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골목길의 우산 수리공 – 제476화

낡은 우산의 침묵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골목길, 지훈의 낡은 우산 수리점에는 언제나 빗소리가 가장 큰 손님이었다. 삐걱이는 나무 문을 여닫을 때마다 들어오는 찬 비바람만이 그의 고요한 세계에 작은 파문을 일으킬 뿐이었다. 눅눅한 나무 냄새와 녹슨 쇠 냄새가 섞인 공기 속에서, 지훈은 오늘도 말없이 망가진 우산들을 쓰다듬었다. 닳아 해진 천을 덧대고, 휘어진 살을 곧게 펴고, 부러진 손잡이를 고쳐 붙이는 그의 손은 굳은살 박인 투박한 손이었지만, 어떤 망가진 마음보다도 섬세하게 우산의 고통을 헤아리는 듯했다.

“사장님, 이거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오후 늦게, 한 젊은 여인이 굳게 닫혔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섰다. 젖은 우산을 든 그녀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지훈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맞이했다. 그의 시선은 이내 그녀의 손에 들린 우산으로 향했다. 낡고 빛바랜 남색 우산. 한쪽 살이 완전히 부러져 너덜거렸고, 천도 군데군데 찢겨 있었다. 그저 평범한 낡은 우산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훈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손잡이에 매달린, 색이 바랜 작은 리본 장식. 그리고 우산 천 귀퉁이에 희미하게 새겨진 작은 별 모양 자수. 수십 년 전, 그의 기억 속에 파묻혀 있던 조각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우산은….

“꽤 오래된 우산이네요. 소중한 물건인가 봅니다.”

지훈은 애써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눈길은 우산을 쥔 여인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머니께서 아끼시던 거예요. 제가 어릴 때부터 항상 가지고 다니셨는데… 최근에 많이 안 좋아지셔서… 이제 이 우산을 다시 펴드릴 수 없을까 봐 걱정돼서요.”

할머니. 그 단어에 지훈의 가슴이 더욱 저릿해졌다. 기억 속의 그 소녀는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는 말인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그의 작은 가게 앞에 서서 수줍게 웃던 아이.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찾아와 망가진 곳을 고쳐달라며 수줍게 내밀던 그 소녀, 수아.

수아의 할머니는 늘 그녀를 데리고 지훈의 가게를 찾았다. 처음엔 손녀의 작은 우산을, 그 다음엔 자신의 낡은 우산을. 그때마다 수아는 지훈이 우산을 고치는 동안 말없이 옆에 앉아 그를 관찰하곤 했다. 그의 서투른 고백에 아무 말 없이 환하게 웃어주던 소녀. 그리고 어느 날, 비 오는 골목길에서 사라져버린 그림자.

지훈은 우산을 건네받았다. 그의 손끝에 닿는 낡은 천의 감촉이 수십 년 전의 아련한 온기를 전해주는 듯했다. 찢어진 천 사이로 보이는 부러진 살은 마치 지훈의 마음 한구석이 꺾여버린 상처 같았다. 그는 고개를 숙여 우산을 자세히 살폈다. 그의 눈에는 단순히 고쳐야 할 물건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지냈던 이야기의 첫 페이지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고칠 수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렸다. 여인은 안도한 듯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에서 지훈은 어렴풋이 어린 수아의 모습을 보았다. 시간이 흘러 많은 것이 변했어도, 어떤 미소는 영원히 기억 속에 박제되는 모양이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럼 언제쯤 찾으러 오면 될까요?”

“사흘 뒤쯤 오세요. 최대한 튼튼하게 고쳐 놓겠습니다.”

여인은 몇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하며 가게를 나섰다. 닫힌 문 뒤로 다시 빗소리가 그의 세계를 채웠다. 지훈은 의자에 앉아 우산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낡은 천의 별 자수를 손가락으로 가만히 쓸어보았다. 비에 젖은 골목길 저편에서 그의 시간을 함께 걷던 수아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듯했다. 어쩌면 그는 이 우산 하나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잠들어 있던 과거의 한 조각을 마침내 고쳐내려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산은 침묵했지만, 그 침묵 속에는 수십 년의 비와 그리움이 깃들어 있었다. 지훈은 망치와 실을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결연한 의지와 함께, 아련한 슬픔이 드리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