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리는 시계 – 제366화

세상의 모든 시간을 한 움큼 쥐고 뒤틀어버린 듯, 지훈의 손목에 채워진 낡은 시계는 희미한 진동을 멈추지 않았다. 차가운 금속과 깨어진 유리 사이로 새어 나오는 시간의 파편들이 그의 손목을 감싸고, 피부를 긁어내는 듯한 아릿한 통증은 이제 익숙한 감각이었다. 366번의 회귀.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많은 횟수였을지도 모른다. 정확한 횟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아직도 그가 여기에, 이 무한한 절망의 고리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이번 회귀의 시작은 한 주 전이었다. 지훈은 늘 그랬듯이 숨겨진 시간의 문을 열고 돌아왔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이전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달랐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다르고, 길가에 피어난 꽃의 색이 다르며, 서연의 웃음소리에는 아주 미세한 떨림이 더해져 있었다. 그는 이 모든 변화들을 본능적으로 읽어냈다. 마치 수백 번의 바둑을 두어 모든 수를 꿰뚫는 노련한 기사처럼, 지훈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필연적인 파국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늘 하나였다. 서연을 지키는 것. 그녀가 저물어가는 황혼처럼 스러져가던 그날의 비극을 막는 것. 그는 수없이 많은 ‘그날’을 맞이했고, 수없이 많은 방식으로 ‘그날’을 바꾸려 했다. 어떤 회귀에서는 그녀를 그 장소에 가지 못하게 붙잡아두었고, 어떤 회귀에서는 그 장소 자체를 사라지게 만들려 했으며, 또 어떤 회귀에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그녀를 구원하려 했다.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교묘하게 그의 손아귀를 빠져나갔고, 서연은 매번 다른 형태로, 그러나 결국 같은 운명에 갇히곤 했다. 완벽한 구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에 그가 맞이할 ‘그날’은 폐쇄된 ‘별의 잔해’ 천문대 붕괴 사고였다. 지난 수많은 회귀 중에서도 유독 끔찍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고였다. 그는 이미 그 사고의 모든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돌려보았다. 사고의 원인, 붕괴 경로, 인명 피해 규모, 그리고 서연이 그 안에 갇히게 되는 모든 시나리오. 이번 회귀에서 지훈은 더 이상 완벽한 회피를 시도하지 않기로 했다. 완벽한 회피는 늘 더 큰 비극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의 새로운 전략은 ‘피해 최소화’였다. 사고는 막을 수 없다면,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 서연을 그 잔해 속에서 꺼낼 수 있도록 작은 틈을 만드는 것. 그는 시계를 이용해 과거의 특정 지점으로 돌아가,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미세한 변화를 만들었다. 천문대의 노후된 철골 구조물에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작은 균열을 만드는 것, 비상구 표지판의 방향을 아주 살짝 비틀어 놓는 것, 심지어는 천문대 관리인이 마실 커피에 설탕을 한 스푼 더 넣어 그가 잠시 화장실에 들르게 만드는 것까지. 이 모든 행동들은 다른 이들에게는 우연으로 보일 사소한 일들이었지만, 지훈에게는 수많은 시간선 끝에서 찾아낸 필사적인 퍼즐 조각들이었다.

시간의 소리

지훈은 매일 밤,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그 소리는 마치 그의 심장 박동과 같았다. 하지만 이제 그 소리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일정한 박자로 흐르던 시간의 울림이, 이제는 가끔씩 불규칙하게 삐걱거렸다. 어둠 속에서 시계의 깨어진 유리를 매만지면, 손끝에 느껴지는 냉기가 점점 더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시계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그는 직감하고 있었다.

지난 회귀에서 시계는 두 번이나 먹통이 되어 그를 곤경에 빠뜨렸다. 한 번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멈춰버려 그가 서연의 손을 잡지 못하게 했고, 또 한 번은 시도 때도 없이 과거로 돌아가 그를 시간의 미아로 만들 뻔했다. 이제는 시계를 사용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야 했다. 시계가 완전히 망가지면, 그는 더 이상 서연을 구할 기회를 얻지 못할 터였다. 아니, 어쩌면 시계는 이미 과거로의 마지막 길을 열어주며 자신의 모든 힘을 소진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번 회귀에서 서연은 여전히 해맑았다. 그녀는 천문대에서 열리는 시민들을 위한 별자리 강연을 준비하며 밤늦도록 자료를 찾아보곤 했다. 지훈은 그녀의 옆에서 말없이 그녀가 마실 차를 준비해주고, 그녀가 미처 보지 못한 오타를 고쳐주었다. 그녀는 지훈에게 고마워하며 환하게 웃었지만, 지훈은 그 웃음 속에서 다가올 그림자를 보았다. 그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녀의 순수한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 그는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녀의 웃음이 그의 존재 이유였다.

“지훈아, 요즘 너 좀 이상해. 뭔가 불안해 보여.”

어느 날 밤, 강연 준비를 마치고 돌아온 서연이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눈은 언제나처럼 맑았지만, 그 맑은 눈빛 속에 걱정이 서려 있었다. 지훈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가 아무리 완벽하게 위장하려 해도, 그녀는 언제나 그의 감정을 예리하게 알아챘다. 수많은 시간을 함께해 온 그녀는 이미 그의 영혼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야, 괜찮아. 그냥 요즘 잠을 잘 못 자서.”

그는 애써 미소 지으며 대답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를 속이는 것은 그에게 가장 큰 고통이었다. 하지만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의 존재를, 자신이 수백 번이나 그녀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그녀에게 말할 수 있을까. 그녀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를 미친 사람으로 볼지도 모른다.

“걱정 마. 내가 옆에 있을게. 네가 힘들면 언제든 나한테 기대도 돼.”

서연은 그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손길이 그의 차가운 심장에 작은 불꽃을 지폈다. 지훈은 그 순간,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미소와 따뜻한 손길이 그를 이 시간의 지옥 속에서 버티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날의 아침

드디어 ‘그날’의 아침이 밝았다. 잿빛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간간이 가을비가 떨어지는 음산한 날씨였다. 지훈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났다. 사고가 날 천문대의 모든 비상 통로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 두었고, 서연이 앉을 자리에 작은 돌멩이를 놓아 그녀가 옆자리로 옮겨 앉도록 유도했다. 심지어 강연 시작 직전, 천문대 방송 시스템에 미세한 오류를 발생시켜 서연이 발표 자료를 수정하기 위해 잠시 대기실로 돌아가게 만들 계획까지 세웠다.

그는 천문대 정문 앞에서 서연을 기다렸다. 그녀는 평소보다 더 아름다웠다. 하늘색 스카프를 두르고, 설렘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지훈의 얼굴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지훈아! 일찍 와줬네. 오늘 강연 정말 잘해야 할 텐데.”

“잘할 거야. 늘 그랬잖아.”

지훈은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그의 심장은 북처럼 울렸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천문대 안으로 들어섰다.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비상구 표지판의 방향이 자신이 돌려놓은 대로 미세하게 틀어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강연장 입구에 놓인 화분 하나가 자신이 옮겨 놓은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작은 돌멩이는 서연의 의자 옆 바닥에 놓여 있었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 돌멩이를 피하기 위해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강연이 시작되었다. 서연의 목소리는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별들을 설명하며 강연장을 가득 채웠다. 사람들은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지훈은 강연장 뒤편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곧 다가올 붕괴의 순간, 그녀가 살아남기 위한 모든 조건은 완벽하게 갖춰졌다. 그는 확신했다. 이번만큼은, 이번만큼은 그녀를 지킬 수 있을 거라고.

강연이 절정에 달했을 때, 지훈은 시계를 조용히 눌렀다. 희미한 푸른빛이 시계에서 새어 나오며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것은 그가 설계한 마지막 트리거였다. 방송 시스템에 과부하를 주어 서연이 잠시 자리를 비우게 만들 예정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시계는 평소보다 훨씬 강하게 진동했다. 마치 마지막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시계의 진동이 너무나도 강렬했던 탓일까. 강연장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인가? 아니, 아니다. 건물 자체가 삐걱거리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지훈은 당황했다. 이건 그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건물 붕괴는 강연이 끝난 후에야 시작될 터였다. 자신이 시계를 너무 강하게 눌렀나? 아니면… 자신의 미세한 시간 조작들이 의도치 않은 나비효과를 불러온 것인가?

“모두들 진정하시고… 읍!”

서연이 사람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천문대 천장에서 거대한 균열이 생기며 콘크리트 조각들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지훈의 눈에, 콘크리트 파편이 떨어지는 궤적이 보였다. 정확히 서연이 서 있는 단상 위였다. 그는 망설일 틈도 없이 단상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녀를 밀쳐내고,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 수많은 회귀에서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마지막 방법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그녀의 이름을 외치려 했지만, 그의 입술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오직 시계의 거친 울림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시계는 마치 울부짖는 것 같았다. 마지막 남은 모든 힘을 끌어모아, 과거로, 현재로, 미래로, 모든 시간의 흐름을 뒤섞는 것 같았다. 그의 발이 단상에 닿는 순간,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천장을 뚫고 떨어져 내렸다. 세상은 한순간에 정지했고,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지훈의 눈에는 오직 공포에 질린 서연의 얼굴만이 가득했다.

시간의 끝에서

지훈은 엄청난 충격과 함께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몸 위로 차가운 콘크리트 조각들과 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에서는 굉음이 울렸다. 하지만 그의 의식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손목을 더듬었다. 낡은 시계는… 시계는 어디에?

그의 손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계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도 붕괴의 충격으로 산산조각 났거나, 아니면… 아니면 마지막 회귀를 시도하다가 사라져 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더 이상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는 실패했다. 서연을 지키지 못했다. 모든 것이 끝났다.

온몸의 감각이 서서히 멀어져 가는 와중에도, 지훈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눈을 떴다. 뿌연 먼지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실루엣. 서연이었다. 그녀는 무사했다. 지훈이 그녀를 밀쳐낸 것일까? 아니면 그가 몸을 던진 순간, 그녀는 이미 그의 계획대로 대기실로 향하고 있었던 것일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 있었다. 먼지투성이의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그를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지훈아! 지훈아!”

그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지훈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 애썼지만, 목구멍에서는 찢어지는 듯한 고통만이 터져 나왔다. 그의 눈에 그녀의 얼굴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의 눈물과 그녀의 눈물이 뒤섞여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의 눈 속에서 자신을 보았다. 수백 번의 회귀를 거치며 지쳐버린, 찢겨지고 헤어진 자신의 영혼을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어쩌면,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그녀를 구원하는 방법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간은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한 것이었고, 그가 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려 할수록, 그는 더욱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그녀의 시간까지도 바꾸려 하는 오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그녀의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녀의 곁을 지키는 것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마지막 숨을 내쉬며, 그녀의 손을 잡으려 애썼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손끝에 닿으려는 찰나, 그의 시야는 완전히 어둠으로 물들었다. 더 이상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영원한 침묵 속으로, 지훈은 마침내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그의 손끝에 닿았던 서연의 손은, 그의 손목에 채워져 있던 시계가 사라진 자리에, 차가운 금속 조각 하나를 쥐고 있었다. 깨어진 유리와 멈춰버린 시침과 분침. 그것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온 그의 모든 고통을 응축해 놓은 작은 기념비 같았다. 서연은 그 파편을 꼭 쥐었다. 그 파편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엉망진창이 된 잔해 속에서 지훈의 이름을 끊임없이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