 양산을 찾으러 오지 못했어.”

지호는 양산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가 본 구멍이, 그가 본 비틀림이 단순한 결함이 아니었다. 한영감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늙은 손을 바라봤다. “나는 그 양산을 수리했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어. 그래서 그 양산을 다시는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고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어. 네가 말한 그 미세한 구멍 말이다. 마지막 바늘땀 하나를 남겨두고 차마 마무리하지 못했어. 혹시나 그녀가 돌아오면, 그때 직접 마지막 바늘땀을 같이 수놓고 싶었거든. 내 손으로 고쳤지만, 그녀와 함께 완성하고 싶었던… 미련 같은 거였지.”

지호는 양산의 구멍을 다시 한번 유심히 살폈다. 정말이었다. 눈으로는 거의 식별하기 힘든, 아주 작은 틈새가 완벽하게 메워지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그것은 마치 한영감의 마음에 난 아물지 않은 상처 같았다.

“내가… 평생 우산을 고치며 살게 된 이유도 어쩌면… 다시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슬픈 일이 없도록, 사람들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도록 해주기 위함이었을 게다.”

창밖의 빗줄기는 한층 더 굵어져 있었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때리는 소리가 그의 회한 어린 목소리와 섞여들었다. 지호는 조용히 양산을 내려놓았다. 스승의 말에 담긴 깊은 슬픔과 오랜 기다림이 그의 심장을 아릿하게 파고들었다. 그는 스승이 단순히 우산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사람들의 희망을, 약속을, 그리고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사였다. 어쩌면 그 자신부터 치유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영감은 조용히 양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그 작은 구멍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슬픔이 어린 미소가 있었지만, 그 안에는 묘한 결심 같은 것이 엿보였다. 마치 긴 기다림의 끝에서, 이제는 무엇인가를 매듭지어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은 것처럼.

“유진아….”

그의 목소리가 빗소리에 묻혀 희미하게 울렸다. 그때였다. 쾅, 쾅, 쾅! 요란한 노크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가게 문을 두드렸다. 늦은 시각, 이토록 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손님은 이제껏 없었다. 한영감과 지호는 동시에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낡은 가게 문 너머로 알 수 없는 운명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