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어버린 시간 여행자 – 제1205화

서하는 시간의 균열이 끝없이 이어지는 황량한 지평선을 응시했다. ‘시간의 흉터’라 불리는 이곳은, 과거와 미래의 파편들이 미쳐 날뛰며 시공간의 본질을 뒤흔드는 위험천만한 장소였다. 지독한 고요 속에서, 이따금 과거의 음성 조각이나 미래의 영상 잔해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모든 혼돈 속에서, 서하는 어딘가에 숨겨진 자신의 조각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고차원 탐지기가 희미하게 떨렸다. 일주일 전부터 감지되기 시작한 미약한 시간적 잔향. 그것은 서하가 잃어버린 기억의 파동과 놀랍도록 일치했다. 수많은 좌절과 희망 없는 추적 끝에, 드디어 어렴풋한 실마리라도 잡은 것이다. 하지만 잔향은 흉터의 가장 깊숙한 곳, 시간의 왜곡이 가장 심한 핵에서 발원하고 있었다.

“이안, 무리야. 여긴 그 어떤 시간 여행자도 발을 들인 적 없는 곳이야.”

뒤따라오던 지운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역력했다. 지운은 서하가 기억을 잃은 채 떠돌던 시절부터 함께해 온 유일한 동반자였다. 그녀의 모든 방황과 고통을 지켜본 증인이었다.

서하는 대답 없이 탐지기를 꽉 쥐었다. 이안. 그것은 지운이 그녀에게 지어준 이름이었다. 자신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었던 그녀에게, 그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이름을 선물해주었다. 하지만 ‘이안’이라는 이름은 그녀의 존재를 채워주지 못했다. 가슴 한가운데 뚫린 듯한 공허는 여전히 그녀를 괴롭혔다.

“이 잔향은… 달라. 지금까지의 어떤 것보다 강렬해.” 서하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갈망했던 진실에 대한 지독한 갈증이었다. “여기에… 내가 있어. 내 조각이.”

지운은 더 이상 만류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 속에서, 그는 꺾을 수 없는 의지를 보았다. 수천 번의 시간 이동과 수백 번의 위험을 헤쳐 나오며 단련된, 단단하면서도 애처로운 의지였다.

둘은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시간의 흉터’ 핵으로 향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주변의 풍경이 마치 물결처럼 일렁였다. 고대 도시의 잔해가 순식간에 미래의 첨단 건축물로 변했다가, 이내 다시 태초의 원시림으로 뒤바뀌는 환영이 끝없이 펼쳐졌다. 시간의 무게가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에 서하는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경고! 시공간 안정성 30% 이하! 위험합니다, 이안!” 지운의 음성에는 다급함이 묻어났다. 그의 손목에 찬 시공간 안정화 장치가 붉은빛을 깜빡였다.

그때였다. 흉터의 중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서하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것은 찬란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도 아득한 빛이었다. 빛의 핵으로 다가갈수록 탐지기의 떨림은 격렬해졌다. 그리고 빛 속에서, 하나의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한 여인이었다. 낡은 작업복을 입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지친 얼굴이 드러난 여인.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서하의 심장을 꿰뚫는 듯 날카로웠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 여인의 모습은 서하 자신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너… 누구야?” 서하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메마르게 갈라졌다.

환영 속 여인은 아무 말 없이 서하를 응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 손길이 서하의 이마에 닿으려는 찰나, 주변의 시공간이 광란하듯 요동쳤다. 마치 거대한 유리잔이 산산조각 나는 듯한 소리가 온 공간을 뒤흔들었다.

“이안! 위험해! 시공간 붕괴가 시작됐어!” 지운이 서하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서하는 움직일 수 없었다. 환영 속 여인의 눈빛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그녀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 눈빛 속에 담긴 깊은 슬픔과 회한이, 마치 오래된 상처처럼 서하의 가슴을 저며왔다.

— 실패했어.

환영 속 여인의 입술이 움직이는 듯했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그 단 하나의 단어가 서하의 뇌리에 직접 박혔다. 실패. 무엇이 실패했다는 말인가. 무엇을…?

그리고 그 순간, 서하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파도가 일렁였다. 억눌렸던 기억의 파편들이 마치 해일처럼 밀려왔다. 불타는 도시의 잔해, 절규하는 사람들의 얼굴, 손에 쥔 기묘한 장치, 그리고… 누군가의 차가운 손.

“다시… 시간을… 되돌려야… 해… 이 모든 것을… 바로잡아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서하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목소리였지만, 동시에 낯설고 고통스러운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깊은 절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서하의 무릎이 꺾였다.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눈앞의 환영은 희미해졌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환영 속 여인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서하는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그 눈물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이안!” 지운의 절규가 멀어졌다. 시공간의 붕괴는 이미 통제 불능 상태였다. 그는 필사적으로 서하를 붙들고 시간 도약을 시도했지만, 주변의 중력과 시간의 왜곡이 그들을 찢어발기려 했다.

서하는 축 늘어진 채 의식의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뇌리에 스쳐 지나간 것은, 불타는 도시의 한가운데서 주저앉아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절규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그리운, 그러나 결코 기억나지 않던, 한 남자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이 여인은 과거의 자신이었다. 잃어버린 기억 속의 ‘진정한 서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거대한 실패를 경험했고, 그 실패를 되돌리기 위해 시간을 여행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이안이라는 이름으로 방황하게 된 것이었다.

어둠 속으로 완전히 잠식되기 직전, 서하의 입술에서 작고 희미한 한 단어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이안’도, ‘서하’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그러나 너무나도 오래된 이름이었다. 그녀의 본래 이름, 그리고 그 이름이 가리키는 거대한 운명의 무게가 그녀의 영혼을 짓눌렀다.

과거의 그림자가 현재를 삼키는 순간이었다. 이제 서하는 자신이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어야 할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그녀의 여행은, 이제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