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1183화

오래된 사진 속의 메아리

이형우는 낡은 가죽 서류 가방을 끌어안고 덜컹거리는 버스 창밖을 멍하니 응시했다. 창문 너머로는 끝없이 펼쳐진 회색빛 해안선과 그 위를 덮은 짙은 안개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동해의 어느 외딴 항구 도시로 향하는 길. 수백 번도 넘게 밟아왔던 길이지만, 매번 그 끝에는 희미한 희망과 함께 쓰디쓴 절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단서는 30년 전 이 도시의 한 보육원에서 찍힌 빛바랜 단체 사진 한 장이었다. 사진 속 수십 명의 아이들 사이, 맨 뒷줄 가장자리에 작게 찍힌 옆모습. 흐릿한 윤곽 속에서도 형우는 그녀의 흔적을 놓치지 않았다. 그 시절의 수현과 너무나 닮은, 익숙한 턱선과 맑은 눈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듯한 충격이었다.

버스는 이내 종점에 다다랐고, 형우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낡은 방파제 위로는 갈매기 떼가 울부짖으며 날아다녔다. 목적지인 ‘늘푸른 보육원’은 폐원한 지 오래였다. 대신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바닷가 마을의 쇠락을 보여주듯 굳게 잠긴 철문과 그 너머로 엉성하게 서 있는 빈 건물뿐이었다.

허탈함이 밀려왔지만, 형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보육원 설립자의 조카가 아직 이 마을에 살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는 낡은 지도를 들고 좁은 골목길을 헤매다, 마침내 녹슨 대문 앞에 멈춰 섰다. 초인종을 누르자, 오래 기다렸다는 듯 마른 기침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시간이 잠든 방

“누구세요?”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돋보기 너머로 형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김순임 여사, 보육원의 마지막 원장이었다. 형우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잃어버린 사람을 찾기 위해 여기까지 왔음을 설명했다. 할머니의 눈빛에는 의심과 경계심이 스쳤지만, 이내 형우의 간절한 표정에서 진심을 읽었는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와요. 뭘 찾으러 여기까지 왔는지 들어나 봅시다.”

할머니는 형우를 낡은 거실로 안내했다. 방 안은 시간이 멈춘 듯 오래된 가구들과 빛바랜 액자들로 가득했다. 벽 한쪽에는 보육원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담긴 단체 사진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형우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그 사진들 위를 훑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주머니에서 접힌 사진 한 장을 꺼내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혹시 이 아이를 기억하시는지요. 30년 전, 늘푸른 보육원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아이입니다.”

할머니는 돋보기를 고쳐 쓰고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희미한 사진 속 옆모습을 한참을 응시하던 그녀의 눈빛에 미세한 떨림이 스쳤다.

“아… 이 아이…”

순임 여사의 목소리는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갈라져 있었다. 형우는 숨죽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 아이는… ‘새별이’라고 불렸어요. 본명은 김수현이 아니었지. 고아원에 처음 왔을 때, 이름도 가족도 기억하지 못했어요. 그저 ‘별이 보고 싶다’는 말만 반복해서, 우리가 붙여준 이름이었지.”

‘새별이.’ 형우는 그 이름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수현의 어린 시절, 가족에게 버려진 후의 흔적은 언제나 미스터리였다. 그녀는 항상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하길 꺼려 했고, 그에게는 그저 불우했던 유년 시절의 단편들만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새로운 이름, 잊혀진 시간

“이 아이는… 여기에 오래 머물지 않았어요.” 순임 여사가 말을 이었다. “어느 날, 아주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부부가 찾아왔지. 자신들이 아이의 부모라고 주장하며, 아이를 데려갔어요. 잃어버린 아이를 찾았다고 하면서… 새별이는 부모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부부는 억지로라도 데려가야 한다고 고집했지.”

형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수현의 부모는 일찍이 사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보육원에 있었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지만, 부모가 찾아와 데려갔다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 부부에 대해 더 자세히 기억나는 것이 있으신지요?” 형우가 다급하게 물었다.

순임 여사는 먼 기억을 더듬듯 눈을 감았다. “그들은… 이 작은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지. 고급 승용차를 타고 왔고, 비단 같은 한복을 입고 있었어. 특히 그 여자는… 손에 늘 진주로 된 장신구를 하고 있었는데, 그 빛이 너무 강렬해서 아직도 기억이 나요.”

진주 장신구. 형우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예전에 그가 추적했던 거대한 그림자, 재벌가 ‘한울 그룹’의 여사, 조유정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오래전부터 수현을 둘러싼 의문의 배후에 늘 ‘한울 그룹’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해 매번 좌절해야 했다.

“그들이 데려간 후, 새별이는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그 후로는 소식을 들을 수 없었어요. 다만 그 부부가 돌아가기 전, 나에게 이 말을 남겼지. ‘이 아이는 이제 우리 집안의 이름으로 살아가야 할 운명입니다. 이 아이의 과거는 모두 잊어주십시오.’ 마치… 아이의 존재 자체를 지우려는 것처럼.”

형우의 손에 땀이 흥건해졌다. 수현의 기억 상실, 그리고 그녀의 과거를 둘러싼 미스터리. 그 모든 조각들이 순임 여사의 증언으로 조금씩 맞춰지는 듯했다. 그녀는 납치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어떤 이유로 정체성을 지워야 했던 것일까? ‘새별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보육원에서의 이름이 아니라, 그 시절 수현이 겪었던 정체성의 혼란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할머님.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형우는 깊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제 그는 더 분명한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한울 그룹’. 그들의 숨겨진 비밀 속에 수현의 잃어버린 과거가 잠들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다시 형우의 뺨을 스쳤다. 하지만 더 이상 그의 가슴속은 공허하지 않았다. 희망이라는 작은 불꽃이 다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수현, 내가 너의 잃어버린 시간을 반드시 찾아낼게. 설령 그 길이 또다시 깊은 미궁으로 이어진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