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가족 여행기 – 제371화

깊어가는 가을, 산등성이는 초록빛 잔해 위로 붉고 노란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했다. 엄마 혜진은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보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봐, 얘들아! 저 단풍 좀 봐! 정말 그림 같지 않니?”

뒷좌석에서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열여덟 살 서연은 에어팟을 낀 채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단풍을 꿰뚫고 저 먼 미지의 지평선을 향하는 듯했다. 열네 살 지훈은 스마트폰 화면에 코를 박고 있었다. 게임 속 몬스터의 괴성과 칼날 부딪히는 소리가 무선 이어폰 틈새로 미세하게 새어 나왔다.

“어이, 우리 여행 왔는데 그렇게 폰만 볼 거야?” 아빠 준혁이 운전대 위로 가볍게 손가락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항상 유쾌함이 깃들어 있었지만, 오늘따라 미묘한 피로감이 묻어나는 듯했다. 혜진은 그들의 무관심에 애써 미소 지으려 했지만, 입꼬리는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다. 그녀는 이 글램핑 여행이 지난 몇 달간 계속된 가족의 미묘한 불협화음을 해소해줄 마법 같은 해결책이 될 거라 굳게 믿었다.

도착한 글램핑장은 혜진의 기대 이상이었다. 통유리로 된 깔끔한 캐빈, 포근해 보이는 침대,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진 그림 같은 산자락. “와, 여기 정말 좋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예약한 줄 아니?” 혜진이 설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서연은 덤덤하게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엄마, 그냥 캠핑장인데요, 뭐.” 지훈은 전원 콘센트부터 찾았다. “충전해야 하는데.”

혜진의 가슴 속 어딘가에서 쨍하고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완벽한 계획, 완벽한 장소, 하지만 가족들은 그녀의 그림 속 조각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곳을 보고, 다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준혁이 혜진의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 혜진아. 원래 애들은 다 그래. 조금 있으면 신나할 거야.” 그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혜진은 작은 바늘에 콕콕 찔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오후가 되자 하늘은 잿빛으로 변하더니 이내 굵은 빗방울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져 창문을 세차게 때렸다. “이런, 일기예보에는 없었는데!” 혜진이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바깥에서 바비큐를 해 먹을 계획이었다. 완벽하게 준비해온 고기와 채소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갑자기, 캐빈 안의 모든 불빛이 꺼졌다. 와르르, 칠흑 같은 어둠이 그들을 덮쳤다. 지훈의 스마트폰 화면에서만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뭐야, 정전이야?” 서연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늘 침착하던 준혁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비 때문에 그런가 보네.”

혜진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완벽해야 할 여행이 엉망진창이 되고 있었다. 그녀는 침대 옆 협탁 위에서 겨우 스마트폰을 찾아 플래시를 켰다. 흔들리는 빛 속에서 가족들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모두 조금은 당황하고, 조금은 허탈해 보였다.

“어떡해, 저녁은?” 혜진의 목소리에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그때, 지훈이 입을 열었다. “아빠, 우리 차에 랜턴 있지 않았어? 저번에 낚시 갈 때 챙긴 거.” 의외의 말에 혜진과 서연의 시선이 지훈에게로 향했다. 준혁은 잠시 생각하더니 손뼉을 쳤다. “오! 지훈이 똑똑한데? 그래, 트렁크에 넣어뒀지!”

준혁과 지훈이 랜턴을 찾아 빗속으로 나섰다. 혜진은 불안한 마음에 문가에 서서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서연이 그녀 옆으로 다가왔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 아빠랑 지훈이 괜찮을 거야.” 뜻밖의 위로였다. 혜진은 서연의 손을 잡았다. 서연의 손은 차가웠지만, 그 온기는 혜진의 마음을 조금 녹이는 듯했다.

잠시 후, 환한 불빛을 든 준혁과 지훈이 돌아왔다. 캐빈 안은 랜턴 불빛 아래서 아늑하고 새로운 분위기를 띠었다. “와, 랜턴 엄청 밝다!” 서연이 신기한 듯 랜턴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지훈은 어쩐지 뿌듯한 표정이었다.

혜진은 미리 싸온 간편식품들을 꺼냈다. “바비큐는 못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어둠 속에서 데워진 즉석밥과 반찬들은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 스마트폰도, TV도 없는 공간에서 가족들은 오직 서로에게만 집중했다. 준혁은 어릴 적 캠핑 가서 겪었던 황당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훈은 게임 속 영웅담을 현실에 대입해 재밌게 풀어냈고, 서연은 마지못해 웃으면서도 몇 마디 거들었다. 혜진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작은 랜턴 불빛 아래에서 빛나는 가족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정전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창문을 두드렸다. 밤이 깊어지자, 혜진은 따뜻한 차를 내왔다. “이렇게 어두워지니까, 꼭 예전 우리 할머니 댁 같네.” 혜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때는 TV도 없고, 라디오도 잘 안 터져서 그냥 서로 이야기하며 밤을 보냈거든.”

서연이 조용히 차를 마시다가 입을 열었다. “엄마, 저… 사실 요즘 좀 무서워요.” 갑작스러운 고백에 가족들의 시선이 서연에게로 쏠렸다. 서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어갔다. “수능도 끝났고, 이제 대학 가서 혼자 살 생각하니까… 모든 게 다 새롭고, 기대도 되는데… 한편으로는, 제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어서요.”

혜진은 서연의 손을 조용히 잡았다. 준혁은 물끄러미 서연을 바라봤다. 늘 당당하고 자기주장이 강했던 첫째 딸이었다. 그런 서연에게도 이런 여리고 불안한 마음이 숨어있을 줄이야. “괜찮아, 서연아. 엄마도 아빠도 그랬어. 모든 시작은 두려운 법이지. 하지만 너는 충분히 잘 해낼 거야.” 혜진의 목소리에는 단단한 믿음이 실려 있었다.

지훈이 평소답지 않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 걱정하지 마. 심심하면 내가 게임 같이 해줄게. 온라인으로 놀러 가도 되고.” 어설프지만 진심 어린 위로였다. 서연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고맙다, 이 게임 중독자야.”

그날 밤, 가족들은 잠들기 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의 어릴 적 꿈, 가장 좋아하는 음식, 서로에게 서운했던 일, 그리고 앞으로의 작은 소망들. 랜턴 불빛 아래서, 그들의 마음은 평소보다 더 깊이 연결되는 듯했다. 어둠이 걷히자 드러나는 것은, 비로소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비는 기적처럼 그쳤다. 정전도 복구되어 캐빈 안은 환한 빛으로 가득했다. 창밖으로는 밤새 씻겨내린 숲이 더욱 선명하고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촉촉한 나뭇잎 사이로 아침 햇살이 부서져 내렸다. 혜진은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왔다. 어젯밤 지훈이 잠들기 전 혜진의 머리맡에 조용히 놔둔, 숲에서 주워온 작은 도토리 두 개가 보였다. 그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가족들은 따뜻한 햇살 아래서 아침 식사를 했다. 혜진은 어제와는 다른, 편안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완벽한 여행은 아니었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어려움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바로 서로를 향한 이해와 사랑이었다. 시끌벅적한 가족 여행은, 어쩌면 완벽함보다는 함께 겪는 작은 소동 속에서 더 단단해지는 법인 모양이었다.

서연이 차창 밖으로 보이는 맑게 갠 하늘을 보며 말했다. “엄마, 아빠. 우리 다음번엔 진짜 캠핑 가서 텐트 치고 자 봐요. 더 재밌을 것 같아.”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그때는 제가 랜턴이랑 파워뱅크 다 챙겨갈게요!”

혜진은 활짝 웃으며 준혁의 손을 잡았다. “그래, 다음 여행은 더 시끌벅적하고, 더 예측 불가능한 여행이 될 것 같네. 그래도 괜찮아.” 그녀의 눈빛은 비 온 뒤 맑게 갠 가을 하늘처럼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들과 마주하며, 그들은 또 한 뼘씩 자라날 것이다. 이 시끌벅적하고 사랑스러운 가족의 이야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