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어버린 시간 여행자 – 제535화

시간의 장서각, 잊힌 멜로디

운은 손끝으로 낡은 목재 난간을 스치며 무한히 뻗어 나가는 ‘시간의 장서각’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은 모든 시대의 지식과 기억이 돌이 되어 쌓여 있는 곳. 시공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이 불가사의한 공간에서 운은 늘 작은 조각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붙잡고 헤매었다. 공기 중에는 먼지 대신 잊힌 이야기의 잔향이 부유했고, 수십억 년의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어제 밤, 운은 한 고서에서 이상한 표식을 발견했다. 그것은 잊혔다고 생각했던 손목 안쪽의 희미한 문신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그 표식을 따라 며칠 밤낮을 헤맨 끝에, 운은 장서각의 가장 깊고 은밀한 구석, 시간의 흐름마저 왜곡된 듯 보이는 제7서고에 당도했다.

어두운 서고의 심장부에는 고대의 오르골이 유리 상자 안에 봉인되어 있었다. 운은 마치 홀린 듯 그 앞으로 다가갔다. 오르골의 뚜껑은 먼지로 덮여 있었지만, 그 형태는 기이할 정도로 익숙했다.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고, 닳아 해진 태엽을 감았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오르골은 조용히 선율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었다.

귓가에 닿는 순간, 잊혀졌던 모든 감각이 폭발하듯 되살아났다. 따스한 햇살 아래 웃던 얼굴, 갓 구운 빵 냄새, 그리고 누군가의 손을 잡았을 때 느껴지던 심장의 온기….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빛의 조각처럼 운의 정신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단단히 닫혔던 기억의 문이 강제로 열리는 듯한 고통과 황홀경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 안 돼.”

운은 무릎을 꿇었다. 멜로디가 들려줄수록 가슴 깊은 곳에서 격렬한 슬픔이 치밀어 올랐다. 이 멜로디는 사랑을, 그리고 너무나도 깊은 상실을 품고 있었다. 그 상실감이 너무 생생해서,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온몸의 세포가 기억의 통증으로 울부짖었다.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운이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 그 명확한 사실만이 거대한 벽처럼 운의 앞을 가로막았다.

선율은 계속되었다. 잔인하리만치 아름다운 그 음악은 운을 과거의 어떤 순간으로 끌어당겼다. 보이지 않는 손이 운의 눈물을 닦아주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때였다.


서고의 어둠 속에서, 한 그림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길고 검은 코트를 입은 채, 그림자는 운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깊은 후회와 알 수 없는 연민으로 뒤덮여 있었다.

“결국, 여기까지 오셨군요, 운.”

낮고, 굵은 목소리였다. 운은 고통 속에서도 고개를 들었다. 그림자의 눈빛은 멜로디가 품고 있던 슬픔과 똑같은 빛을 띠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시죠? 이 멜로디를… 아시나요?”

운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그림자는 운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오르골의 선율은 이제 거의 끝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이 찾는 모든 질문의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림자는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 답은 당신이 지금까지 겪었던 어떤 고통보다 더 잔인할 것입니다.”

오르골의 마지막 음이 공중에 흩어졌다.

정적 속에서, 운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눈앞의 인물이 바로 그 기억의 중심에 있는 것인가? 이 모든 고통의 시작인가?

그림자는 운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선택할 때입니다, 운. 당신의 과거를 전부 마주할 것인지, 아니면 영원히 이 아름다운 환상 속에 머무를 것인지.”

운은 그의 손과, 방금 얻은 파편화된 기억의 무게 사이에서 망설였다. 기억의 문은 완전히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문틈 사이로 엿보인 진실의 그림자는 너무나도 거대하고 어두웠다.

운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선택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