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진관에서 생긴 일 – 제560화

어둠 속 피어난 그림자

오래된 사진관의 깊숙한 곳, 붉은 암실등만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약품 냄새는 익숙한 비릿함과 달콤함이 섞여 코끝을 간지럽혔다. 선우는 현상액이 담긴 트레이를 응시하며 숨을 죽였다. 며칠 전, 낡은 카메라를 들고 온 손님이 맡기고 간 필름이었다. 흑백 필름 특유의 거친 질감과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는 사진들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선우는 언제나 조심스러운 설렘으로 그들의 세상 속으로 들어섰다.

현상액 속에서 서서히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흐릿했던 윤곽이 또렷해지고, 그림자가 깊어졌다. 처음 몇 장은 평범한 풍경이나 오래된 골목길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다섯 번째 사진에서 선우의 손이 멈칫했다. 심장이 쿵, 하고 불규칙하게 내려앉았다.

사진 속에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대략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작은 아이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흐린 흑백 사진 속에서도 그 미소는 햇살처럼 눈부셨다. 아이는 한 손에 무언가를 소중히 쥐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투박하지만 정교하게 깎아 만든 나무 새였다. 길고 가는 부리와 날개깃 하나하나가 정성스레 새겨진, 어디서 본 듯한 모습이었다.

선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잊고 지냈던 오래된 기억의 조각들이 마치 현상액 속의 이미지처럼 서서히 떠올랐다. 아버지. 어릴 적 아버지가 깎아주셨던 나무 새. 꼭 저런 모습이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며 자랑스럽게 내보이던, 낡은 나무 새. 선우의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했던 그 새는 너무나도 오래전에 사라진 줄로만 알았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었다. 사진 속 아이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눈매, 콧날, 그리고 무엇보다 맑게 웃는 입꼬리가 낯설지 않았다. 아니, 너무나 익숙했다. 마치 거울 속 자신의 아주 어릴 적 모습, 혹은 오래전 잃어버린 가족의 얼굴을 마주한 것만 같았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이건 우연일까? 아니,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선명한 연결고리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선우는 사진을 조심스럽게 꺼내 정착액에 담갔다. 아이의 해맑은 웃음이 그대로 고정되는 순간, 선우의 세상은 송두리째 흔들리는 듯했다. 필름을 맡긴 손님은 그저 “아버지가 젊은 시절 쓰시던 카메라에서 나온 필름인데, 혹시나 해서 현상해달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사진 한 장이 잊고 살았던, 혹은 알지도 못했던 거대한 비밀의 문을 열어젖힌 것만 같았다.

창밖은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암실 밖의 세상은 고요했지만, 선우의 마음속은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 아이는 누구일까? 왜 이 사진이 지금, 이 사진관에서, 자신에게 나타난 것일까? 메마른 눈가에 뜨거운 기운이 차올랐다.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켜켜이 쌓인 시간의 먼지를 걷어내고, 저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슬픔과 희망의 실타래를 다시 풀어내기 시작했다. 선우는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조심스럽게 말렸다. 그 위에 맺힌 물방울이 마치 오랜만에 흘리는 눈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