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어버린 시간 여행자 – 제581화

차가운 공기가 폐허가 된 도시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리안은 낡은 돌기둥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끝없이 펼쳐진 회색빛 잔해와 먼지 구름뿐이었다. ‘시간의 폐허’라고 불리는 이곳은 모든 것이 멈춘 채 과거의 비명을 삼킨 듯했다. 리안의 심장은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요동쳤다. 마치 이곳이 자신의 잊힌 조각들을 숨기고 있는 거대한 무덤 같았다.

“여기서 뭘 찾을 수 있을까, 리안?” 세르쥬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는 망가진 구조물들 사이를 꼼꼼히 살피며 전방 탐색 장치를 조작하고 있었다. 세르쥬는 리안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켜온 오랜 동반자였다. 리안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수많은 시간을 헤매는 동안, 그는 유일한 빛이자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의 실용적인 질문조차 리안에게 닿지 않는 듯했다.

“모르겠어… 하지만 느껴져, 세르쥬.” 리안은 손을 뻗어 차갑게 식은 돌벽을 쓸었다. 미세한 떨림이 손끝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이 폐허의 심장부에 무엇인가가, 리안의 과거와 얽힌 깊은 진실이 잠들어 있음을 직감했다. 리안의 꿈속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던 잿빛 하늘과 무너진 건축물들의 형상이 이곳과 놀랍도록 일치했다.

두 사람은 침묵 속에 폐허의 중심을 향해 나아갔다. 발아래 부서진 파편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길을 안내했다. 마침내 그들은 거대한 지하 통로 입구에 다다랐다. 억겁의 시간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듯한 자연 동굴 같기도 했고, 어떤 문명의 기술로 정교하게 깎인 통로 같기도 했다.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리안은 그 문양들을 보자마자 머릿속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신음했다. 익숙한, 그러나 잊힌 기호들.

“리안? 괜찮아?” 세르쥬가 황급히 다가왔다. 리안은 식은땀을 흘리며 벽에 새겨진 문양 중 하나에 손을 얹었다. 손끝에서부터 뜨거운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빛이 꺼진 기계가 다시 작동하는 것처럼, 리안의 뇌리에 강렬한 파편이 스쳐 지나갔다.

— 쾅! —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 눈을 멀게 할 만큼 강렬한 섬광.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과 혼란 속에서, 한 여인이 리안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녀의 눈은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리안… 어떻게…!” 그녀의 입술이 간신히 움직이는 순간, 모든 것이 순식간에 암전되었다. 그리고 다시, 귓가에 울려 퍼지는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끔찍한 소리.

리안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생생한 기억이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악몽의 재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분명한 이미지, 생생한 감각, 그리고… 가슴을 짓누르는 참을 수 없는 죄책감.

“리안, 정신 차려! 대체 뭘 본 거야?” 세르쥬가 리안을 흔들며 물었다. 리안은 겨우 흐릿한 눈을 떴다. 숨이 가빴다. 폐허의 먼지 섞인 공기가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다. 뇌리를 스치는 그 여인의 얼굴. 그 슬픔과 원망이 담긴 눈동자. 그리고 그날의 굉음. 무엇인가가 폭발했고, 그 속에서 리안은… 무엇을 했던가?

“내가… 내가 뭘 한 거지?” 리안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내가… 그녀를… 내가 망가뜨렸어… 모든 것을…”

세르쥬는 당황한 얼굴로 리안을 지탱했다. 리안의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단순히 슬픔이 아니었다. 거대한 후회, 설명할 수 없는 죄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기억의 파편은 조각난 퍼즐처럼 불완전했지만, 그 파편이 드러내는 진실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잔혹했다.

“내가 뭘 잃어버렸는지 알아야 해… 그래야만 해…” 리안은 힘겹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이름은… 이름은…”

새로운 기억은 실낱같은 희망 대신, 잊고 싶었던 재앙의 서막을 알리고 있었다. 리안의 잃어버린 과거는 구원이 아닌, 또 다른 절망의 심연으로 이끄는 길이었을까? 차가운 폐허 속에서, 리안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명은, 이제 막 시작된 진실의 서곡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