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어버린 시간 여행자 – 제574화

오래된 온실의 공기는 습기와 흙냄새, 그리고 이름 모를 풀들의 희미한 향기로 가득했다. 햇빛은 먼지 낀 유리창을 통해 부서져 들어와, 이끼 낀 돌벽과 잊힌 식물들의 잎사귀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세라는 한쪽 구석에서 고대의 문양을 해독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고, 이안은 거대한 고목처럼 침묵 속에 서서 온실을 배회했다. 그의 눈길은 언제나 새로운 단서를 찾고 있었다. 잃어버린 과거의 파편, 혹은 단 한 조각의 기억이라도.

그의 시선이 낡은 선반 위, 비정상적으로 빛나는 잎사귀를 가진 식물에 닿았다. 은회색을 띠는 줄기에서 뻗어 나온 잎들은 마치 수천 개의 작은 거울 조각을 이어 붙인 듯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이안은 홀린 듯 그 식물에게 다가갔다. 손가락이 잎사귀의 섬세한 표면에 닿는 순간, 미미한 진동이 그의 손끝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마치 잠든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것처럼.

동시에, 귓가에 낡은 태엽 인형이 내는 듯한 희미한 멜로디가 울렸다. 너무나 작고 아련해서, 환청인지 실제 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소리는 이안의 내면을 강하게 두드렸다.

순간, 온실의 풍경이 일그러지며 낯선 이미지들이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어둠.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빛나는 수많은 별들.

창밖이 아닌, 어떤 거대한 구체 안에서 바라본 우주였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과 따스한 온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손.

그 손이 자신의 손을 감싸 쥐며 속삭이던 목소리.

너무나 멀고 흐릿해서 정확한 단어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애틋함과 간절함만은 선명했다.

그리고 거대한 장치가 윙- 하는 소리를 내며 회전하고 있었다.

어지러울 정도의 속도로.

“…기억해…”

한 단어가 뇌리에 박혔다. 분명히 누군가 자신에게 말한 것이었다.

이안은 비틀거렸다. 마치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것처럼 어지러웠고,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잃어버린 퍼즐 조각이 갑자기 나타나 심장을 찢는 듯한 고통을 주었다.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이안! 괜찮아?”

세라가 깜짝 놀라 달려왔다. 그녀는 이안의 옆에 쪼그려 앉아 그의 떨리는 어깨를 잡았다. 이안의 얼굴은 창백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의 눈은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또 기억이…?” 세라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함께, 익숙한 비극을 마주하는 듯한 체념이 섞여 있었다.

이안은 한참을 헐떡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막연한 슬픔과,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상실감이 그를 짓눌렀다. 온몸의 세포들이 동시에 울부짖는 것 같았다.

“별… 수많은 별들… 그리고 손길… 누군가 내게… ‘기억해’라고 말했어…”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겨우 몇 단어를 토해냈지만, 그가 느낀 고통과 혼란을 다 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아픔… 너무 아파, 세라.”

세라는 이안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는 그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별들의 잔상과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얽혀 있었다.

“그 식물 때문인가 봐.” 세라가 아까 이안이 만졌던 은빛 잎사귀의 식물을 가리켰다. “이 온실은 평범한 곳이 아니야. 고대의 시간 조작자들이 자신들의 연구를 숨기기 위해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어. 어쩌면 이 식물 자체가… 기억을 저장하고 있거나, 과거의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을지도 몰라.”

이안은 떨리는 눈빛으로 그 식물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식물 뒤에,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과 우주를 가로지르는 여정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방금 겪은 기억의 파편은 그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었지만, 동시에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분명, 그 별들 속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기억하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있었다.

그는 아픔 속에서도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는 단순히 기억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약속을 지켜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약속의 무게는, 그의 모든 고통을 압도할 만큼 거대하게 다가왔다.

“세라,” 이안의 목소리에는 전과 다른 결의가 담겨 있었다. “우리는 여기에 더 머물러야겠어. 이 식물… 이 온실이 모든 것을 말해줄지도 몰라.”

고대 온실의 먼지 낀 공기는 여전히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지만, 이안의 눈빛 속에는 꺼지지 않는 별빛이 다시금 타오르고 있었다. 과거의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서, 잃어버린 시간 여행자는 이제 막 새로운 여정의 시작점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