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속의 파란
산사의 새벽은 늘 고요했다. 새들의 지저귐조차 엄숙하게 느껴지는, 세상의 모든 소음이 걸러진 듯한 평화.
그러나 우리 가족이 발을 들이는 순간, 그 고요는 찰나의 환영처럼 사라졌다.
“지우야, 이리 와서 엄마 짐 좀 들어! 아빠는 뭐 하는 거야, 벌써 코 골아?”
엄마의 우렁찬 목소리가 푸른 숲에 메아리쳤다. 옆에서 쿨쿨 잠든 아빠의 뒷목을 찰싹 때리는 소리까지 완벽한 화음이었다.
“아, 엄마! 벌써부터 싸우지 마. 스님들 다 깨잖아!”
나는 투덜거리며 트렁크를 끌었다. 내 뒤로는 텐션 최고조에 달한 동생 민준이가 “우와! 진짜 절이다! 스님 칼싸움도 해?”라며 방방 뛰었고, 막내 하은이는 휴대폰 게임에 몰두하느라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이게 바로 ‘시끌벅적한 가족 여행기’의 388번째 에피소드, 깊은 산속 고즈넉한 사찰에서의 시작이었다.
예불 시간의 비상
첫날 저녁, 우리는 예불에 참여하기로 했다. 스님의 설명에 따라 좌복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며,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에 감사하려 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채 5분도 가지 못했다.
“푸흐흡… 끅…!”
옆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눈을 떴다. 민준이가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었다. 눈은 빨개지고 어깨는 들썩였다.
그 옆의 하은이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엄마에게 딱 걸려 등짝 스매시를 맞는 중이었다. “아, 엄마! 진동으로 해놨단 말이야!”
스님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목탁을 두드렸다. 그 미소 속에 우리 가족에게서 수백 번은 보았을 ‘참으세요’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아빠는 이미 잠들었는지 고개가 푹 숙여져 있었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못마땅한 눈빛으로 째려보고 있었다.
나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눈을 감았다. ‘괜찮아, 지우야. 원래 이런 거잖아….’
산책길의 작은 발견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사찰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고요한 숲길은 나뭇잎 스치는 소리, 새소리, 그리고 할머니의 느릿한 발걸음 소리만 들려야 하는 곳이었다.
물론 우리 가족의 존재가 그 규칙을 다시 한번 깼지만 말이다.
“아빠! 저기 다람쥐!” 민준이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갔다.
“야, 민준! 뛰지 마! 돌부리 많아!” 엄마가 뒤쫓았다.
“나도 다람쥐 볼래!” 하은이도 합류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맨 뒤에서 걸었다. 할머니는 그저 웃고 계셨다.
“지우야, 저것 좀 보렴.”
할머니가 가리킨 곳에는 바위에 핀 이름 모를 들꽃 한 송이가 있었다. 작고 여리지만 굳건하게 피어난 꽃.
“시끄럽고 소란스러워도, 결국 제자리를 지키는 것들이 있단다. 우리 가족 같지 않니?”
할머니의 말씀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정말 그랬다. 우리는 늘 시끄러웠고, 서로 티격태격했으며, 때로는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항상 함께였다. 언제나 서로를 찾았고, 이 시끌벅적한 세상 속에서 우리만의 온전한 울타리를 만들었다.
다식 체험의 달콤한 전쟁
오후에는 다식 만들기 체험이 있었다. 차와 함께 먹는 전통 과자를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조용히 설명을 듣던 가족들은 이내 각자의 개성을 뽐내기 시작했다.
아빠는 다식 틀에 반죽을 너무 세게 눌러서 나무 틀이 부서질 뻔했고, 민준이는 자신의 다식에 ‘민준’이라는 글자를 새기겠다며 온갖 이상한 모양을 만들었다.
하은이는 예쁜 색깔 가루를 잔뜩 섞어 보라색 괴물 다식을 만들었고, 엄마는 그런 아이들을 제지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게 다식이야, 예술 작품이야? 누가 제일 예쁘게 만들었나 내기할까?” 할머니가 즐겁게 제안하셨다.
순간, 가족들의 눈빛이 빛났다. 그들은 언제나 경쟁을 즐겼다.
“할머니! 제가 만든 거 보세요! 최고죠?” 민준이가 자랑스럽게 자신의 기괴한 다식을 내밀었다.
“에이, 그게 뭐야. 내 보라색 공룡이 훨씬 예쁘거든!” 하은이도 질세라 소리쳤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완벽하게 예쁘지도, 완벽하게 조용하지도 않은 다식들. 하지만 그 안에 우리 가족의 유쾌한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차분히 가장자리를 다듬어 만든 평범한 다식을 보았다. 어쩌면 나는 이 혼란 속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내 역할 같은 것을 무의식적으로 수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밤하늘 아래의 약속
밤이 되자, 산사는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 우리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마당에 앉아 별을 보았다.
쏟아질 듯한 별빛 아래, 거짓말처럼 아무도 시끄럽지 않았다.
민준이도, 하은이도, 심지어 아빠도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별 진짜 많다….” 하은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릴 때 아빠랑 엄마랑 손잡고 옥상에서 별 보던 기억 나니?” 엄마가 아빠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그럼! 그때 별똥별도 봤었지? 소원 빌었는데, 그 소원 다 이뤄졌잖아. 이렇게 너희랑 같이 여행 다니는 게.” 아빠가 푸근하게 웃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왠지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겉으로는 투닥거리고, 서로에게 잔소리하고, 때로는 짜증을 내지만, 결국 이들은 서로를 향한 깊은 사랑으로 묶여 있었다.
나 역시 그랬다. 혼자 조용히 여행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나였지만, 이 시끌벅적한 가족과의 여행이 주는 특별한 온기와 추억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었다.
“우리 다음엔 어디 갈까?” 민준이가 고요를 깨고 속삭였다.
“글쎄… 또 어디든 시끄럽게 만들러 가야지?” 할머니가 빙긋 웃으셨다.
모두가 할머니의 말에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조용히 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시끌벅적한 가족 여행기는 아마 앞으로도 수많은 에피소드를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에피소드 속에서, 사랑스러운 혼란과 따뜻한 유대감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별들처럼, 우리 가족은 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