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풍잎 사이로 숨겨진 보물 – 제1060화

붉은 산의 정점은 늘 그렇듯 숨 막힐 듯한 장관을 펼쳐 보였다. 그러나 지아의 눈에 비친 풍경은 아름다움 너머의 냉혹한 현실이었다. 온 산을 뒤덮은 단풍은 핏빛으로 울부짖는 듯했고, 그 아래에는 수천 년 묵은 비밀과, 그 비밀을 쫓는 이들의 피 흘리는 발자국이 선명히 박혀 있었다. 바람은 나뭇가지 사이를 휘감으며 쓸쓸한 노랫가락을 읊조렸고, 첫 서리가 내린 밤의 차가운 기운이 아직 흙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제1060화, 이 긴 여정의 어느 깊은 숲 속에서, 지아는 마침내 그들의 목적지에 다다랐음을 직감했다.

옆에서 연신 마른 기침을 터뜨리는 김 교수님을 지아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늙은 학자의 얼굴에는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고서를 탐독한 흔적과, 험한 산길을 오르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지아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함께, 그를 여기까지 이끌고 온 죄책감이 묻어났다.

김 교수님은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괜찮다, 지아 양. 이 정도는 내 평생의 숙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오히려 자네가 걱정일세. 며칠 밤낮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그 그림자 일족의 추격은 여전한가?”

그림자 일족. 그 이름이 나오자 지아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보물을 쫓는 자는 비단 그녀만이 아니었다. 아니, 그들은 보물 그 자체보다는 그 안에 담긴 힘을 원했다. 수백 년간 지아의 가문을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멸문에 이르게 한 장본인들이었다. “어제 밤에도 수상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아마 여기까지 뒤쫓아 왔을 겁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지아는 다시 앞장섰다. 그녀의 발걸음은 힘찼지만, 심장은 불안과 기대감으로 요동쳤다. 그녀의 가슴 속에는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던 전설이 언제나 살아 숨 쉬었다.
“가장 붉은 단풍 아래, 첫 서리가 내린 길목에 숨겨진 진실이 있느니라. 그것은 금은보화가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거나 멸망시킬 수 있는 고대의 지혜이니라.”
수많은 밤을 꿈속에서 헤매고, 수많은 문헌을 뒤지고, 수많은 배신을 겪으며 그녀는 여기까지 왔다. 이제 그 마지막 조각이 이 붉은 산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터였다.

길은 점점 험해졌다. 낙엽이 두껍게 쌓여 발목까지 잠기는 구간을 지나자, 바위투성이의 비탈길이 나타났다. 김 교수님은 지아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몸을 지탱하며 올랐다. 공기는 더욱 차가워지고, 나뭇가지들은 앙상한 손가락처럼 하늘을 할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음산하게 귓가를 맴돌았다.

문득, 지아는 걸음을 멈췄다. 앞서가던 그녀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었다. 김 교수님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자, 이내 숨을 들이켰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물든 숲 한가운데에, 다른 나무들을 압도하는 거대한 단풍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 나무는 마치 불길에 휩싸인 듯, 온 몸을 새빨간 단풍으로 뒤덮고 있었다. 붉다 못해 검붉은 빛을 띠는 그 잎사귀들은 태양 아래 영롱하게 빛나며 신비로운 기운을 내뿜었다. 주변의 다른 단풍나무들도 아름다웠지만, 이 나무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붉음을 자랑했다.

“저… 저 나무야, 지아 양! 저것이 바로 할머니가 말씀하시던 ‘가장 붉은 단풍’일세!” 김 교수님의 목소리가 떨렸다. 수십 년간 고서에 파묻혀 지내던 학자는 실제로 그 전설의 나무를 목도하자 감격에 겨워했다. 그의 눈가에는 뜨거운 물기가 맺혔다.

지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거세졌다. 드디어.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그녀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거대한 단풍나무 아래로 향했다. 그 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은 다른 곳보다 유난히 서늘했다. 발밑에는 붉은 낙엽들이 두껍게 쌓여 부드러운 융단처럼 느껴졌다. 지아는 무릎을 꿇고 낙엽들을 조심스럽게 헤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손끝에 차가운 감촉이 닿았다. 낙엽 아래 숨겨져 있던 것은 고색창연한 석판이었다.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표면이 닳았지만, 여전히 그 위에 새겨진 문자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지아는 김 교수님을 불렀다. 김 교수님은 서둘러 돋보기를 꺼내어 석판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학자 특유의 집중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이것은… 고대 ‘지혜의 서’에 나오는 문자들 아닌가? 내가 알기로는 지금은 거의 해독이 불가능한… 아!” 김 교수님은 놀란 듯 소리쳤다. “단순한 지도가 아니었어! 이것은 열쇠일세, 지아 양! ‘기억의 문’을 여는 열쇠… 혹은 ‘시간의 열쇠’라 불리던 그 존재에 대한 기록이네!”

지아는 숨을 죽였다. 단순한 보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기억의 문’이라니. 그건 또 무슨 의미일까. “그게 무슨 뜻이죠, 교수님? 고대의 지혜가 시간과 기억과 관련이 있다는 건가요?”

김 교수님은 흥분한 목소리로 석판의 한 구절을 더듬더듬 읽어 나갔다. “…가장 붉은 단풍 아래, 첫 서리 깃든 길목에 선 자여, 시간의 강물이 흐르는 곳, 기억의 문이 열리리라. 그 안에서 너는 잃어버린 것을 찾고, 잊혀진 진실을 마주하리니…” 그의 목소리가 절정에 달했을 때, 숲 저편에서 무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아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날카로운 시선이 숲의 어둠을 꿰뚫었다. 낙엽을 밟는 소리,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명의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림자 일족이었다. 그들은 지아의 예측보다 더 가까이, 그리고 더 빨리 추격해온 것이다.

“교수님!” 지아는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김 교수님의 앞을 막아섰다. 한 손은 허리에 찬 낡은 단검의 손잡이로 향했다. 석판 위에 놓인 김 교수님의 손이 떨렸다. 마침내 찾은 듯했던 진실의 실마리가, 또 다시 위협에 직면했다. 붉게 물든 단풍잎들이 바람에 휘날리며, 그들의 운명을 예고하는 듯했다. 다음 순간, 숲의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칼날의 섬광이 지아의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