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한낮은 숨 막히는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매미 소리가 귓가를 찢어발기듯 울어대고, 뜨겁게 달궈진 대지는 아지랑이를 피워 올렸다. 할아버지 댁 뒤뜰, 그 오래된 우물 옆을 가리고 있던 무성한 칡덩굴을 걷어내고 발견한 비밀 통로는, 땀으로 축축한 우리에게 마치 다른 세상으로 가는 입구처럼 느껴졌다. 어두컴컴한 통로 안으로 한 발자국 내딛자, 바깥세상의 찌는 듯한 더위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서늘한 냉기가 피부에 닿았다. 습하고 흙냄새 짙은 공기, 그리고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우리가 지하 깊은 곳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렸다.
“조심하거라, 해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그의 손에 들린 낡은 랜턴 불빛이 좁고 굽이진 통로의 벽을 더듬었다. 오랜 세월 잊혔던 길인 듯, 벽면에는 이끼와 이름 모를 균류들이 끈질기게 매달려 있었다. 발아래는 미끄러운 흙과 돌멩이들이 섞여 있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할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백 구순 아홉 번의 달이 차오르기 전까지 ‘시간의 조각’을 찾아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심장이 쿵쾅거렸다. 지난 몇 달간의 모험이 모두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음을 직감했다.
통로는 점차 넓어지더니, 이내 거대한 동굴 같은 공간으로 이어졌다. 랜턴 불빛이 닿는 곳마다 기묘하게 깎인 암벽과 반짝이는 광물들이 드러났다. 중앙에는 거대한 바위 제단이 솟아 있었는데, 그 위에는 먼지로 뒤덮인 고대 문자들과 함께 빛바랜 그림들이 새겨져 있었다. 할아버지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는 제단 주위를 천천히 돌며 손으로 조각들을 더듬었다.
“여기구나… 마침내.”
할아버지의 목소리에는 해묵은 피로와 함께 형언할 수 없는 희망이 섞여 있었다. 그는 제단 위 가장자리에 새겨진 일곱 개의 홈에 우리가 지난여름부터 찾아 헤맸던 일곱 개의 ‘별 조약돌’을 하나씩 끼워 넣기 시작했다. 첫 번째 조약돌이 홈에 들어가자, 희미하게 푸른빛이 깜빡였다. 두 번째, 세 번째… 조약돌들이 제자리를 찾을 때마다 빛은 점차 강렬해졌고, 제단의 고대 문자들도 함께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비밀의 문, 그리고 수호자
마지막 일곱 번째 조약돌이 홈에 끼워지자, 제단 전체가 눈부신 백색 광채에 휩싸였다. 너무 강렬해서 눈을 감아야 할 정도였다. 잠시 후, 빛이 잦아들자 우리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제단 중앙, 바위 표면에 아무것도 없던 곳에 거대한 문양이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를 압축해 놓은 듯한 아름답고 복잡한 무늬였다. 그리고 그 문양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하자, 동굴의 반대편 거대한 암벽에서 굉음과 함께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찾았구나, 해나. 저 너머에 있을 게다.” 할아버지는 흥분과 동시에 경계하는 눈빛으로 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바위 틈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빛만이 아니었다. 흙먼지와 함께 낡은 나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틈 사이로 어둠이 덩어리져 기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검은 그림자가 점점 커지며 두 개의 붉은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갇혀 있다가 깨어난 고대의 존재 같았다.
“수호자인가…”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피기가 가셨다.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군.”
어둠의 형체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우리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 존재는 명확한 모습이 없었지만, 그 압도적인 기운은 공포 그 자체였다. 몸을 감싼 검은 넝쿨 같은 것이 꿈틀거렸고, 붉은 눈은 우리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뒤로 바싹 붙었다. 손에 땀이 흥건했다.
“할아버지, 저게 뭐예요…?” 내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이곳을 지키는 존재일 게다. 오랫동안 ‘시간의 조각’을 보호하기 위해 잠들어 있었겠지. 우리가 문을 열었으니, 그 잠도 깨어난 게야.”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꽉 쥐었다. 그의 눈빛은 두려움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결의를 담고 있었다.
어둠의 수호자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아니, 손이라기보다는 여러 개의 검은 촉수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뻗어 나오자, 동굴 안의 공기가 무겁게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숨쉬기가 어려웠다.
할아버지의 희생
“해나, 어서 저 문으로 들어가거라! 내가 시간을 벌겠다!” 할아버지가 나를 밀어내며 외쳤다.
“안 돼요, 할아버지! 혼자 두고 갈 수 없어요!” 나는 울먹이며 저항했다. 이 오랫동안 이어져 온 모험을, 할아버지 없이는 상상할 수 없었다.
“서둘러! 이것은 너의 운명이다! ‘시간의 조각’을 찾아야만…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어!” 할아버지는 거의 소리치다시피 말했다. 그의 눈빛은 슬픔과 단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방패 삼아 수호자에게 맞섰다. 낡은 지팡이가 어둠의 촉수와 부딪히자, 섬광과 함께 굉음이 동굴을 뒤흔들었다. 할아버지의 작은 몸이 휘청거렸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내가 반드시 ‘시간의 조각’을 찾아야만 했다.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이를 악물고 새로 열린 문을 향해 달렸다.
문 안쪽은 또 다른 통로였다. 이번에는 마치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푸른빛으로 가득한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벽면에는 수많은 고대 문자들이 흐르는 듯 새겨져 있었고, 그 끝에는 작은 방이 보였다.
방 한가운데에는 얇은 기둥 위에 투명한 수정구 같은 것이 떠 있었다. 수정구 안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푸른빛 조각이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은하수의 일부를 잘라낸 듯, 작지만 무한한 깊이를 담고 있었다.
‘시간의 조각’.
나는 망설임 없이 기둥으로 다가갔다. 조각에 손을 뻗는 순간, 차가운 냉기가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수많은 영상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이 집의 잊힌 역사, 그리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광활한 시간의 흐름… 모든 것이 ‘시간의 조각’ 안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뒤에서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할아버지가 수호자와 맞서 싸우고 있는 소리였다.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시간의 조각’을 쥐었다. 그것은 차갑고 매끄러웠으며, 내 손안에서 더욱 강렬한 푸른빛을 발했다.
조각을 손에 쥐자, 문득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를 되돌리는 도구가 아니었다. 이것은 시간 자체의 파편이었다. 그리고 이 조각이 있어야만 할아버지의… 그리고 우리 가족의 운명에 드리운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시간의 조각’을 품에 안고 할아버지에게 돌아가기 위해 다시 통로로 향했다. 그러나 통로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싸움의 흔적과 함께, 바닥에 쓰러진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수호자는 온데간데없고, 동굴은 다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할아버지!”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 할아버지의 몸은 싸늘했다.
“해나… 찾았구나…”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희미했다. 그의 손이 내 뺨을 어루만졌다. “걱정 마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너만 있다면…”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마지막 빛이 꺼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내 손안의 ‘시간의 조각’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조각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할아버지의 몸을 감쌌다. 나는 무릎 꿇고 앉아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시간의 조각’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할아버지의 손을 통해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과연 이 빛은 할아버지를 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시간의 조각’이 가진 진정한 힘은 무엇일까? 여름 방학의 한복판에서, 할아버지의 희생과 함께 나는 거대한 시간의 미로 속으로 던져졌다. 모든 것을 되돌릴 힘을 쥐고서… 이 모험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