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총총히 박힌 밤, 주파수 너머로 흘러나오는 익숙한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고 별빛 아래 모인 마음들을 어루만졌다. DJ 별지기는 마이크 앞에 앉아,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게를 손끝으로 느끼는 듯 작게 숨을 내쉬었다. 벌써 501번째 밤이었다.
“별빛 여러분, 안녕하세요. 별지기입니다. 이 밤도 어김없이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참 많은 밤을 함께했죠. 셀 수 없이 많은 별똥별이 떨어지고, 수많은 소원들이 별들에게 닿았을 겁니다. 이 자리에 앉아 매번 느끼는 거지만, 시간이란 참 신비로운 존재 같아요. 한결같은 모습으로 변치 않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우리는 훌쩍 다른 계절을 맞이하고 있으니까요.”
그의 잔잔한 목소리는 밤공기처럼 스며들었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별지기의 눈빛에 아련한 그리움이 깃들어 있었다. 얼마 전 도착한 한 통의 손편지 때문이었다. 오래된 종이 냄새가 봉투를 열기도 전부터 희미한 기억의 파편들을 불러왔다. 편지 속에는 ‘작은 별’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기억했다. 아주 오랜 옛날, 방송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어린 소녀의 필체였다.
별지기는 편지를 다시 펼쳤다. 조심스럽게 읽어 내려갔다.
“별지기 아저씨,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저는 아주 예전에, 매일 밤 라디오에 엽서를 보내던 ‘작은 별’이에요. 그때 제가 아저씨에게 꼭 찾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씀드렸던 거 기억나세요? 잃어버린 목걸이 때문이라고요. 그걸 찾으면 다시 아저씨 라디오에 꼭 연락하겠다고요… 벌써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저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지만, 그 목걸이를… 드디어 찾았어요. 아저씨 목소리 덕분에요. 밤하늘의 길잡이 별처럼, 아저씨의 방송이 저를 이끌어주었어요. 이제 제가 그때 약속했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별지기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잊고 있던 약속, 잊혀졌을 법한 작은 소망이 500회가 넘는 세월을 넘어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는 마이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라디오를 통해 무심코 던져진 말 한마디, 격려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에 이토록 오래도록 남아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작은 별’님… 지금 이 방송을 듣고 계신가요? 정말 고마워요. 이렇게 다시 찾아와 주셔서. 저도 잊고 있던 약속이었는데… 아니, 어쩌면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제 마음 한편에는 늘 반짝이는 작은 별처럼 남아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이제 ‘작은 별’님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어떤 밤하늘 아래, 어떤 길을 헤매다 그 소중한 목걸이를 다시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하고 또 기대가 됩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혹은 잃어버렸던 기억의 조각을 맞춘 듯한 감정이었다. 그는 다음 곡으로 넘어가기 전,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수많은 별이 빛나는 밤, 하나의 작은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별지기는 알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그의 오랜 방송 역사에 또 하나의 찬란한 순간으로 기록될 것임을.
별지기는 다음 주, ‘작은 별’님의 이야기를 자세히 전해드리겠다고 약속하며, 오늘 밤의 마지막 곡을 선곡했다. 그 곡은 오래 전, ‘작은 별’이 가장 좋아한다고 했던, 별을 노래하는 잔잔한 선율이었다. 라디오에서는 그 노래가 흘러나왔고, 수많은 별빛 아래, 각자의 사연을 가진 이들의 밤은 깊어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